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노사정위원장 김원기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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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력·노동계와의 관계가 발탁 배경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빛은 별로 못보는 자리를 들라면 아마 노사정위원장이 첫손가락 꼽힐 것이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를 성공작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은 한광옥 부총재가 서울시장 후보 공천조차 따내지 못하자 가뜩이나 인기 없던 노사정위원장 자리의 값어치는 더욱 떨어졌다. 이 자리의 중요성을 감안해 김대중 대통령이 제2기 위원장의 지위를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음에도 희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지난 5월9일 이 ‘뜨거운 감자’를 국민회의 김원기 상임고문에게 맡겼다. 김고문의 합리적 성품과 뛰어난 협상력이 발탁 배경이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김위원장은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 시절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아 당시 민정당 김윤환 총무와 5공 청산 협상을 원만하게 마무리했고, 14대 대선 때는 이기택 대표가 이끌던 ‘꼬마 민주당’을 끌어들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가 정치 고비 때마다 협상의 주역으로 활약한 것이 김대통령이 낙점한 이유라는 것이다.

“필생의 과업으로 여겨 헌신하겠다”

김위원장이 노무현·유인태·원혜영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를 창구로 해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대화가 통한다는 점도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가 통추측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96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통추가 시내 한 특급 호텔에서 거창하게 출범식을 치러 정치권을 놀라게 한 일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외부에서 콜라·사이다까지 사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한 이 호텔 노조측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당시 행사장을 가득 메운 하객 2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노동계 인사였다.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제2기 노사정위원장 자리를 권유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김위원장의 측근들은 그가 하마평에 오르자 위원장을 맡지 말라고 만류했다.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좀더 기다렸다 편한 자리로 가라’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사업가나 관료라면 모를까, 정치인은 결과가 나쁠 것이 예상되더라도 자신이 참여해 조금이라도 덜 나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야 한다”라면서 주위 사람들을 달랬다고 한다. 5월 9일 청와대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은 후 김위원장은 “노사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나라 전체의 숨통이 막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사정위원장 자리를 정치의 연장이 아닌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김위원장은 노사 현안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 비서진을 동원해 자료를 챙겨 보다가, 내정 통보를 받은 후에는 노동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로부터 강도 높은 브리핑을 받고 있다.

김위원장측은 노동계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본다.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민주노총측은 지난 5월10일 김대통령의 ‘국민과의 TV 대화’에 질문자로 참석해 달라고 요청받았으나 나오지 않았다. 어렵사리 토론에 참여한 한국노총측도 ‘정부와 재벌의 개혁은 제쳐둔 채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강요한다’며 대통령에게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김대통령은 텔레비전 대화를 통해 이런 노동계의 불만을 달래고, 노동계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른다.

김위원장은 자신이 ‘정치인 김원기’가 아닌 ‘노사정위원장 김원기’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위원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정치적 전환점을 맞았다고 본다. 대선 당시 통추를 이끌고 합류한 김위원장을 중용하기에 앞서 김대통령이 그의 정치력과 충성심을 시험하려는 것 아니냐고 여기는 것이다. 오랜 잠행 끝에 뉴스 전면에 나선 그가 노사정위원장 자리를 과연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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