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心’ 실은 국민회의, 8월의 대변신 성공할까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7.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당 중시’ 피력에 고무…전당대회 맞춰 면모 일신 모색
“아무래도 6월29일을 ‘국민의 날’로 정해야 할까 봐!” 청와대 주례 보고를 끝내고 나온 국민회의 한 고위 당직자가 연신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한 말이다. 12년 전 이 날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6·29 선언이 있었다. 국민들이 소망하던 직선제 개헌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87년 6월29일은 이미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99년 6월29일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이 날 하루의 청와대 풍경을 되짚어 보면 국민회의 당직자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오전 국무회의 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작심하고 국무위원들을 나무랐다. 문제는 각 부처에서 일으키고, 대통령에게 이를 해결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반면 이 날 오후 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국민회의 지도부의 주례 보고 자리는 분위기가 사뭇 화기애애했다. 김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모든 문제를 당이 주도해 처리하라면서 당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당을 ‘민의를 체감하는 집단’이라며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다.

관료들에 대한 질책과 당료들에 대한 격려. 같은 날 펼쳐진 청와대의 대조적인 풍경을 놓고 국민회의측은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 김대통령이 당의 중요성을 절감했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1년4개월 동안 당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국 주도권은 늘 청와대와 정부 쪽에 가 있었고, 김대통령은 당정 갈등 또는 신·구주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당보다 청와대와 행정부 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김대통령은 당에 대한 관심이 ‘말로만 애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곧바로 선물을 한아름 안겼다. 정균환 총장이 주동이 되어 적극 건의한 ‘공무원 경조사 수수 금지 범위 1급 이상 상향 조정’안을 선뜻 받아들인 것이다.

DJ, 관료 불신·총선 부담 겹쳐 태도 바꿔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왜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었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관료들에 대한 실망감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김대통령은 ‘경험’과 ‘전문성’있는 참모를 중용했다. 오랜 야당 생활로 인해 주변에 국정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 부족한 데다, IMF 극복과 안보 체제 확립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노련한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료 출신 참모들이 옷 로비 사건과 진형구 파문을 거치는 동안 보여준 태도는 한마디로 한심했다. 김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이런 관료들에 대한 실망감이 당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환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이유는 16대 총선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도 당의 활성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에게 내년 총선은 집권 후반기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 분수령이다. 내각제 개헌 여부를 떠나 여권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야만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이제는 선거의 첨병인 당에 확실히 힘을 실어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고무된 국민회의측은 차제에 당을 정국 운영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후속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국민회의가 분기점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벤트는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8월 전당대회 불가론이 일었다. 선거구제 협상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한 8월 전당대회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회의론은 최근 부쩍 힘을 얻고 있는 ‘여당 체질 개선론’에 밀려 쑥 들어갔다. 나중에 다시 전당대회를 열더라도 일단 8월에 당의 면모를 확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6월30일 활동 기한이 만료된 당쇄신위원회(위원장 김근태)는 이미 지도 체제 개편을 포함한 종합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는 대로 보고할 계획이다. 현재 쇄신위가 마련한 보고서에는 당을 대표 체제로 바꾸고, 당무위원을 절반으로 줄이며, 지도위원을 아예 없애는 등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는 또 국민회의 이름을 바꾸는 방안도 들어 있다. 쇄신위의 한 관계자는 “합당·정계 개편·신당 출현 등 하반기 정국 향방을 놓고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지만,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그 구심점은 강한 여당이어야 한다”라면서, 대통령도 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작업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므로 국민회의의 대변신은 머지 않아 이루어지리라고 전망했다.

대통령이 정치의 중심인 당을 중시하고, 민심 전달 창구인 집권 여당이 국정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나치면 덜하니만 못하다’고, 일각에서는 여당의 지나친 ‘민심 주장’이 자칫 여권의 정책 혼선을 초래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정당의 속성상 선거철에 쏟아내는 여당의 정책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벗어나 오로지 표몰이에만 신경 쓰는 단발성 정책이 되기 십상인 탓이다. 1년4개월 동안 여당다운 여당 노릇을 못한 국민회의가 어떻게 변신하느냐가 차기 총선의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