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으로 숨진 뒤 추락했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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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의학자 가미야마, 최종길 교수 사인 새롭게 제기…국내 전문가들은 견해 달라
5월4일 오후 5시30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에서 법의학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주인공은 고려대 의과대학 황적준 교수(55)와 일본 법의학자 가미야마 시게타로 박사(69).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의 사인을 놓고 설전이 오갔다. 이 날 논쟁은 2시간30분 동안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자살인가, 타살 후 추락인가


최교수 죽음에 대한 공권력 개입 여부는 밝혀졌다. 진상규명위 활동으로 고문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다. 남은 쟁점은 죽음에 이른 직접적 원인이다. 과연 7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자살인지, 아니면 고문으로 인한 타살 후 위장 추락인지가 핵심이다. 그동안 국내 법의학자들은 직접 사인을 추락에 의한 심장 파열로 보았다. 그러나 가미야마 박사는 추락 전에 최교수가 고문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소견을 제시했다


가미야마 박사는 1973년부터 도쿄 시 감찰 의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비상근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시체를 10구 이상 검안한다. 그는 1980년 <표준 법의학>을 집필했고, 1997년 일본범죄학회상을 수상했다. 4천5백건이 넘는 해부와 4천건이 넘는 검안 경험이 있다. 가미야마 박사는 지난해 진상규명위로부터 최종길·김준배·이내창 사건의 감정을 의뢰받았다. 5월5일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그를 만났다.


가미야마 박사는 “최종길은 정교한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교수가 고문에 의해 숨진 뒤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혈액의 출혈과 응혈 반응에 따라 그는 손상 부위의 시간차를 구분했다. 살아 있을 때, 죽음에 임박할 때, 사망 후 상처로 나누었다. 그는 먼저 심장이 파열했고, 숨진 뒤에 왼쪽 발목 상처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으깨진 왼쪽 발목은 유일하게 밖으로 노출된 상처다. 그런데 피가 흘렀거나 굳은 흔적이 전혀 없다. 가미야마 박사는 심장이 정지된 뒤에 발생한 상처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 상처에 대해서는 해외 법의학자도 관심을 나타냈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가미야마 박사는 상처 부위와 고문 방법에 대해서도 추정했다. ‘오른쪽 무릎 뒤의 찰과상은 바닥에 무릎을 구부리게 한 뒤 각목을 끼어 압박을 가하면 나타난다. 몸을 묶은 채 전기 고문을 가하면 외상 없이도 두부 내 출혈이 일어난다. 배를 시멘트 바닥에 고정한 상태에서 충격을 가하면 심장이 파열된다.’ 이는 과거 고문 기술자들의 통닭구이·비행기 태우기 등 방법과 일치한다. 가미야마 박사는 “내부 장기 손상은 수건이나 천을 감싼 둔기로 구타하면 가능하다. 그러면 외상이 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상이 남지 않는 충격을 ‘보디 스탬프’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당시 수사관들은 고문 사실 부인


지금까지 국내에서 최종길 교수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은 세 차례 있었다. <시사저널>은 세 가지 감정서를 모두 입수했다. 먼저 1973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촉탁의사 김상현씨는 최교수를 직접 부검했다. 그는 부검 소견서에 심장 파열과 두개저 골절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 냈다. 하지만 그는 고문에 의한 사망인지 추락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88년 이정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김상현씨 감정서를 재감정했다. 이교수는 추락에 의한 심장 파열이 직접 사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진상규명위는 고려대학교 황적준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황교수는 추락에 의한 동시 다발 손상으로 보았다. 다만 최교수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떨어졌는지,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추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최교수를 직접 조사했던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 차철권씨는 고문 사실마저 부인하고 있다. 또 다른 수사관이었던 김상원씨는 미국에 거주하며 조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더 이상 당시 수사관들의 입에 기대할 것이 없다. 시신이 말하는 증언, 법의학적 소견이 중요한 이유다. 진상규명위는 5월 안에 최종길 교수 사건 조사 결과를 최종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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