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알파’ 작전 성공할까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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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적극 추진, 자민련 결사 반대…합당 실패하면 각자 ‘몸집 불리기’ 돌입
어찌 보면 참 허망한 결말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도 8월에는 정치권에 한바탕 ‘내각제 태풍’이 몰아치리라고 믿었다. 내각제 연내 개헌을 둘러싼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간의 무릎 담판 시한이 8월로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총리가 내각제 연내 개헌을 유보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어이없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도 DJP 당사자가 아닌 제3자를 통해서였다.

김총리가 내각제 개헌 유보 방침을 시사한 7월12일 상황을 살펴보면 김총리의 발언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각제에 대한 입장 정리를 기대하고 찾아간 자민련 김용환 수석부총재와 강창희 총무가 “연내 개헌이 안되면 9월에 총리가 당으로 복귀해야 한다”라고 몰아붙이자, 김총리는 화를 내며 “당신들은 왜 나한테만 미루느냐. 내각제로 국론이 분열하면 나라가 망한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해야 한다”라며 우회적으로 내각제 연내 개헌 포기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평소 자신의 의사도 묻지 않고 내각제 강경 일변도로 치닫는 김수석부총재에게 불편한 마음을 품어온 김총리가 홧김에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김총리와 김수석 사이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다.

김총리의 내각제 개헌 유보 발언이 전해지자 청와대와 국민회의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DJP 간에 내각제 유보에 관한 진전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후속 조처에 대한 준비 작업이 덜 된 상태에서 갑자기 김총리의 발언이 나와 당혹스러웠다”라고 말했다.

내각제 유보 ‘국민 설득’ JP가 맡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권 수뇌부 반응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모양새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일찌감치 논란거리를 털고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에서는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에 대한 역풍을 최대한 차단하고 양당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후속 조처를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여권이 가장 전념할 부분은 국민 설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내 내각제 개헌 포기는 97년 대선 때 DJP연합이 내세운 공약을 어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벌써 국민 사이에는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소프레스가 김총리의 내각제 유보 발언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여론의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권의 연내 개헌 유보 방침이 ‘잘된 일’이라는 대답은 51.2%, ‘잘못된 일’이라는 대답은 39.4%로 유보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약속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는 대답이 49.4%,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45.5%로 부정적인 반응이 높다. 요컨대 국민은 내각제 자체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DJP가 내각제 연내 개헌 약속을 어긴 점은 잘못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약속 파기에 대한 비난 여론은 청와대가 오래 전부터 염려해 온 대목이다. 김총리보다 김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리라는 우려에서다. ‘말 바꾸기 선수’라는 이미지를 지닌 김대통령이 또다시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각제 해법을 모색하던 일부 참모는 한때 ‘정면 돌파’를 건의하기도 했다. 어차피 개헌안 통과가 불가능한 만큼 약속대로 국민회의가 연내 내각제 개헌안을 발의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고 자민련의 몽니도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면 돌파 작전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부결될 경우 권력 누수 현상이 심해질 수 있고, 자민련이 개헌안 부결을 이유로 공동 정권에서 철수하면 국정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다. 김대통령이 신뢰 추락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각제 개헌 연기 쪽을 택한 것은 그같은 위험 부담을 피해 가자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민 설득은 김총리가 총대를 멜 전망이다. 그의 설득 논리는 크게 현실론과 명분론으로 나뉠 것이다. 현실론은 내각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성숙되지 않아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고, 여권 의석 수가 개헌선인 재적 의원 3분의 2에 크게 못 미쳐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보다 김총리가 더 강조할 대목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론이 되리라는 관측이다. 김총리는 최근 내각제와 관련한 질문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결정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답변하고 있고, 총리실 주변에서는 이미 경제 위기 극복이나 남북 관계 개선 같은 거창한 화두가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측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논리를 개발해 놓고 있다. ‘내각제 시기만 미루었을 뿐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 대신 개헌 관철을 위해 16대 총선에서 공동 정권을 확실히 밀어달라’는 작전을 편다는 것이다. 이는 내각제 역풍을 막으면서 총선몰이도 할 수 있는 일거양득 전략이라는 것이 여권 핵심부 판단이다.

국민 설득과 병행해 DJP가 심혈을 기울일 분야는 자민련 내부 단속이다. 내각제 강경파인 자민련내 충청권 의원들은 김총리의 내각제 유보 방침에 반발해 집단 행동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김총리가 일부 의원 탈당설에 대해 할 테면 하라는 단호함을 보이고 있고, 충청권 내부에서조차 정작 탈당까지 감행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래도 여권 수뇌부 처지에서 보면 단 한 사람이라도 이탈을 막는 것이 앞으로 정국 운영에 도움이 된다. 이에 따라 DJP는 충청권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한 선물 보따리를 차근차근 풀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 반DJP 정서 갈수록 심해져

충청권 의원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차기 ‘금배지’다. 이들이 내각제 개헌 유보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도 충청권 민심이 자민련을 떠나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따라서 DJP는 충청파가 강력히 요구하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16대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김총리가 내각제 유보 발언이 알려진 다음날 중선거구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친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관측이 기정사실화할 경우 김대통령이 표방하는 정치 개혁은 상당 부분 훼손이 불가피하다. 제도 개선을 통한 전국 정당화 명분이 사라지는 데다 정치인 물갈이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민련 의원들을 단속하는 데는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재 강도 높게 진행되는 사정 정국이 내각제 유보에 반발하는 정치인에 대한 경고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DJP는 내각제 유보 방침에 분노하는 충청권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방안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내각제 개헌 유보에 대한 충청권의 반발은 의외로 심각하다. 앞서 소프레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DJP 약속 파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충청권이 65.6%로 가장 높다. 다음 총선에서 잘못하면 충청표가 JP에게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올 만도 하다. 7월18일 대전시지부 당직자 간담회에서 나온 JP 성토 발언은 충청권의 반DJP 정서를 실감케 했다. 한 간부는 “김총리가 결단을 잘못 내려 또다시 무능한 충청도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JP가 왜 충청도 주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내각제를 안한다고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한 당원은 “왜 JP가 먼저 유보 얘기를 꺼내 또다시 충청도 핫바지라는 말을 듣느냐”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전 출신인 한 자민련 의원은 이런 충청권 민심의 저변에는 JP에 대한 미묘한 정서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충청도 사람들은 JP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충청권을 대표한다는 점 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4대 총선에서 YS에게 팽당한 JP에게 충청권이 표를 몰아준 것도 JP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무시당한 충청권의 자존심 세우기 차원이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DJ에게 비우호적인 충청도 사람들이 지난 대선에서 DJ를 지지한 것은 차기에는 충청도가 권력을 잡는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희망이 깨지는 바람에 JP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대로라면 김대통령은 결코 김총리를 홀대해서는 안되며, 또한 김총리에게 다시 한번 차기를 확실히 약속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민회의가 고민하는 JP 우대 방안은 내각제 유보에 합의해 준 김총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 아니라 들끓는 충청도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비책이기도 한 셈이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국무위원 임명권을 포함한 총체적인 총리 위상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앞으로 JP의 권세는 더욱 하늘을 찌를 것이다. KAL기가 세 번 네 번 떨어져도 꿈쩍 않을 막강 총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국민회의는 김대통령이 임기 중에 반드시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천명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그래야만 차기에 대한 충청권의 희망과 DJP에 대한 지지가 지속되리라는 판단에서다.

국민회의, 한완상·김정남·문성근 영입 박차

하지만 DJP의 최대 관심사는 16대 총선 압승이다. 그래야만 중반기 이후 국정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실질적인 힘도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16대 총선 승리를 위해 여권이 모색하는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당하고 여기에 한나라당 일부 세력과 정치권 외부 인사들이 가세하는 2+α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각각 몸집을 불린 뒤 연합 공천을 통해 선거를 치르는 각개 약진 전략이다.

이 가운데 국민회의는 2+α 전략을 선호한다. 공동 여당이 모두 간판을 내리고 제3의 내각제 세력과 연대해 새로운 전국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2+α를 위해서는 먼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이 이루어져야 한다. 합당론자들은 그 이유를 현실적인 득표 계산에서 찾는다. 이들은 소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를 경우 충청권의 28석 가운데 자민련이 차지할 의석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리라고 본다. 아무리 민심을 달랜다고 해도 내각제 개헌 유보에 따라 민심이 이반해 한나라당이나 무소속 바람이 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수도권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의석의 40%를 차지하는 수도권은 총선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연합 공천을 할 경우 공천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을 뿐더러 연합 공천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합당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자민련 처지에서 볼 때도 합당을 한 뒤 공천 지분을 확실히 챙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총리를 비롯한 자민련은 여전히 합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민련의 합당 알레르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3당 합당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JP가 이끄는 민자당이 충청도에서 완패를 면치 못한데다, JP가 결국 YS로부터 팽당했기 때문이다. 자민련이 끝까지 합당에 반대할 경우 대안으로 모색되는 것이 각개 약진이다. 국민회의는 이 경우 국민회의 당명을 바꾸고 각계각층의 개혁파 인사를 영입해 바람몰이를 시도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총장 등이 이미 많은 인사를 접촉했으며, 상당수 인사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주변에서는 김정남·한완상·이각범 씨 등 개혁파 인사와 배우 문성근씨를 비롯한 의식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주요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2+α와 각개 약진 가운데 어느 한쪽이 될지, 아니면 제3의 대안이 도출될지는 7월19일부터 시작된 양당 8인 협의회의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결말이 난 내각제 유보 결정과 달리 양당간 실무 협의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추상적인 선언 차원을 떠나 구체적인 밥그릇 싸움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양측은 내각제 개헌 시기와 형태, 연합 공천 지분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반DJP 세력은 어떻게든 DJP의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 방침의 문제점을 걸고 넘어질 태세다. 내각제를 둘러싼 정파 간의 전쟁은 큰 고비를 넘긴 듯한 지금부터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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