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속 김정일의 시베리아 구상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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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도입·철도 프로젝트 연계 타결 노려


지금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태운 특별 열차는 옴스크를 향하여 속력을 내고 있다. 수행원 1백50명을 대동한 그의 러시아 방문은 심상치 않다.


우선 방문 사실이 사전에 언론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가 공식 확인까지 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귀국할 때까지 그의 방문이 비밀에 부쳐졌다. 더욱이 방러가 지연되었던 이유로 신변 안전 문제가 1차적으로 거론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원래 김위원장의 방러는 봄으로 예정되었으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연기되어 왔다. 신변 안전 이외에 북한 무기 현대화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 때문에 계속 연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러시아 언론은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크렘린이 김정일 방문이 야기할 문제를 피하기 위해' 연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정일의 방러 시점이 복잡한 러시아 국내외적 사건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푸틴과 부시는 이탈리아 G8 회담에서 그동안 양국간 힘겨루기에서 주된 이슈였던 미사일방어(MD)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타협점을 모색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협상에 돌입했다. 또한 현재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바렌체보 해협에서 침몰한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 호 인양 작업이 최대 이슈이다. 쿠르스크 호 침몰에는 많은 의문이 따랐다. 또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한국도 방문해 의견을 교환했다.


국내외 언론이 김정일의 방러 일정을 추적하고 있다. 지난 7월26일 오전 김위원장은 북·러 국경 도시인 하산 역에 도착해 극동지역 대통령 전권대사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와 부주지사 알렉산드르 리에츠키의 영접을 받았다.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가 모스크바까지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일정과 경비는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안전국(FSB)이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7월26일 고 김일성 주석이 항일 투쟁을 한 곳으로 알려진 우수리스키 역에 도착했다. 역 밖에는 화려한 야회복으로 성장한 환영객들이 김정일을 기다렸으나 그는 하차하지 않았다. 27일 김위원장은 그의 고향인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다. 29일 그는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에 도착했으나 내리지 않은 채 승강구에서 환영 대표단을 맞았고 이르쿠츠크도 그냥 지나쳤다.


7월31일 김위원장은 옴스크에 도착해서 1박2일간 머무른다. 옴스크에서 그는 '트란스마쉬'라는 신형 T80-U 탱크 공장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공장측은 T80-U 탱크의 위력 시험을 그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이 탱크는 1990년대 중반 한국에 도입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또한 옴스크에 있는 항공기 공장과 베이컨 공장을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8월4일 새벽 김위원장은 모스크바에 도착해 4∼5일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몇몇 도시를 방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옛소련 시절 우호적으로 교류했던 카렐리야 공화국 수도 카렐리야에도 들를 것 같다.


북한의 최대 현안은 개방을 통한 경제 회생과 발전 그리고 군사력 증강을 통한 국내외적 정권 안정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체제 구축을 통한 경제 발전과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한 강대국 위상 제고가 과제이다.


북·러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군사기술 협력'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한 예로 김위원장은 무기 제조 중심지인 옴스크의 최신예 탱크 공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낡고 구식인 옛 소련 무기를 보유한 북한으로서는 무기 교체와 현대화가 최우선 과제이다. 러시아에 첨단 무기를 제공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북한은 이번 북·러 회담에서 이를 타결하려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북한의 의견이 상당히 수렴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러간 무기 매매에서 걸림돌 중의 하나가 '판매 대금' 문제이다. 북한은 무상 또는 외상으로 무기 제공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돌발 의제' 러시아의 미사일 공급




다음 의제는 러시아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와 한반도종단열차(TKR)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로 예상된다. 북한은 TSR-TKR 프로젝트를 '군사기술 협력'과 연관하여 크렘린과 협상할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가 'TSR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데 이어 김정일이 TSR·TKR 노선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다는 점은 TSR·TKR 프로젝트와 무기 협상이 연관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러시아의 중재자 역할 제안도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북한을 위해 서방 유럽 국가·한국과의 중재역을 자임할 것이다. 남북 경협이 확대되고 북한이 서방 국가와 경제 협력이 이루어지면 러시아가 부담을 덜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푸틴은 1차적으로 김정일에게 한국 답방을 권고할 것이 예상된다. 김정일의 남한 방문은 TSR·TKR 프로젝트 논의를 촉발하고 활성화할 것이며, 나아가 남한 정부로부터 러시아의 역할에 대한 호의적 반응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는 2000년 수출액이 3천6백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 12위 무역국인 한국의 대유럽 수출품 수송의 일부를 맡기를 기대하며 남북한과 TSR·TKR 프로젝트에 대한 실무 협상을 빨리 갖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외에 현재 소강 상태인 북·미 협상에 대한 북한의 복안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돌발적인 의제로 미국을 긴장시킬 러시아의 미사일 공급에 대한 문제도 조심스럽게 대두하고 있다. 세계 정세 전반에 관한 의견도 교환될 것이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후 푸틴은 김정일을 '현대적이고, 세계 정세를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있으며, 정보에 밝고 탄력성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었다.


북·러 정상회담은 푸틴의 외교 방향과 김정일의 첨단 무기 도입 요구가 쟁점이다. 북한 무기 첨단화 문제는 러시아가 미그29기 공급에 거부 의사를 표시했듯이, 제한된 수준에서 타결될 전망이다. 또한 돌발적으로 러시아의 미사일 공급도 예상할 수 있다.


TSR·TKR 프로젝트 문제는 이미 양국이 의견 수렴을 한 상태여서 쉽게 타결될 전망이다. 요점은 북한의 첨단 무기 구입 요구 제안이 러시아의 TSR·TKR 프로젝트 타산성과 얼마나 부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 철도상 김용삼이 김정일의 수행원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문제가 타결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만일 TSR·TKR 프로젝트가 타결된다면 김위원장이 조기에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정상은 세계 질서와 북·러 관계에 대한 성명서도 발표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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