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정당'' 시대 개봉 박두?
  • 김은남 (ken@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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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227개 지구당 세우고 본격 활동…기독교계에서도 창당 제안 잇따라
호남 후보·영남 후보 대신 내년 총선에는 기독교 후보·통일교 후보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종교계가 최근 정치 참여의 목소리를 시시각각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통일교(세계평화통일연합)가 먼저였다. 통일교는 이미 평화통일가정당(가정당·총재 곽정환)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만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 절차까지 마쳤다. 지난 3월에 중앙당 창당대회를 치른 가정당은 창당 6개월 만인 9월 말 현재 전국 2백27개 지구당 창당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기독교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2일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는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회장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 주최로 기도회가 열렸다. 이 날 기도회에서 교계 원로급인 김준곤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이사장)는 기독교 정당 창당을 제안했다. 정치가 나쁘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직무 유기이며,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는 ‘정치를 하나님의 도구로 바꿀 수 있는’ 한국기독당(가칭)을 세워 기독인들을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이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교단과 학계 일각에서는 한국에서도 독일 기민당 같은 정당이 출현해 건전한 보수 세력을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현실적인 힘이 실린 것은 최근이다. 일단은 통일교의 움직임이 기독교를 자극했다.

용평 리조트 인수에서부터 피스컵 개최, 북한 육로 관광 사업에 이르기까지, 최근 들어 거세지는 통일교의 ‘국내 상륙 작전’에 기독교계는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가정당 창당 또한 통일교 세 확산을 위한 포교 작전의 일환이 아니냐는 것이,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해 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의 시각이다. 이들은 ‘당은 당이되, 현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가정당의 선언 또한 믿지 않는다. 김영진 전 장관, ‘기독교 정당’ 중심 인물로 거론돼

실제로 가정당은 순결 교육, 참가정 실천 교육 따위 ‘교육 정당’을 지향하겠다던 애초의 다짐과 달리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정당 간판으로 벌써부터 지역 표밭을 가는 정치 지망생도 있다. 이에 대해 가정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 당이 직접 공천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이 가정당 간판으로 출마하고자 할 때는 그것을 어찌 막겠느냐”라고 해명했다.

기독교 정당 창당과 관련해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이 중심 인물로 거론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난 7월 법원의 새만금사업 중단 결정에 반발해 장관 직을 사퇴한 김 전 장관은 교계의 대표적인 친노(親盧) 인사로 꼽힌다. 그런 그가 이끄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기독당을 창당하지는 제안이 나오자, 일각에서는 현정부의 취약한 기반을 보완하려는 ‘기독교 우파 정당’이 기획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당 창당은 서울 시내 몇몇 대형 교회와 한기총 일부 회원의 제안일 뿐 국가조찬기도회와는 전혀 무관하다”라는 것이 김씨측의 주장이다. 조찬기도회에는 현재 김씨 외에 정근모 전 과학기술부장관, 황우려(한나라당)·천정배(통합신당) 의원 등 전·현직 의원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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