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초선 의원들의 정치 개혁 포부
  • 안철흥 기자 ()
  • 승인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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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한나라 개혁파 초선 8명 연쇄 인터뷰/총론 일치, 각론은 이견
16대 국회를 향한 여야 소장파 당선자들의 ‘개혁’ 의욕이 만만치 않다. 당 지도부의 경고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흔히 386 세대, 또는 젊은 개혁파 초선 그룹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움직임은 이미 정치권의 눈길을 한껏 끌고 있다. 여야 통틀어 20명 남짓.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교섭단체에 준하는 세를 이룰 수도 있다. 이들이 과연 16대 국회와 우리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민주당에서는 당선자 7명(김성호 송영길 이종걸 임종석 장성민 정범구 함승희)이 ‘창조적 개혁연대’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다. 이들은 벌써 두 차례 합숙 토론을 포함해 6~7 차례 회합을 가졌다. 이 모임의 정범구 당선자는 “국회의원을 한 번만 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정치 개혁과 당내 민주화. 김성호 당선자는 “15대 때의 푸른정치모임과 달리 우리는 생각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실천도 함께 하기 위한 모임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사정도 비슷하다. 당내 386 세대가 주축이 된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가 민주당의 개혁연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들은 5월3일 경기도 양평에서 1박2일 수련회를 갖고 16대 국회 원 구성과 전당대회 등 현안에 대해 다섯 시간 동안 난상 토론을 벌였다. 대학생들의 MT와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된 이 날 회합에는 김부겸 김영춘 박종희 심재철 안영근 오세훈 원희룡 윤경식 이성헌 임태희 정병국 당선자가 참가했다. 여기에 재선인 남경필 의원이 합류했다. 이들은 우선 자유 투표로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당에 건의하기로 하고, 당내 재선 모임인 희망연대와 공동으로 젊은층을 대변할 부총재 후보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5월22일 미래연대 총회를 열어 행동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당론·소신 부딪칠 때는 ‘소신 선택’

양당 지도부는 이런 흐름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며칠 간격으로 ‘개혁보다 당이 우선’이라는 똑같은 메시지를 낸 것을 보아도 각당 지도부의 위기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장파 당선자들은 ‘우리가 하는 일은 당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미 각당에서도 이들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5월10일 김대통령이 당 주례보고 자리에서 “당론 형성 과정에 의원들의 참여 폭을 확대해 의원들의 참여 의식을 제고해 갈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이후 민주당 안에서는 소장파의 주장에 호응하는 흐름이 조금씩 확산되는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재선 모임인 희망연대와 초선 모임인 미래연대가 정치 개혁을 위해 뜻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이들의 행보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들의 움직임은 연대의 폭을 넓혀 가며 조직화하는 양상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개혁 그룹 당선자 15명은 5월17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공동으로 방문하는 등 초당적 연대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이들은 원래 공동 선언문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몇몇 당선자가 주변의 눈길을 부담스러워해 함께 식사만 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선자는 “연대를 서두르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지금은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이 공동 행동을 취할 일은 많을 것 같다. 민주당의 한 당선자는 “1980년대를 관통해온 정서가 같으므로 두 당 당선자 사이의 연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시사저널 designtimesp=9693>은 이들 중 여야 4명씩을 상대로 같은 문항을 주고 답변을 들어 보았다.

원외 인사들에게 불공평한 선거법은 올해 안에 개정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희망이 있다. <시사저널 designtimesp=9696>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젊은 초선 의원 8명을 연쇄 접촉한 결과 이들은 전원 개원하자마자 선거법 개정 발의에 직접 나서겠다고 말했다. 당에서 개정 발의를 미적거린다면 여야의 경계를 넘어 젊은 초선들끼리 함께 개정 발의를 하고, 밖의 여론을 움직여서라도 올해 안에 개정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혁파 초선 의원들의 정치 개혁 의지는 선거법 개정 작업을 통해 첫 번째 꽃망울을 피울 듯하다.

이들이 목소리를 맞출 첫 번째 실험대는 원 구성과 동시에 있게 될 국회의장 선출 건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두 당 당선자들의 생각은 자유 투표로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영춘 당선자는 “교황 선출 방식의 자유 투표를 해야 한다. 또한 의장은 당적을 떠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송영길 당선자도 “교황 선출식 자유 투표가 바람직하다”라고 동의했다. 물론 양당 초선 당선자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는 있다. 민주당 당선자들이 대부분 여야 합의(장성민 임종석 송영길)를 우선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 당선자들은 다수 당이 맡는 것이 원칙(김영춘 안영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차이도 ‘일방적으로 당이 후보를 지명해서는 안되고, 당내에서라도 경선을 거쳐야 한다’는 공통된 목소리 앞에서는 미미하게 보인다.“개원 즉시 선거법 개정에 나서겠다”

당론과 개인 소신이 다를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소신을 펼치겠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민주당 장성민 당선자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와 정당의 대표자라는 지위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상충할 경우 국민의 대표로서 소신껏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답했다. 한나라당 김영춘 당선자는 ‘작은 문제들은 당론을 따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큰 원칙,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큰 원칙에 위배되거나 내 양심에 반하는 당론은 따를 수 없다.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소신껏 투표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인권 문제와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 당론과 다르더라도 소신을 펴야 한다.’(한나라당 안영근) ‘당의 이념·정체성·존립 근거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면 개인 소신대로 행동할 것이다.’(민주당 김성호) ‘당론이 민주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당론이 민주적이지 않을 경우 소신껏 행동하겠다.’(민주당 임종석) ‘민주적 당론은 따라야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존립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에 부닥칠 때는 소신껏 투표하겠다.’(한나라당 원희룡) ‘당론은 최소화하고 민주적 자유 투표의 대상을 넓혀야 한다.’(한나라당 오세훈)라는 응답이 이어졌다. 민주당 송영길 당선자는 ‘당이 구속적 당론, 권고적 당론, 크로스 보팅 사안 등으로 당론 형성 과정을 다양화해야 한다’라고 당에 요구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당론은 존중하겠지만, 당론과 개인 소신이 부닥칠 때는 소신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의정 활동을 시작한 다음에도 초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추상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이들에게 구체적인 개혁 입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을 때 각자 속한 당의 입장에 따라 차이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5대 때 여야의 첨예한 입장 차이 때문에 법 제정이 좌절된 대표적인 개혁 입법으로 부패방지법과 인권법이 있다. 부패방지법은 특검제 연동 여부를 둘러싸고 반대하는 민주당과 찬성하는 한나라당 사이에 의견 합의를 보지 못했고, 인권법은 인권위원회를 민간 법인으로 두자는 민주당안과 시민단체의 뜻을 받아들여 국가 기구로 하자는 한나라당안이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이 두 개혁 입법에 대한 개인 소신을 묻자 당선자들은 각자 속한 당 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민주당 당선자들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사항이니 좀더 검토해 보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들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특검제와 인권위 국가기구안을 심정적으로 찬성했었다고 밝혔다. 장성민 당선자는 ‘부패방지법이 주로 정치인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검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이해한다.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당선자들도 15대 때 한나라당 당론으로 정해졌던 사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 오세훈 당선자는 ‘특검제를 양보하더라도 부패방지법을 빨리 제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평소 생각했지만, 야당에 들어와 보니 상황이 간단치 않더라’며 부패방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특검제가 필요하다고 이전 입장을 수정했다. 김영춘 당선자는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해 논란이 되는 특검제를 양보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 실정에서 여당 실세나 청와대 관련 추문, 검찰 관련 추문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지 않느냐. 대상은 한정하더라도 특검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정범구·임종석 당선자는 여야 합의를 위해서 서로 한 발짝씩 물러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선자는 ‘야당의 특검제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부패방지법 제정을 늦춰서는 안된다’고 답했고, 임당선자도 ‘인권법은 인권단체가 처음 제기했던 것이니만큼 그대로 받아들여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당 당선자들 모두 적극적인 교류 협력을 위해 상호주의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두 당 당선자들은 또한 ‘다가오는 전당대회에서 소장파 부총재나 최고위원을 반드시 선출해서 소장파의 개혁 목소리를 당에 관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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