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소녀 영자 "홀로서기 할래요"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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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종결 되면 "글 쓰고 공부"…
수사는 제자리걸음


'별들이 떠오르는 늦가을 저녁 밤입니다. … 어찌된 일인지 내 가슴에 슬픔의 파도가 밀려오고 또 밀려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가버린 불효자식인데, 그래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내가 낳은 새끼기에.' 산골 소녀 이영자양(19)의 아버지 이원연씨(51)는 서울로 떠난 딸을 그리는 시를 이렇게 쓰며 이별의 한을 삭였다. 그러나 이씨는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영자양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지난 2월12일 오전 9시30분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사무곡 계곡의 외딴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영자양은 이때 경기도 구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산골 소녀 영자가 도시 처녀가 된 것은 잇단 방송 출연 뒤. 초등학교에 1주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영자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가출 후 한번도 아버지 찾지 않아


그러나 모녀의 평화는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흔들렸다. 등산객과 심지어 누드 촬영을 하는 사진작가와 모델도 사무곡 계곡을 찾았다. 사무곡 계곡을 찾은 외지인들은 그 속에 살던 영자에게 도시인의 호기심을 발동했다. 그러면서 영자는 2∼3년 전부터 신문과 방송에 등장했다. MBC <고향은 지금>· KBS <피플 세상 속으로>에 이어 영자는 지난해 KBS <인간극장>을 통해 '스타'가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오지 않던 우체부의 발길이 매일 이어질 만큼 팬레터와 후원품이 쇄도했다. 산골 소녀 영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한 이동통신 CF에도 출연했다. 그동안 영자가 쓴 글을 모아 <꽃이 피는 작은 나라>라는 에세이집도 출간되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전을 사고, 전화도 가설되면서 영자는 산골 소녀티를 벗기 시작했다. 도시를 동경하게 된 영자는 끝내 도시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사무곡을 떠나지 않겠다던 영자가 지난해 10월22일 가출해 서울로 향했다. 가출한 영자는 그녀가 즐겨 듣던 <세월 따라 노래 따라> 동우회 회장 김 아무개씨(59)를 찾아갔다. 김씨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자에게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라고 권했었다. 영자는 김씨 집에 도착한 뒤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신설동 수도학원에 다녔다. 아버지 이원연씨는 영자가 사라진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3일 신기파출소에 가출 신고를 내고 영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영자는 돌아가지 않았다.

영자의 도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김씨는 영자가 CF 출연료로 받은 7백여만원을 가로챘다. "서울에서 생활하면 큰돈이 필요 없다"라며 김씨는 영자의 통장과 현금 카드를 빼앗아 6백여만원을 사무실 임차료 등으로 사용했다. 경기도 구리시 김씨 집에서 영자는 주로 거실에서 생활했다. 영자는 지난해 11월8일까지 김씨와 생활한 뒤 안 아무개씨 집으로 옮겨야 했다. 영자는 아침 7시에 구리를 떠나 8시까지 학원에 도착해 오후 1시20분까지 학원 강의를 들었다. 학원이 끝나면 학원 근처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사무실에서 저녁 6시까지 공부하거나 컴퓨터에 빠졌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영자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영자는 집을 떠난 뒤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나러 사무곡 외딴집을 찾지 않았다. 지난 설 때도 영자는 서울에 있는 먼 친척집에서 머물렀다. 영자는 아버지가 숨진 뒤인 지난 2월13일에야 삼척에 내려갔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김회장님이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붙잡혀 다시는 서울 못 온다며 내려가지 말라고 했다"라고 영자는 말했다. 그녀는 지금 삼척경찰서 홍 아무개 순경(25) 집에 머무르고 있다. 경찰은 참고인 진술을 위해 영자를 보호하고 있다. 2월25일 오전 10시30분 <시사저널> 취재진은 어렵게 삼척경찰서에서 영자를 만났다. "아빠 소식을 처음 접하고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결코 자살하시거나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다"라며, 영자는 느리지만 또박또박 "아버지가 타살당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아직 뚜렷한 용의자 못찾아



영자와 친인척들은 처음에는 경찰로부터 병사로 인한 사망이라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영자를 비롯한 친인척들은 경찰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큰아버지 이광연씨(63)에 따르면, 이씨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져 있었다. 이불 위에는 큰 이불더미가 놓여 있었고, 문도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서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자연사이거나 병사라고는 볼 수 없는 타살 흔적이 있었다. 친인척들은 경찰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경찰은 2월12일 삼척의료원에서 시신을 검안한 뒤 유가족에게 단순 병사라며 장례를 치르라고 시시을 넘겼다.

2월13일 영자는 삼척의료원에 도착한 뒤 마지막으로 아버지 수의를 입혀 드리겠다고 고집했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시신을 닦아내면서 영자와 친인척들은 왼쪽 목 아래서 흉기에 찔린 자국과 코뼈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뒤늦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시체 부검을 의뢰했다. 2월21일 국과수는 삼척경찰서에 이씨가 흉기로 타살되었다고 통보했다.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에 착수했지만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후원회장인 김회장이 영자의 돈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밝혀냈을 뿐이다.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에 착수했지만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후원회장인 김회장이 영자의 돈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밝혀냈을 뿐이다. 경찰은 지난 2월20일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타살이라며 경찰 수사에 반발했던 이광연씨의 큰아들 이 아무개씨(40)를 지난 2월19일 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률 위한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이씨가 영자에게 가혹 행위를 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 경찰측의 주장이다. 이씨 가족들은 경찰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또한 영자가 집을 떠난 뒤 아버지 이씨를 수발했다는 김아무개씨를 수사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영자집을 드나들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증언했다. 경찰은 아직까지 뚜렷한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영자와 친인척은 지난 2월16일 장례식을 치렀다. 영자는 아버지 흔적이 곳곳에 밴 집 근처에 산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친척들의 권유로 아버지를 화장했다. 영자는 화장하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말도 안 나오고, 눈물도 안나왔다." 한줌 재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를 안고 영자는 사무곡 외딴집으로 오르는 대평리로 향했다. 길가에 아버지의 재를 뿌리며 영자는 "편히 가세요. 불효자를 용서하세요"라며 피눈물을 흘렸다.

어버지가 숨지고, 믿었던 후원회장에게 배신당한 영자는 "서울에 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더라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영자는 자기 눈에 뭔가 씐 것 같다며, 아버지 속을 썩이면서가지 가출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영자는 하루빨리 범인이 잡히기를 기대했다. 수사가 종결되면 영자는 홀로서기를 준비할 계획이다. 아버지가 없는 외딴집보다는 조용히 글을 쓰고 공부할 만한 곳을 찾으려 한다. 영자양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온정의 손길이 늘고 있다. 삼척시민연합 김형찬 사무국장(41)은 "영자양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후원회를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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