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귀재, 민주당 구할까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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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의원, 미국 하원 첫 여성 원내총무 올라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환히 밝히면서 공화당 압승으로 막을 내린 미국의 중간 선거 결과는, 패자가 된 민주당에는 물론 미국 정계 전체에 또 한번 후폭풍을 몰고 왔다. 전임자가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 공석이 된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 자리에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 여성 의원이 진출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의 원내총무는 한국의 원내총무와는 격이 다르다. 의회에서 당을 대표해 소속 의원들을 지휘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미국 원내총무는 집권당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의회 내 최고 지도자이다.
이처럼 엄청난 자리를 꿰찬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주 출신으로 1987년 보궐 선거를 통해 처음 의회에 진출한 이래 줄곧 미국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해온 낸시 펠로시 의원(62)이다. 그녀는 지난 11월14일 실시된 민주당 의원들의 투표에서, 경쟁자로 나선 차세대 스타 헤럴드 E. 포드 의원을 ‘177 대 29’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꺾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원내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든든한 집안 배경·자금력 덕 봐


다섯 자녀의 어머니이자 다섯 손자를 둔 할머니이기도 한 펠로시 의원은 확고한 자유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지난 10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위해 전권을 달라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 유권자 여론과 상관없이 이를 소신껏 반대한 몇 되지 않은 민주당 의원이었다. 그녀는 또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을 반대하는 데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 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해 그녀는 특히 일관되고 비타협적이며 원칙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중국과의 무역을 두고 의회 안에서 논쟁이 일자, 그녀는 “인권 개선 없이는 중국 무역 확대는 없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그것도 평상시도 아닌 연방 의회 상·하원의 주도권을 모두 잃어버린 비상 상황에서 당을 구할 지도자로 펠로시 의원을 뽑은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직의 귀재’로서 특히 정치 자금을 모으는 데 특출한 솜씨가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987년 그녀를 처음 의회에 진출시킨 것도 자금력이었으며, 원내총무 경선에서 승리한 원동력도 자금력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순 치러진 중간 선거 때, 그녀는 다른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1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선뜻 당에 내놓았다. 쉽게 말해 당에 대한 기여도가 높았던 것이다.
1995년부터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를 지내다가 이번에 자리를 내준 리처드 A. 게파트 의원은 “그녀는 순전히 자기 힘으로, 그리고 자기 지도력 덕분에 이겼다”라고 치켜세웠다.


펠로시 의원이 정치가로 출세하는 데는 ‘정치인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 또한 만만치 않은 후광으로 작용했다. 그녀의 아버지 토머스 달레산드로는 미국 볼티모어 시의 시장을 12년 동안 지내고 의원으로도 활동한 정치인이었다.


자신의 능력·출신 배경·상황, 이렇게 3박자가 맞아 떨어져 민주당 원내총무가 되었지만 펠로시 의원 앞에는 헤쳐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당을 패배 후유증에서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다. 또 사방이 ‘적군’인 의회에서 소수당인 민주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관철할 것인가도 과제다. 펠로시 의원의 각오는 당차다.


“우리는 공화당과 공동의 상식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의 상식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식 상식대로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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