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 몸통은 좋은데 머리는 글쎄…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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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상임위원장 나눠먹기 구태 재연… 상임위원 배정은 무난
여야는 6월9일 16대 국회 전반기의 상임위원장 인선을 확정하고, 상임위별 의원 배치를 끝냈다. 각 상임위에 전문성을 지닌 초·재선 의원이 골고루 배치되는 등 상임위원 구성은 무난하다는 평이다. 반면 상임위원장 인선은 뒷말을 많이 남겼다.

16대 국회의 상임위원장은 19명. 이 중 한나라당이 9명을 차지했고, 민주당 8명, 자민련 2명이다. 그러나 해당 상임위 활동 경험이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의원이 위원장이 된 상임위는 법사위·과학기술정보통신위·문화관광위·산업자원위 등 일부에 그쳤다. 이는 여야 모두 전문성이나 해당 상임위 활동과는 상관없이 계파 안배나 논공 행상 차원에서 상임위원장을 뽑았기 때문이다. 몸통은 괜찮은데 머리는 영 아니라는 평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민주당의 인선 기준은 영입파 배려와 지역 안배로 요약된다. 김명섭 정보위원장·유용태 환경노동위원장·이용삼 행정자치위원장이 영입파 배려 케이스로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천용택 의원이 국방위원장에 임명된 것도 지도부의 배려에 따른 것. 민주당은 전문성을 살린 인선이라고 발표했지만, 불과 1년 전까지 국방부장관을 맡았던 인물이 친정인 국방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소리가 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나누어 먹기식 위원장 인선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 박명환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통일외교 분야의 경험이 전혀 없다. 이규택 교육위원장도 교육 분야 초보자. 이들은 정무위원장에 내정된 박주천 의원과 함께 지난번 총무 경선 때 불출마를 선언한 인물들. 이 때문에 경선 포기 대가로 상임위원장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인 출신이면서 당 재정위원장인 최돈웅 의원이 재경위원장을 맡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오는 등 여야는 상임위원장 인선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다. 상임위원장 인선에서 소외된 민주당의 한 의원은 “2~3개 상임위원장이 막판에 바뀌는 등 지도부의 전횡이 심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도 국회직은 당직과 다르다면서 “상임위에서 토론을 통해 위원장을 선출하도록 하든지, 의원총회에서 상임위 별로 전문성 있고 확실한 사람들을 후보로 선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견주어 상임위원 배치에서는, 대부분의 상임위가 초·재선 의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선수(選數) 별로 고루 분포된 점이 지난 국회와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은 특수 상임위를 제외한 14개 상임위에 초선 의원을 골고루 배치했다. 한나라당도 통외통위 등 극히 일부 상임위를 제외하고는 초선에게 문호를 대폭 개방했다. 전문성 갖춘 붙박이 상임위원 늘어

인기 상임위인 건교위·재경위 등에도 초선 의원이 다수 배치되었다. 민주당은 건교위에 초선인 김윤식·설송웅·이희규 의원을 배치했고, 한나라당에서도 도종이·안경률 의원이 초선으로 건교위원이 되었다. 초선 재경위원도 민주당 강운태·김기재·박병윤·심규섭·장영신·홍재형, 한나라당 김만제·이한구 의원 등 7명에 이른다.

과거 ‘원로원’이나 ‘상원’ 등 별로 명예롭지 못한 이름으로 불렸던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젊은 의원으로 채워지게 된 것도 새로운 변화이다. 민주당은 김성호·김운룡·이낙연·이창복·장성민 의원 등 초선 5명을 통외통위에 배치했다. 문희상·유재건 의원 등은 재선. 이들 초·재선 7명을 빼면 3선 이상인 민주당 통외통위원은 2명에 불과하다. 모처럼 열린 남북 대화의 분위기를 강력히 뒷받침하면서 후반기 국정 운영의 이니셔티브를 남북 문제 해법에서부터 찾겠다는 여권의 복안이 드러난다. 반면 한나라당은 위원 11명 전원을 재선 이상 중진들로 짰다.

전문성을 살려 붙박이 상임위를 유지하는 의원이 늘어났다는 점도 16대 국회의 특징이다. 전문가형 상임위원의 대표적인 인물은 농림해양수산위의 민주당 김영진 의원. 김의원은 13대 이후 4선을 하는 동안 내리 13년째 농림해양수산위를 고집해 명실공히 최고의 농림해양통으로 불린다. 이밖에도 교육위의 민주당 설 훈 의원, 환경노동위의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법사위의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국방위의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이 15대 때 국회에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줄곧 같은 상임위만을 고집하고 있는 전문가형 의원들이다. 특히 5선인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14대 후반기부터 법사위원을 연임하고 있는 법사위 최고참. 그는 이번에도 가장 비인기 상임위인 법사위에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자원했다. 민주당 법사위원 중 유일한 비법조인 출신인 그는 법조인 출신보다 더 출중하게 상임위 활동을 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상임위 중에서는 특히 문화관광위가 붙박이 의원이 대거 포진한 대표적인 상임위이다. 3선인 최재승 문광위원장은 15대부터 5년째 문광위원을 맡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밖에도 신기남·정동채 의원 등 재선 의원 2명이 국회에 들어온 이래 줄곧 문광위원을 지내고 있다. 한나라당에도 문광위 터주 대감이 3명 있다. 3선인 박종웅 의원은 14대부터 내리 9년째 문광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남경필·신영균 의원도 15대에 이어 문광위 인맥의 맥을 잇고 있다.

물론 전문성이 상임위 활동을 하는 데 최상의 잣대는 아니다. 상임위 소관 부처와 관련된 업종 출신 인사가 해당 상임위원이 되어 로비스트로 활동하거나 관련법 개악에 앞장섰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지만 16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위의 민주당 김명섭 의원(정보위원장 겸임)은 약사 출신이고 민주당 고진부, 한나라당 김찬우·박시균 의원은 의사 출신이다. 또한 과기정통위원회에 민주당 남궁석·곽치영 의원이 배치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 남궁의원은 현정부의 전임 장관 출신으로 자신이 입안했던 정책을 감시·견제해야 할 처지이고, 데이콤 사장 출신인 곽의원은 IMT 2000 사업 등 이권이 걸린 사업을 다루어야 할 처지이다.

농림해양수산위원 대부분이 농촌이나 바닷가 지역 출신들이라는 점도 문제. 상임위 활동을 지역구 관리용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림해양수산위원 22명 중 20명이 농촌이나 바닷가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이들 또한 전문성과 도덕성 사이의 갈림길에 서서 고민해야 할 듯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과 도덕성은 상임위 활동의 기본적인 두 잣대라면서, 전문성 있는 의원들이 로비스트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상임위 회의록을 공개하고 법안심사소위나 청원심사소위 진행 과정을 공개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도를 개선해 국회를 투명하게 해야만 의원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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