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방미하면 이중삼중 이용된다
  • 워싱턴·이창주(칼럼니스트·국제정치학 박사) ()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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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반도 관리 '최상 카드'로 치밀하게 준비


미국 의회·한국 정부·황장엽·북한. 이 4자가 황씨의 미국행을 놓고 밀고 당기며 대립하고 있다. 신판 한반도 이슈이다. 미국이 남북 화해 평화 기류에 부정적인 영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황장엽씨의 워싱턴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 의회의 대표적 보수 외교 3인방(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 공화당 정책위의장, 제시 헬름스 전 상원 외교위원장)과 극우보수주의자 수전 솔티가 이끄는 외곽 민간 단체인 디펜스포럼이 바로 황장엽씨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 핵심 주체이다.




이들은 미국이 남북 관계 속도 조절과 북한 관리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위험 국가'라는 미국 대북 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함으로써 이 틀을 정당화 내지는 명분화해 당사국인 남북한 관계의 한계를 지적하고 미국에 비우호적인 중·러의 개입과 협력을 극소화하려는 계산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로는 미국 의회 조사국 등 관련 기관을 통해 밝혀진 이들의 황장엽씨 초청 배경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하이드 위원장은 초청장 전문에서 주요 초청 목적을 '북한 체제가 지역 평화·안정에 도전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고 의회 증언을 듣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북한의 진실(The Truth about North Korea)'이라고 명명한 내용 중에는 독재·인권·군사 위험이라는 세 가지 부정적 시각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부정적 대북관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실화해 왜 공화당 정부와 의회가 북한에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무장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지 설명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보수 강경 입장에 대한 비난을 희석하려는 속셈이다.


이번 파동에서는 한반도 상황에 간접으로라도 개입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도 엿볼 수 있다. 미국 의회 조사국에서 한반도 관련 의회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한 분석관의 견해가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재래식 무기를 포함해, 북한 군사력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남과 북이 자주적인 관계 발전을 선언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적 과욕 때문에 그 시나리오를 현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미국은 본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북 적대 정책으로 미국의 통제권 밖에 있었다면, DJ는 대북 접근 정책으로 통제권 밖에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환경에서 겉으로 미국이 나서 제동을 걸 수 없어 고민하다가 황장엽 카드를 다시 빼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미국은 황장엽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미국이 구상하는 한반도 관리의 최상 카드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황장엽씨를 초청하면서 지난해 11월 초청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하이드 위원장이 지난 3월 DJ가 미국 의회를 방문했을 때 황장엽 초청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고, 보좌관들을 직접 서울에 보내 국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직접 초청장을 전달하고 당사자의 허락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반대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초청 기관 문제 및 신변 안전도 서울의 발표와는 달리 잘 짜여 있다. 즉 초청자를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으로 해 충분한 권위와 대표성을 확보했고, 신변 안전 문제는 초청장 발송 전 행정부측과 사전 협의해 협력을 약속 받았다. 특히 국무부·국방부·중앙정보국(CIA) 등 관련 정부 기구는 의회 이상으로 황장엽씨의 방미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매우 협조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매일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바우처 대변인은 정례 뉴스 브리핑에서 두 차례에 걸쳐 황장엽씨 방미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했다. 신변 안전 문제에 대해 주 정부든 연방 정부든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이며, 현재 한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무부가 의회에 협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씨 초청 기관 중 하나로 이번에 떠오른 디펜스포럼은 의회 및 행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실상의 관변 단체로서, 국가 기관이 나서기 민감한 사항에 대해 보수 우익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들의 사업 내용을 보면, 탈북자 문제를 추적하는 일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황장엽씨 초청은 단순히 북한 실상 과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남북 관계가 급진전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미국의 대북 관계를 그들의 전략과 이해에 일치시키려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은 '기다리라'고 당당히 요구해야




뻔한 속셈 : 미국의 보수파 의원인 헨리 하이드(왼쪽)와 크리스토퍼 콕스(오른쪽) 씨는 황씨를 통해 자신들의 보수 노선에 대한 명분을 얻고 남북 관계 진전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고 있다.


워싱턴 주변에서는 황장엽씨가 미국에 오면 망명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어 사실상 용도 폐기된 황장엽씨가 감시만 받는 부자유한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에서 대북 적대감을 갖고 있는 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해 대접을 받으며 북한 죽이기에 앞장서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에 파견된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알려진 짐 도란·마이클 웨스트팔과, 크리스토퍼 콕스 의원 보좌관으로 알려진 척 다운스는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과 같은 단순 메신저가 아니다. 상원 외교위원회와 공화당 국제관계위원회 전문위원들로서 한반도 관련 조사와 분석 및 리포트를 담당하는 실무팀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미국대사관·정치인·전문가 들의 협력을 받아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황씨 방미에 협조하도록 한국의 야당과 언론을 움직인 것은 이들의 한국 방문 성과로 치부할 만하다.


현시점에서 황장엽씨가 미국을 방문하면 이용만 당할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한국 정부가 초청장 형식·신변 안전 등의 궁색한 이유를 들어 황씨의 방미를 저지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서로가 속사정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니 분단 민족의 화해 발전을 위해 서울 남북 정상회담 이후까지 미국이 일정 기간 기다려 달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국익보다는 우리의 국익이 우선이다. 미국은 황장엽씨 방미를 최대한 이용하고 파장을 만들 것이다. 디펜스포럼측은 의회 일정이 끝나면 다른 단체들과의 모임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협상해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는 정도라면 황씨 방미를 수용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한마디로 안일한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처지를 고려해 남북 관계 진전을 도우리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환상이다.


북한은 7월7일자 외무부 대변인을 통해 미국 의회가 황장엽씨를 초청한 데 대해 분명하게 성격을 규정하고 입장을 밝혔다. '공화당 강경 보수 세력의 모략극' '대조선 강경책 증대' '도발적인 반공화국 모략 책동'이라는 표현에 그들의 분노가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는 남한 쪽에 보내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이 버틸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버텨야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우리의 국익을 무시한 채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라면 가고 보내라면 보내는 한·미 관계 역사는 이제 마감해야 한다. 지난 50년 간 그래 왔지만 더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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