첫 뇌사 합법 판정으로 새 국면 맞은 장기 이식
  • 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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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 요소 여전… ‘가진 자들만의 축복’ 될 수도
인천 길병원 뇌사판정위원회(위원장 윤정철 의료부원장)가 뇌출혈로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박 아무개씨(38)에게 뇌사 판정을 내린 것은 지난 2월15일 오전. 박씨는 2월4일 뇌출혈로 쓰러져 인천 기독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10일 장기이식센터 당직 의료기관인 길병원으로 옮겨질 때까지도 그는 의식 불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기로 다른 환자들이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다.
14일 아침, 박씨의 뇌파는 어머니의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제로 상태가 되었다. 이 사실을 통보받은 길병원 뇌사판정위원회(전문의·목사 등 7명)는 긴급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뇌파 검사 등 6종의 정밀 검진 결과를 토대로 박씨가 ‘뇌사했다’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박씨의 몸에서 각막·신장·심장 등 장기 7개가 적출되었고, 그 장기들은 관련법에 따라 기증자가 속한 1권역(서울 인천 경기 강원 제주) 환자들에게 이식되었다.
이같은 소식만을 놓고 보면 전국의 수많은 장기 이식 희망자들(5만여 명 추산)이 큰 기대를 걸 만도 하다. 더구나 국무회의가 2월1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의결하고, 2월9일부터 뇌사를 공식 인정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뇌사 판정이 합법적으로 내려진다고 해서 장기 이식 희망자들에게 당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식 인정을 계기로 그동안 불법 상태에서 행해졌던 뇌사자 장기 기증이 합법화하고, 뇌사자 장기 배분에 효율성과 형평성을 꾀할 수 있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좀더 효과적인 장기 이식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뇌사 판정 절차 지나치게 복잡해

우선 정부의 독점 관리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기 이식 사업은 생명 존중과 철저한 윤리 의식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어느 정도 정부의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 분배 업무를 국가 기관이 오래 독점하게 되면 민간 의료기관의 장기 기증 권유 동기가 줄어들고, 장기 기증 때마다 공여자와 수여자가 함께 매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 기증이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
절차의 복잡성도 걸림돌이다. 심장은 뇌사 뒤 서너 시간이면 손상된다. 그런데도 뇌사 판정·장기 적출·이식에 이르는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 만약 새벽에 뇌사 환자가 발생하면 회의·판정 지연 등으로 장기 이식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억울한 죽음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심장·간·췌장 같은 장기는 오로지 뇌사자한테서만 얻을 수 있는데, 자칫 생명 있는 사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이 같은 장기를 얻으려다 보면 뇌사가 아닌데도 뇌사로 판정해 억울한 죽음이 생길 수도 있다. 뇌사 판정이 7∼10명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3분의 2 출석과, 출석 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같은 오판을 내릴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가진 자들만의 수술’이 될 가능성도 높다. 현재 장기 이식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하 수천만 원에서 최고 수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술 뒤 치료비도 한 달에 2백만∼3백만 원씩 들어가는데, 이 정도면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이 같은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직원 14명이 만여 건(1999년 현재)의 장기 이식을 처리하기에는 힘에 부치므로, 엄청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민간 단체·병원 들과 협조해야 한다. 또 수술 비용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신장·각막에만 적용되는 의료 보험 범위를 간·심장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1969년 장기(신장) 이식이 처음 실시된 이래, 이제 국내 의료진은 간과 심장·췌장 이식 수술까지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었다. 그런데도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목말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증 장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 기증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법과 제도가 바뀌어도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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