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DJ 아킬레스건 노린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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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아킬레스건 ‘실업 문제’ 집중 공격… ‘생존+국민 지지’ 노린 절체절명 승부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일 패퇴하던 연합군처럼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지난해 8월 말 이회창 총재 체제 출범 직후 불어닥친 검찰의 세풍(稅風)과 총풍(銃風) 수사에다 여권의 의원 빼가기식 정계 개편 공세로 인해 한나라당은 절체 절명의 상황에 놓였었다. 올해에도 이같은 상황에 변화가 없자 당내에서는 연합군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감행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같은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회창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나

사실 한나라당이 전개해 온 대여 투쟁은 일관성 있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이총재와 당 모두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검찰의 세풍·총풍 수사와 여권의 정계 개편 공세가 ‘이회창 죽이기’와 ‘한나라당 괴멸’을 위한 전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총재가 지난해 12월31일‘국회 529호 사건’으로 안기부의 정치 사찰 공세를 주도하면서 “지금 죽든 나중에 죽든 마찬가지다”라는 각오를 피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같은 죽기 아니면 살기식 투쟁 덕분에 이총재가 살아 남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다. 세풍과 총풍이 불어닥쳤을 때만 해도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지레 짐작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였다. 세풍과 총풍은 그로 하여금 3김이 30년 넘게 쌓았던 정치 수업을 속성으로 마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빠른 시일에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유일한 맞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같은 대여 투쟁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설령 그렇게 해서 살아 남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살아 남은 자의 슬픔’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당내 전략가들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같은 대반격 전략 마련에 고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과 이총재 모두 여권의 대대적인 공세로부터 살아 남는 동시에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당과 지도자로 인정받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당내 전략가로 떠오른 이부영 원내총무와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이 이총재가 지금처럼 하루 하루 살아 남는 데만 역점을 두는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전술에 더 이상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이총재가 단기 전술에만 집착할 경우 자신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미래도 결코 밝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현재 이총재의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전술은 기획위원장인 정형근 의원과 정태윤 전략기획팀장이 개발하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다가오는 봄에 감행할 수 있는 상륙 작전의 무기는 무엇일까. 먼저 김대중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가 가장 약한 전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처럼 ‘여권의 노르망디’가 어디냐는 것이다. 이부영 원내총무와 윤여준 소장은 실업 문제, 북한 금창리 지하 시설 문제 그리고 내각제 개헌 합의 이행을 둘러싼 공동 여당간 분란 등 세 가지를 든다.

두 사람은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상륙 작전 후보지로 실업 문제를 꼽는다. 정부가 미국의 21세기 세계 패권 전략인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추진하는 공기업과 우량 기업 해외 매각 그리고 대기업 빅딜로 인한 실업 사태가 올봄에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이들은 김대중 정부 경제 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전략으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노조 세력과 연대 때 보수파 반발이 문제

만약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경제 구조 조정에 기습 공격을 감행할 경우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자본에 매각될 공기업들과 빅딜에 불만인 기업들의 노조를 중심으로 구조 조정에 대한 반감이 폭발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면 한나라당과 이총재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당과 지도자로 떠올라 정국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

이총재는 이미 이같은 전략을 수용한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총재는 1월21일 소속 의원들과 함께 금융 구조 조정과 빅딜로 인해 고통받는 충북은행과 LG반도체 공장이 있는 청주를 방문해 이 지역 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총재가 1월24일 마산 집회를 강행한 배경도 이 지역 중소기업의 부도 사태로 실업자가 폭증해 김대중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총재가 이총무와 윤소장의 전략에 따라 김대중 정부의 경제 실정을 공략하는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지는 알 수 없다. 이 작전을 감행하려면 한나라당은 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조 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이를 당내 보수파가 두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같은 가능성은 이총재가 총재 취임사에서 소외 계층을 대변하겠다고 하자 당내 보수파가 ‘진보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한 데서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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