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편지 정부’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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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장관·참모, e메일 보내기 즐겨…국무회의에서 ‘편지 발송’ 독려도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얼마 전 전국 일선 검사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내가 갖고 있던 고정 관념 속의 검사와는 너무 다른,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법률가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검사님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여러 분의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장관이 취임 초부터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일선 검사들에게 이렇게 ‘연애 편지’를 보낸 데에는 특유의 문학 소녀 기질이 발동한 측면도 있지만, 유난히 편지 쓰기를 강조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색다른 코드가 작용한 측면이 크다.
그런 노대통령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 왔기 때문일까. 노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은 이미 편지 쓰기에 익숙한 모습이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은 지난 5월 청와대 1급 이하 전직원에게 독려 편지를 보냈는가 하면,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수행 기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국익’을 강조하기도 했다. ‘좌희정’으로 불리는 안희정씨 역시 나라종금 사건으로 검찰에 출두하기 전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청와대의 한 386 참모는 “캠프 시절 참모들은 e메일을 통해 서로 격려하곤 했다. 캠프 출신들에게는 편지 주고받기가 특별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불을 붙인 편지 쓰기 바람은 금세 여야 정치권으로 옮아 갔다. 민주당 신주류에서는 김원기 고문과 천정배 의원이 각각 신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편지를 당원과 여론 주도층에 보냈고, 구주류에서는 정균환 총무와 박상천 최고위원이 나서 민주당 사수를 위한 맞불 편지를 발송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7월4일 청와대 비서진을 비판하는 편지를 인터넷에 띄워 가장 최근 편지 정치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노무현 정부에 ‘편지 정부’라는 별칭을 붙여도 되겠다.
노대통령은 편지 쓰기를 즐긴다. 취임 후 그가 공개적으로 보낸 편지는 모두 6통.‘호시우행’‘잡초론’‘이기명 선생님께’라는 주제로 세간에 논란을 일으킨 ‘노무현의 편지’가 3통 있었고, 뉴욕 메츠 최희섭 선수에게 보낸 위로 편지, 한 초등학교 학생에게 보낸 친필 답장, 그리고 지난 7월2일 국회에 보낸 공식 서한이 나머지다.
노대통령이 편지를 즐겨 쓰는 이유는 몇 가지 장점 때문이다. 청와대 한 참모는 “(편지는) 받는 사람과 일 대 일 대화를 하는 효과가 있어 친밀감이 깊어지고, 설득력도 더 커진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받는 사람 사이에 사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거두절미하지 않고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언론의 ‘왜곡’에 피해 의식이 남다른 노대통령 처지에서는 편지가 매우 매력적인 매체인 셈이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은 주변 참모들에게 적극적으로 편지 쓰기를 권유하고 있다. 최종찬 건설교통부장관이 6월29일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불법 집단 행동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라는 제목의 e메일을 여론 주도층 3만명에게 보낸 것도 노대통령의 뜻이었다. 노대통령은 최장관에게 철도 노조 파업에 대한 국민 설득용 편지를 보내도록 주문했고, 최장관이 이를 미루자 국무회의에서 재차 채근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대통령은 이에 앞서 중앙 부처 실•국장 회의에서도 편지 쓰기를 강조한 적이 있다. “마치 정부가 약속을 깨 철도 노조가 파업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알아보니 아니더라. 전노조원들에게 편지라도 보내 ‘여러 분의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파업을 위한 파업을 하고 있다’고 반론하고 싸우고 국민에게 호소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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