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군단 통추, 민주계와 손잡나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7.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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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추진회의, 정개 개편 외치며 합종연횡 선두에 나서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세론에 대한 역풍이 당 밖에서도 불고 있다. 진원지는 엉뚱하게도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한때 통추가 개혁 성향의 이회창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요즘 통추 내부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통추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25일, 제2차 시국토론회를 통해서다. 통추는 이 날 토론회에서 정가의 잠복 변수인 ‘정계 대개편’을 정면으로 들고 나왔다. 당면한 국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 여야 구도를 깨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통추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제정구 의원은 “여야를 떠나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주체가 탄생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약한 세력과 언론의 무관심 속에 기를 못펴던 통추가 정계 대개편을 외치고 나선 데에는, 최근의 정국 상황과 달라진 국민 정서가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 한보 사태 이후 거세진 정치권에 대한 불신 풍토가 ‘3김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라는 통추의 슬로건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통추는 이 철 노무현 박계동 원혜영 박석무 홍기훈 김원웅 등 과거 의정 활동을 주도했던 스타 군단을 활용해 정계 개편론 바람을 일으킬 계획이다.

“집권 세력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여야를 흔들어 새 판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추가 올 대선을 향해 열어놓았던 길은 대략 세 가지. 우선 강력한 야권 제3 후보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여의치 않으면 독자 후보를 모색하고, 그마저도 안되면 다른 정파와 연대한다는 쪽이었다. 그런데 통추 내부의 최근 분위기는 마지막 단계인 새 정파와 연대하는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정가 주변에서는 통추가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과 민주계라는 구체적인 연대 대상까지 정해 놓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통추의 김원기 대표와 이고문은 논산 훈련소 입소 동기로 40여 년을 알고 지낸 막역한 사이다. 12대 국회 때 김대표가 당시 서울대 교수이던 이고문을 민한당 공천으로 영입하려다 무산된 인연도 있다. 더구나 이고문의 친동생인 이수인 의원이 통추 소속이다. 그런 김대표와 이고문이 요즘 빈번하게 만나며 교감을 나누고 있다. 지난 3월9일에도 한 곰탕집에서 단 둘이 소줏잔을 기울였다.

김대표는 또 민주계의 좌장 역을 이어받은 서석재 의원과도 수시로 연락하고 있다. 김대표의 측근은 서의원이 항상 직접 전화를 걸어 “어른 계셔?”라며 김대표를 찾는다고 귀띔한다. 두 사람은 민한당 시절 비주류를 같이 했고, 김대표가 평민당 원내총무를 할 때 서의원은 통일민주당 총장이었다.

제정구 의원 역시 민주계 인사들과 만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난 3월19일에는 서석재 의원·김운환 의원 등과 장시간 환담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비교적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는 성격인 제의원은 최근 공·사석 가리지 않고 “집권 세력은 전적으로 나쁘고, 집권 안한 세력은 무조건 좋은 편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군사 독재 시절 단물을 맛본 보수 세력들의 정권 재창출 기도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제의원은 이에 덧붙여 이회창 대표가 최선의 카드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이대표가 보수민정계의 얼굴 마담으로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담겨 있다. 정가에서는 이를 놓고 통추가 민주계와 연대하기 위해 명분 쌓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김대표를 비롯한 통추 지도부는 활로 모색의 일환이라고만 말한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는 데에 불만을 나타내는 회원들도 있다. 그러나 이회창 대표와는 배짱이 안 맞는다는 민주계와 통추가 똑같이 이수성 고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3자 연대를 위한 충분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따라서 통추가 구상하는 정계 개편 구도는 이수성 고문을 중심으로 한 신한국당 민주계와 통추 간의 연대로 귀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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