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한화갑 '甲 의 전쟁‘ 그후
  • 안철흥 기자 ()
  • 승인 2000.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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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한화갑 ‘내전’ 5대 관전 포인 트 점검/이인제 출마, 노무현 불출마 이유는?
민주당의 권력 구도가 요동 치고 있다. 전당대회가 8월 말에 치러진다는 사실이 공개된 뒤로 민주당에서는 권력 구도 개편과 관련된 조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서영훈 대표 흔들기가 시작되었다. 거의 동시에 권노갑 고문이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다는 뉴스가 나왔다. 권고문의 행보는 곧바로 권고문과 한화갑 의원 간의 동교동계 내부 갈등설을 불러왔다. 당초 한의원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했고, 이것은 동교동계의 분화와 권고문의 쇠락을 의미했다. 권고문이 이인제 고문과 밀월 중인 반면, 한의원은 노무현·김근태 등 비주류 개혁파 인사들과 가깝다. 이처럼 차기 구도를 둘러싼 두 사람의 시각차도 간과할 수 없다. ‘형제’인 두 사람이지만 권력 게임 앞에서는 딛고 넘어서거나 그것을 막아야 사는 사이였던 셈이다.

그러나 양 진영의 갈등설이 증폭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주변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6월28일 김옥두 총장과 함께 3자 오찬 회동을 갖고 동교동계 내부 불화설을 진화했다. 이 날 오후 한의원은 직접 민주당 기자실에 들러 “세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임기를 마친 뒤까지 ‘영원한 형제’로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번 최고위원 경선에 권고문과 함께 입후보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문일답에서 이인제 고문과 연대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이로써 ‘권·한·이 연대’라는 메가톤급 권력 재편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고, 민주당에서는 이 구도가 현실화할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DJ 국정 후반기 2년을 담당할 당 지도부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차기 구도 예고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연 현재 진행 중인 전당대회 전야 증후군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몇 가지 주요 포인트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 권노갑 고문은 왜 출마를 결심했을까

권노갑 고문은 말 그대로 ‘동교동계의 좌장’이다. DJ의 그림자·분신이라고 불리는 그에게 ‘자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그는 직접 경선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한화갑 의원을 대표 선수로 출전시키고, 박상천 전 총무와 안동선 의원을 지원해 동교동계의 지분을 유지한다는 것이 권고문측의 애초 복안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을까. 권고문은 6월23일 기자간담회에서 ‘측근들의 출마 권유’를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한 측근 의원은 민주 정당에서 그림자 실세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당 운영의 투명성’을 출마 이유로 들었다. 선출직 최고위원 7명을 포함한 최고위원 10명이 당 전면에 나서는 상황에서 고문 직함으로 2인자 역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인 고려가 많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앞으로 2년은 차기 구도를 결정해야 할 시기여서 권고문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동교동계의 분열과 내부 갈등으로 말미암아 후계 구도가 조기에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DJ의 뜻이 권고문의 경선 출마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권고문을 동반 출마시켜 한화갑 의원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그럼 과연 권고문의 출마에 김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을까. 한 측근은 “대통령의 사인 없이 권고문이 나오기는 어렵다”라고 교감설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치’에 몰두하느라 특정인의 경선 출마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예전 경험을 보면 권고문이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자가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그의 출마 발언이 DJ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것일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권고문의 출마 여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는 앞으로 두 달이나 남았다. 변수가 생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 서영훈 대표 체제는 그대로 유지될까

동교동계는 오래 전부터 서대표의 정치력에 의문을 표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최근의 서대표 흔들기로 나타났다. 흔들기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적십자사 후임 총재 건이었지만, 내막은 다른 데 있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서대표가 8월 전당대회설을 언론에 흘린 사실을 정치력 부재의 한 예로 들었다.

청와대는 이미 여러 달 전에 8월 전당대회 일정을 확정했으나, 그동안 보안에 부쳐 왔다. 그런데 서대표가 ‘실수’로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너무 일찍 떠버렸고, 당이 당분간 남북대화 분위기를 타면서 국정을 이끌어갈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김옥두 총장의 사과로 일단락된 다음에도 동교동계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정치력을 갖춘 대표’론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다.

그럼 서대표 이후의 대안은 있을까. 권고문 측근들은 잠깐 권대표 만들기 구상을 가다듬기도 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레임 덕을 방지하고 국정 후반기를 원활하게 보조하기 위해서는 실세 대표가 나서야 한다는 측면에서 권대표 안이 검토되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안은 국민 여론을 감안해서 철회되었다. 대신 등장한 것이 정치인 출신 대표론. 동교동계 일부에서는 여전히 김영배·조세형 고문 등을 염두에 두면서 서대표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 주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 왜 이인제 고문은 출마하고, 노무현 지도위원은 출마하지 않기로 했을까

이인제 고문의 출마는 확실시되고 있다. 반면 차기 경쟁자인 노무현 지도위원은 정식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다. 왜 차기를 노리는 두 사람의 길이 엇갈렸을까.

이에 대해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이고문은 출마해야 살 수 있고, 노위원은 출마하지 않아야 산다”라고 말했다. 이고문은 장관도 했고, 대통령 후보도 지냈다. 경력은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당내 기반이 없다는 점뿐이다. 그가 영남권 득표 전략에 감표 요인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권고문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당내에 안전하게 착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그에게 이번 경선에서 몇 등을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가서 당선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노위원은 사정이 다르다. 그는 동교동계와 특별히 친하지 않다. 그가 최고위원이 되려면 동교동계, 특히 권고문의 전횡을 비판하는 선거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고위원 자리를 안겨줄지 몰라도 대권 가도에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동교동계와 날을 세우지도 않고, 입각해서 경력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분석했다. 또한 노위원은 직접 출마하지 않더라도 김근태·김원기 의원 등 우군의 지원 유세는 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서는 이런 일석이조의 방법을 놓아두고 출마라는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권노갑·한화갑·이인제 연대는 가능할까

권고문의 최측근 인사는 “권고문과 한의원은 같은 선거 캠프를 꾸리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운동도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인제 고문도 이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의원측은 동교동계의 우의를 깨지 않는 선에서 같이 할 것이라고 다르게 말했다. 또한 그는 “이인제 고문과의 연대 이야기는 한의원이 먼저 말한 것이 아니다. 기자들이 질문하는데 어떻게 같이 안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이인제 고문과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에 대해 양측에 객관적인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두 사람의 연대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캠프는 함께 꾸리되 선거운동에 들어가면 서로의 색깔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인제 고문과의 연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대의원 투표라는 성격상 세 사람을 함께 찍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대의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연대의 열쇠는 권고문이 쥐고 있다. 레임 덕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권·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권·한 양측 모두 하고 있다. 그러나 권고문이 이인제 고문과의 연대를 권·한 연대의 기본 틀로 삼을 경우 두 사람 사이의 연대 틀이 변형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시작은 3자 연대라는 틀을 취하되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권노갑·이인제 대 한화갑 혹은 권노갑·한화갑 대 이인제의 2 대 1 구도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김근태·김원기·정대철 의원 등이 권·한·이 연대가 기정 사실로 될 경우 경선 출마 자체를 재고할 수도 있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권노갑·한화갑의 공력 다툼에서 누가 이겼나

두 사람은 이번에 사실상 일합을 겨루었다. 외공은 쓰지 않았지만, 내공을 통한 공력 비교는 마친 셈이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 두 사람이 일합을 겨룬 결과 권고문과 이인제 고문이 최대 수혜자가 되었고, 한의원과 박상천 전 총무가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권고문은 이번 전당대회를 공식적인 자리로 나서는 연착륙 기회로 삼았는데, 일단 여기에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고문은 권고문의 ‘파트너’로 당에 손쉽게 착근할 수 있는 어부지리를 얻었다. 반면 한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해 독자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데뷔할 기회를 2년간 유예했다. 박 전 총무는 권고문의 지원 약속을 받고 개인 캠프를 차리는 등 경선 준비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으나 권고문이 직접 출마하게 되어 위기에 봉착했다.

이처럼 겉으로는 권고문이 승리했다. 그러나 진짜 승부 결과는? 양측에 객관적인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무승부라고 해석했다. 권고문은 동교동계 좌장으로서 역할이 남아 있음을 재확인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음지에서 양지로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차지했다. 한화갑 의원은 홀로서기 시도는 미루었지만 최고위원 출마에 대한 동교동계의 합의를 받아냈다는 점에서 실리를 얻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한의원은 지면서 이기는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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