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구름 너머 구름, 위기의 ‘햇볕 정책’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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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북한 정책 전망/미국 전략 등과 얽혀 난맥 예상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발단은 서해에서 벌어진 남북한 해군의 교전. 이어 북한은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를 6일이나 억류했다가 풀어주었다. 억류 사태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벌인 대북 사업 가운데 가장 큰 성과인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다.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도 핵심 의제인 이산 가족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모두가 부정적인 소식들이다.

김대통령의 태도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선 대북 ‘상호주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김대통령은 베이징 차관급 회담과 관련해 이산 가족 면회 사업 약속이 실현되지 않으면 나머지 비료 10만t을 줄 수 없다는 점과, 북한이 회담을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도 서두르지 말라는 두 가지 지침을 주었다고 밝혔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비료 20만t은 원래 회담 진전과 연계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김대통령도 처음에는 연계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한국 정부의 강경 노선 복귀 노려

정부는 또 북한이 당국 차원에서 관광객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가하지 않을 작정이다. 민영미씨 억류 사건으로 악화한 국민의 대북 감정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금강산 관광객의 안전 보장 문제는 관광이 시작되던 지난해 말부터 지적되었다. 현대와 북한측이 합의한 신변안전보장 각서와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관광 세칙을 맞대놓고 들여다보면 상충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민영미씨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 신포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는 한국 기술자들은 금강산 관광객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어 대조적이다. 이 경우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 사이에 신분 협정이 맺어져 있다. 따라서 한국 기술자들은 외교관에 준하는 처우를 받는다. 또 공사가 진행되는 지역에 북한 사람이 드나들지도 못한다. 한국 기술자들은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만 북한법에 따라 처벌된다. 그러나 이 중범죄가 어느 정도 범죄인지 아직까지 합의된 바가 없다. 그러니 합의될 때까지 이들은 어떠한 북한 법률 조항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경수로 건설 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례를 견주어 보면 현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금강산 관광 성사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최근에 나타난 정부의 태도 변화에 원인을 제공한 쪽은 북한이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대외경제연구원 조명철 박사는 남북 간에 당분간 냉각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해 교전 사태가 북한이 치밀하게 계산하고 도발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태였다면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복 형태는 한국 인명에 위해를 가하거나 한국 정부에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민영미씨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 정책에 상처를 주는 방식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햇볕 정책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들은 한국에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 등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 북한이 이를 이용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다. 북한이 이같이 대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햇볕 정책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중국의 주문을 거부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 식으로 개혁·개방해야 한다고 줄곧 부추겨 왔다. 이유는 당연하다. 중국으로서는 1천3백㎞나 되는 조·중 국경선이 조용해야 한다. 이 국경선에서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으로서는 식량난과 경제난 때문에 조·중 국경선을 넘는 탈북자들이 골칫거리이다. 또 북한이 불필요한 도발을 계속할 경우 동아시아에 미국의 군사력이 증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바로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최근 중국은 북한의 김영남 일행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개혁과 개방을 계속 강조했다.

김영남의 방중 일정에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인 상하이 방문이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영남은 계속 상하이 방문을 거부하다 결국 뜻을 굽혔으나 산업 시설은 보지 않고 관광지만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개방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것이다.

개혁·개방과 햇볕 정책을 두려워하는 북한의 최근 기류는 6월1일자 <로동신문> 사설 ‘제국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를 배격하자’에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를 철저히 배격하지 않으면 나라와 민족이 망하고 사회주의가 빛을 잃게 되며 나아가서 인류가 파멸하게 된다는 것이 20세기가 남긴 교훈이다. … 력사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자들의 지배적 책동은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다른 나라를 군사 경제적으로 침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상 문화적 침투의 방법으로 와해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강도적인 힘의 론리에 기초한 것이라면 후자는 교활한 내부 와해 전략에 기초한 것이다. … 제국주의 사상 문화는 화목하였던 사회주의 사회에 반목과 대립, 불화의 씨를 퍼뜨리는 온상으로,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사상적 <트로이 목마>로 되었다.…’

북한의 기본적인 대남 전략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미국과는 미사일과 식량 문제로 채널을 트지만 한국 정부는 따돌린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협상해 체제 유지를 보장받고, 한편으로는 한국 내부의 반정부 여론을 부추긴다. 북한의 노림수는 한국 정부가 대북 강경 노선을 되살리는 것이다. 대북 강경 노선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 물론 김정일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강성으로 가야 하고, 미국 원조를 받아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

“당근·채찍 단계적으로 병용해야”

북한의 의도가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선 북한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햇볕 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금까지의 햇볕 정책에 쏟아지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90년대 이후 모든 정권이 북한 정책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고 임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남북한이 몇년 뒤에 틀림없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가졌던 생각은 95년에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북한이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식량 원조 등 당시의 북한 정책은 모두 이 기조 위에서 진행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잘해주면 북한이 감읍해서 응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라면 햇볕 정책은 머지 않아 김영삼 정부의 북한 정책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 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심재훈 서울지국장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에 당근만 있고 채찍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을 일정한 목표에 도달시키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여러 단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제공하는 당근도 북한이 이 단계에 걸맞는 변화를 보일 때 하나씩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북한이 움직이지 않으면 상응하는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없고 앞길 험난

그의 지적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북한관과도 일치한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의회는 예산권과 전쟁 선포권을 쥐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중유 대금 5천만 달러는 의회가 입법해서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그만큼 미국 의회의 정서는 한반도 문제에서 결정적이다.

또 북한이 대화할 의사를 보이면 대화에 나가고,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애써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에 질질 끌려갈 것 없이 북한을 내버려두자는 전략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략에도 문제는 있다. 문정인 교수(연세대·국제정치)는 “무시 전략을 쓸 경우 북한 동포들이 극심한 고통에 허덕이고, 그 자체가 화생방 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부추긴다. 이럴 경우 국제 사회는 북한을 강압하고 응징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전쟁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궁지에 몰려 있다. 사실 김대통령이 소신껏 대북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에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을 살피다 보면 일관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미국의 대북 전략이다. 미국의 북한 정책을 좌우하게 될 페리 보고서는 올해 말까지 완성될 계획이다. 그 전에 김대중 정부는 북한 정책에서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 남과 북 사이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단계 별로 구사하며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북한을 선제 공격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힘들다. 북한은 미국이 지목하고 있는 대표적인 ‘불량 국가’이다. 미국은 냉전 이후 이라크를 치고 코소보 문제마저 나토를 내세워 해결했다. 북한이 다음 목표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전략은 점점 북한 목을 죄어가는 강성 전략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올해 말까지 남북 관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 김대중 정부의 처지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는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한·미·일 공조 체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한·미·일 세 나라가 북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 목소리는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김대중 정부의 기본 방침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대통령은 이제 북한에 상호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황이 그를 압박하고 있다. 객관적인 여건은 지금보다 전향적인 북한 정책을 펼치기 힘든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간은 없고, 김영삼 대통령 식의 깜짝 쇼를 할 수도 없다. 김대통령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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