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의인가 한국 희망사항인가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1.07.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신 장관의 국방장관 회담 결과 발표에 해석 분분


지난 6월2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가 영 개운치 않다. 여느 때처럼 공동 성명이 안 나온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북·미 협상의 핵심 의제인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 문제와 관련해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김동신 국방부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미국측 동의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과연 김장관의 말이 사실일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 대화 재개를 선언하면서 3대 협상 의제 가운데 하나로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 문제를 지적했다. 또 한·미 국방회담이 열리기 바로 전날에도 파월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 문제는 (북·미 협상) 의제의 꼭대기(top)에 올라 있다"라고 증언했다. 그만큼 미국은 이 문제에 대단히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도 과연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순순히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동의했을까?


관련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한 사람은 럼스펠드였다. 이에 대해 김장관은 "북한이 재래식 전력 위협 감소 문제를 무장 해제 요구라고 보고,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할 것이다. 한·미 간에 실무 차원에서 긴밀하게 논의해 대안을 만들고, 협상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재가동하는 형식으로 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장관 "한국 제안에 미국이 동의"


김장관은 이같은 제의에 대해 "럼스펠드가 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아 내 말을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라고 한국 기자들에게 밝혔다. 핵심 소식통에 따르면, 럼스펠드는 김장관의 설명에 대해 "알겠다"(I understand)라고만 대꾸했다고 한다.


문제는 럼스펠드 장관의 이 발언 부분을 둘러싼 한국측 해석이다. 김장관과 핵심 수행원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럼스펠드의 반응을 '지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실제로 한 핵심 수행원은 한국 기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딴 생각이 있었으면 럼스펠드가 회담 자리에서 얘기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알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측 구상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방장관 회담 다음날 워싱턴 소재 헤리티지 재단에서 김장관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김장관은 럼스펠드 장관은 물론 딕 체니 부통령과 만나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과 관련해 남북 기본합의서에 따라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고, 자신의 이런 제의에 대해 "이해하며 수용하는 그런 토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과 미국이 이 의제를 직접 협상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라고 잘라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워싱턴 한복판에서 한국측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처럼 한국측 설명은 분분한 반면 미국측 반응은 잠잠하다는 점이다. 우선 럼스펠드 장관의 태도가 그렇다. 그는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뒤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에 관한 질문에 대해 "북한군의 병력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지만,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발언 어느 곳에서도 한국이 주도하는 데 동의했다는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또 이번 회담과 관련해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에도 '한국 주도'라고 말한 대목은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측은 럼스펠드의 '알겠다'는 단 한마디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일까. 아니면 노회한 럼스펠드가 미국측 복안을 숨긴 채 '알겠다'는 한마디로 한국을 안심시키려 한 것인가. 그 해답은 곧 재개될 북한과의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