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정형근 경계 경보’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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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의원 DJ 공격에 국민회의 비상…“색깔론 또 나올라” 대응책 마련 부심
국민회의에 ‘정형근 경계 경보’가 울렸다. 여당이 올 대선에서도 DJ를 공격하는 주무기로 색깔론을 사용할 계획이며, 핵심 공격수는 안기부 출신 정형근 의원이 되리라는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DJ 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은 지난 2월26일 터졌다. 정의원은 비공개로 열린 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서의원이 북한 허 담에게서 받은 5만달러 가운데 만달러를 김대중 총재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라고 주장했다. 선거 때만 되면 고개를 쳐든 ‘DJ 북한돈 수수설’이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바로 전날 신한국당 이용삼 의원과 허대범 의원이 DJ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대정부 질문 원고를 배포했을 때만 해도 국민회의는 그 배후가 누군지 고심했다. 그러다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국장을 지낸 정의원이 곧바로 두 의원을 거들고 나서자 ‘역시나’하며 비난의 화살을 정의원에게 퍼붓고 있다. 국방위 소속 한 의원은 정의원이 안기부와 청와대 강성파의 지원을 받아 악의적으로 김총재를 음해하고 있다면서, 이미 재판을 거쳐 무혐의로 판정난 해묵은 과거사를 또다시 들추는 것은 명백한 용공음해라고 분개했다.

유종필 부대변인 역시 정의원을 ‘매카시의 수제자’라고 몰아세우며, 그가 노태우 정권 말기 안기부 1차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에게 안기부 정보를 빼돌린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국민회의가 정의원에게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DJ와 정의원 간의 악연 때문이다. DJ는 누가 뭐라건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이유가 용공음해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대선 두 달 전에 터진 이선실 간첩 사건은 정국을 급속도로 냉각시키며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공안 당국이 ‘북한이 공개적으로 김대중 지지를 선언했다’라고 폭로해 DJ를 궁지로 몰았다. DJ는 결국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대선에서 패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의 담당자가 모두 당시 안기부 1차장이던 정의원이었다. 그런데 정의원이 또다시 과거 경력을 십분 활용해서 DJ를 공격할 태세이니 국민회의로서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의원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DJ를 물고늘어지는 것일까. 정의원은 DJ에게 사감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대공 수사를 담당했던 그간의 경험과 국가 안보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자기 소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의원은 사석에서 “안기부 시절 제발 간첩을 잘 잡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 드렸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곤 한다. 그는 최근 안기부장 교체설이 나돌면서 한 의원이 배지를 떼야 하는 부담 때문에 안기부장 자리를 꺼린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나라면 금배지를 포기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정의원이 앞장서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의원 모임’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비장의 카드 준비

이런 정의원을 놓고 야당에서는 임꺽정 병에 걸린 의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요즘 방송 드라마에 등장하는 임꺽정이 시도 때도 없이 ‘나라가 걱정이다’라고 한숨짓는 데서 따온 별명이다. 정의원이 안보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곧 정의원에 대한 경계 경보를 공습 경보로 바꿀 생각이다. 황장엽 비서가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 그의 입을 빌려 더 강력한 색깔 공세가 있으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의원은 ‘남한내 간첩 5만명’이라는 황비서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남한내 고정 간첩은 수천명인데, 상당수 인사들이 고첩이나 이들과 연계된 세력으로부터 북한 공작금을 받아왔다”라며 일찌감치 분위기를 잡았다.

정의원 발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국민회의는 색깔론 공세에 두 갈래 대응 방안을 세웠다. 과거사를 들추는 행위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하고, 정의원 개인에 대해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자세로 강력히 대처한다는 전략이다. DJ의 한 측근은 “정의원이 북한과 짜고 이선실 사건을 완벽히 조작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라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색깔에는 색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더욱 공세 수위를 높일 작정인 정의원과, ‘정형근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비장의 ‘고스트 버스터’를 준비하고 있다는 DJ. 21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깔 공방 2라운드가 97년 한국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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