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6·3 재선거 전략 수정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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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재선거 인물난에 ‘고승덕 파동·꾸어다 쓰기’ 추태
오는 6월3일로 예정된 서울 송파 갑과 인천 계양·강화 갑 재선거는 20세기에 치러지는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다. 다음 총선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재·보선 사유가 생겨도 선거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런 ‘역사적 의미’를 지닌 탓일까? 이번 재선거는 여야 모두 공천 과정에서부터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최대 촌극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고승덕 파동. 한나라당이 자민련 박태준 총재 사위인 고승덕 변호사를 송파 갑 후보로 공천했다가 결국 후보 사퇴로 막을 내린 이 사건은, 집권 여당의 정부조직법 변칙 처리와 맞물려 경색 정국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나라당, 이한구 사장 기용 불발

고승덕 파동에 이어 한나라당을 또 한번 우울하게 만든 사건은 ‘이한구 기용 불발’이다. 고씨 이후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한나라당은 어렵사리 대기업 경제연구소 이한구 사장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이사장은 고씨 못지 않게 인지도가 높은 데다 경제 전문가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최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이사장도 딱히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6일 이회창 총재가 좋은 사람이 있는데 아직 공개할 시점이 아니라고 한 것도 이씨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한구 카드’는 얼마 못가 장애물에 부딪혔다. 불행히도 이씨가 자민련 김용환 수석 부총재와 동서지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자민련 총재의 사위에 이어 같은 당 수석 부총재의 동서라는 기연. 한나라당으로서는 또다시 무리수를 두기 힘든 처지였고, 이씨 역시 ‘제2의 고승덕’이 될 것을 꺼려해, 결국 이한구 카드는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이회창 총재가 직접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이때부터다. 연거푸 두번이나 자민련측 친인척 장벽에 부딪힌 후, 어쩔 수 없이 ‘대안 부재’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안 부재는 결코 야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공동 여당의 한 축인 자민련 역시 송파 갑 후보를 찾지 못해 고전하다 결국 국민회의 사람인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 부시장을 ‘꾸어다 쓰는’ 촌극을 연출했다.

김희완씨는 어느 모로 보나 자민련 성향은 아니다. 85년 신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통일민주당과 민주당을 거쳐 국민회의에 입당한 그는 14~15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에 도전해 두번 모두 석패했다. 95년 조 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일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96년 정무 부시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법에 따라 국민회의 당적은 버렸지만, 이번에도 국민회의 쪽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자민련 후보로 공천장을 받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아무리 연합 공천이라지만 자민련행을 결정한 김씨나 김씨를 공천한 자민련이나 무소신의 전형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양측 모두 당선만을 염두에 두었다는 점에서는 고승덕 파동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도 나온다. 아닌게 아니라 자민련의 ‘김희완 공천’은, 사람에 관계없이 의석 늘리기에만 급급한 자민련과, 정치적 소신보다 국회의원 배지에만 연연한 젊은 정치인의 이해 관계가 야합했다는 점에서 제2의 고승덕 파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민련, 김희완 공천이 떨떠름한 까닭

물론 자민련이나 김씨 모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민련의 한 고위 당직자는 ‘스스로 선거를 치를 만한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공명 선거 분위기가 확산되는 만큼 이번 재선거는 중앙당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치러야 하는데, 그동안 접촉한 몇몇 후보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조건 출마’로 배수진을 친 김씨의 엄포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의 고정표가 상당해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자민련이 누구를 내도 승산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의 해명은 더 ‘정치적’이다. 공동 여당은 체질이 90% 이상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흔쾌히 자민련행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민련 안팎으로부터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공천장을 받는 날 당사의 1층부터 7층까지 누비고 다니며 ‘확실히 자민련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비슷한 경우로 자민련 사람이 된 최기선 인천시장이 당선한 뒤 한번도 당사에 나오지 않은 것을 떠올린 듯, 당직자들의 굳은 표정은 좀체 펴지지 않았다.

20세기 마지막 선거는 오로지 당선에만 연연하는 정치권의 추태로 얼룩졌다. 이 구태가 2000년대에는 부디 ‘지구를 떠났으면’ 하는 것이 유권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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