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DJ도 양당제 원할 것이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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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DJP가 개헌 좌우하면 잘못, 국민이 결정해야”
국민회의 이인제 당무위원이 여의도에 돌아왔다. 국회 앞 정우빌딩 807호에서 그는 요즘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소화하느라 빡빡한 시간을 보낸다. 강행군이다. 마치 대선에서 낙마한 뒤 기피해온 언론 접촉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치우겠다는 기세이다. .

5백만표의 귀국. 언론은 이인제 위원의 여의도 입성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한다. 이는 어쩌면 이위원의 앞으로 행보에서 늘 따라붙을 ‘딱지’ 같은 것일 터이다. 이위원이 이 딱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든 어색하게 여기든, 그에게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아픈 딱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경선 불복이라는 불명예이다. 대선 때도 그를 괴롭힌 사안이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더구나 차기를 넘보는 주자에게 과거의 기록은 벗을 수 없는 화인(火印) 같은 것이다.

“내가 어떻게 JP의 후계자가 되겠는가”

그래서 새삼스럽지만 ‘경선 불복’을 맨 처음 질문으로 던졌다.

“선거가 끝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선에 불복한 선례가 이위원의 행보에 장애로 작용할 것 같다.”

“경선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국민과 당원에게 약속했던 것이지 누구와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로서는 더 큰 목표를 위해서 출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경선 불복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이다.”

“당시 상황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도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때가 되면 그 얘기가 다시 나올 수는 있겠지. 지금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는 파렴치하게 약속을 어겼다고 보지 않는다. 그때도 그랬지만 나는 당당하게 더 큰 목표를 위해 출마했다고 밝혀왔다. 여론을 존중하는 선진국이라면 나처럼 결단을 내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위원은 97년 9월13일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 변화’를 거론했다. 당시 그는 “이대로는 낡은 3김 정치 구도를 청산하기가 무망하다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 경선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고통 속에서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국민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라고 출마한 배경을 설명했다. 즉 지지율이 형편없이 떨어진 이회창 후보로는 3김 청산과 세대 교체라는 여망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신이 출마했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지금은 DJP 공동 정권의 일원이 되어 있다. 현실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정치의 본령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위원은 지금 그 틀 안에서 세대 교체 꿈을 키워 가고 있다. 특히 최근 자민련에서는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충청권 차세대 주자론’이 제기된 바 있어, 자민련에서도 가끔씩 이인제 이름 석자가 오르내린다. 물론 이위원이 귀국 일성으로‘내각제 반대와 대통령 중심제 지지’ ‘양당제를 통한 전국 정당화’ 등을 제기해 자민련의 노선과 분명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JP 후계자 가능성은 일단 접어두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도 내친 김에 DJP 공동 정권의 운명과 이위원의 정치 장래가 어떤 상관 관계를 갖고 있는지 질문했다. 예상대로 JP와 자신을 ‘연동’시키지 말라는 답변이었다.

“이위원은 국민회의 소속이지만, 차세대 주자라는 측면에서는 DJ와 JP 모두에게 ‘어필’한다는 지적이 있다. 나이로는 DJ가 얘기하는 ‘젊은 피’에 속하고, 출신 지역으로는 충청권이고….”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에이, JP하고 무슨….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나? 그 분들에게 물어봐야지. 당사자인 그 분들이 알지.”이인제, DJ가 바라는 대로 행동?

반면 그는 자기가 제기한 ‘내각제 논의의 국민 주권화’, 즉 내각제 개헌이 양김 간의 게임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 질문하자,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내각제 개헌 여부가 국민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국민이 내각제 개헌을 원하면 두 분이 약속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민이 내각제 개헌을 원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 내각제 개헌 논의는 출발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앞뒤가 바뀌었다. 두 분은 내각제 논의를 ‘국민’으로부터 출발토록 해야 한다. 나의 발언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원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을 놓쳐서는 안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주장이 내각제 논의 중단을 바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을 거스르는 듯하면서도, 내용에서는 앞으로 정국에서 김대통령이 바라는 최적 조건을 앞서서 대변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길 정무수석의 ‘큰 틀의 정계 개편’ 발언 파문을 진압하자마자 이위원의 귀국 발언이 터져나왔는데, 청와대와 교감이 있는 것 아닌가?”

“교감은 무슨 교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바깥에서 6개월 지내는 동안 직접이든 간접이든 김대통령과는 어떠한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만 하고 돌아왔다. 소신을 얘기한 것일 뿐이다.”

그는 양당제를 통한 전국 정당화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정국이 다당제로 가느냐 양당제로 가느냐,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하면서 “다당제로 가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정계 개편과 정치 개혁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놓고 볼 때, 양당제를 통한 전국 정당화 추진만이 지역 정당 구조를 깨고 정책 정당으로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덧붙여서 “김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고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로서는 김대통령이 양당제로 정계 개편을 꾀한다는 확증은 없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PK 민주계와 5공 세력의 결집론마저 나오는 상황이어서, 총선 이후의 정치 지형이 소수 지역 정당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이위원은 귀국하자마자 ‘동교동과 상도동의 화해’를 강조하며 DJ와 YS를 차례로 만났지만, 상도동 방문 때 YS의 반응은 냉랭했다. YS는 이위원에게 그동안 국민회의 입당을 잘못된 결정이라고 두 차례 힐문했고, 이번에도 ‘국민회의에 입당하지 않고 외국에 나가 있거나, 국내에 조용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YS와 관련해 질문해 보았다.

“YS는 사실상 정치를 재개했고, 양당제와는 정반대로 PK 민주계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 가고 있다.”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인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경험과 경륜이 누구보다 높으신 어른이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틀을 유지시켜, 유산으로 남겨 주리라고 믿는다.” 지극히 의례적인 답변이다. YS로부터 정치 세례를 받고 지금은 DJ에게 몸을 의탁한 그의 처지가 환기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요즘 이인제 위원은 보폭을 의도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귀국 발언의 파장도 파장이려니와 접촉하는 인사들도 하나같이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다. DJ(4월27일)·이만섭 고문(28일)·YS(29일)·권노갑 고문(30일) 등…. 언론도 자연스럽게 이위원의 행동 반경을 따라다니는 형국이다.

이위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당원으로서 백의종군할 것이다. 지금 특별한 계획은 없다. 앞으로 정계 개편과 정치 개혁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뒤 결정할 것이다. 많은 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혼자 거취를 결정하지 않고 당과 상의할 생각이다”라며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어쨌든 국민회의 안에서 역할을 모색하는 셈이다. 그는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 지역은 정하지 않았다. 서울·경기와, 충청권 모두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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