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결위를 빛낸 족집게 의원 ‘베스트 6’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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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파행 꼬집고 세입·세출 따지고…
나라 살림의 규모와 내용이 최종 결정되는 장소인 국회 제2 회의장. 이 곳에서는 올해도 호통과 화풀이성 발언이 많았고 회의 진행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공로명 전 외무부장관의 사임 배경같이 예산 심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을 놓고 지루하게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동안 학계 일부에서는 국회 예산 심의에 대해, 수준이 낮고 여러 이익 집단의 갈등을 앞장서 중재해주기는커녕 종말 처리장 기능을 하는 데도 미흡했다고 비난해 왔다. 올 예결위도 이런 비난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열흘밖에 안되는 심의 기간에 2백조원에 달하는 95년 결산, 96년 추가경정예산, 97년 예산을 다루어야 하는 물리적 어려움과 의회 자체가 예산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한 현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올해 예산 심의가 비교적 충실했다고 여겨질 만한 흔적들은 적지 않았다.

예산을 정치의 정수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예산 속에 국정 전반이 숫자라는 형태로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예결위원 50명은 과연 예결산 심의를 제대로 해냈을까. ‘잘한 예결위원’을 선정하기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만들어 보았다. △재정 구조의 왜곡과 결함을 얼마나 잘 집어내고 분명하게 시정을 요구했는가 △국책 사업의 우선 순위를 가리고 그 타당성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는가 △세입 예산(세금)이 세출 예산을 잘 뒷받침하고 있는지 따졌는가 △예산이 낭비된 부분을 찾아내고 낭비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골라내 추궁했는가 △행정부의 비리·부정·월권을 제대로 감독했는가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잣대는 강신택·김광웅(서울대), 윤영진(계명대) 교수와 한국조세연구원 최 광 원장, 국회 법제예산실 신해룡 예산정책심의관과 임종욱 입법조사관 등 관련 학계 인사와 국회쪽 전문가에게 자문해 작성했다. 이 밖에 소속 상임위의 의견과 출신 지역의 입장을 잘 반영했는가 여부도 ‘잘한 예결위원’ 선정에 고려했다. 이 평가 작업은 예결위 현장 관찰과 회의록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시사저널>은 이 여섯 가지 기준을 한 가지 이상 만족시킨 위원으로 나오연(신한국당), 이해찬·김원길·김영진(국민회의), 허남훈(자민련), 제정구(민주당) 위원을 ‘예결위 베스트 6’으로 최종 선정했다(6명 간에는 우열이 없으며, 이들의 순서는 소속 정당 의석수와 다선 순서에 따랐다). 그러나 이 선정 결과를 놓고 나머지 44명이 잘못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6명이 상대적으로 돋보였을 뿐이다. 아울러 서 훈·이윤성(신한국당), 이윤수·장영달(국민회의), 이인구·구천서(자민련) 위원들도 성실하게 활동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 작업에서 여당 위원(위원장 포함 26명)들은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97년 예산안이 이미 당정 협의를 거친 데다 대통령이 최종 재가한 것이기 때문에 여당 위원들로서는 적극적으로 비판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재정을 알고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가의 운명을 알 수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국가의 운명을 눈 밝게 읽어내는 예결위원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신한국

나오연 경남 양산/재경위/재선


발언 횟수는 적었지만 여당 위원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지방국세청장, 재무부 세정차관보라는 경력에서 보듯이 핵심을 짚었다. 결산 심의에서 세출 예산 이월이 과다하며, 일반 회계 미수납액과 불납결손액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정부가 상습적으로 범하는 잘못이다. 나위원은 세출 예산 과다 이월은 사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우선 예산 확보에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이월 사업이 도로·철도·항만·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나 상수도·농어촌 구조 개선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나위원은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우선 순위와 비용·수익 분석 면에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제’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는 공항과 항만 사업을 들며 지역간 균형 개발 측면보다 물류비 절감이라는 효율성 차원에서 입지를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간접자본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교통세율을 30∼40% 인상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기도 했다.

그의 질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점은, 조세지출제도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도입이 된다면 국회의 심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여러 정책 목적을 내세워 당연히 받아야 할 세금을 감면 또는 세액 공제해 주면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업체가 혜택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국회에 상세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베일에 싸여 있지만 수혜자가 주로 재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위원은 정곡을 찔렀으면서도 질의의 수준이‘권고’에 머물렀다. 한승수 부총리가 지출 규모 추정 등 현실적 제약 요인이 많으며 명세가 공개되어 보조금으로 분류되면 국제 통상 마찰을 야기한다는 점을 들어 이 제도 도입을 피해갔는데도 물고늘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국민회의

이해찬 서울 관악 을/환경노동위/3선


예결위원을 세번째 역임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예산통이다. 박진감 넘치는 일문일답에 강해 관객에게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위원으로 꼽힌다.

이번에도 여당과의 당정 협의 과정에서 예산이 수정되었는데 왜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와 재정 규모, 국민연금 지급 구조, 한국통신 등 정부 보유 주식 매각 부진 문제로 한승수 부총리와 설전을 벌였다.

정부 주식 매각의 경우 정부는 11월 중순까지도 매각 목표를 대부분 이루지 못했다. 이것이 연말까지 팔리지 않으면 세출에 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위원은 세출 예산은 곧 법이라며 정부가 이 구조를 무너뜨리는 잘못을 범했다고 추궁했다.

또 경부고속철도 설계 회사와 부채 상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추경석 건설교통부장관과 공방을 벌였다. 이런 부분들은 정부로서는 아픈 대목이어서 정부측이 수세로 몰리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이위원의 경우 재정의 구조적인 결함을 찾아내는 데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중·장기 재정계획서가 없다든가(한부총리는 재정계획서가 없지는 않지만 내부용 자료여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62조원) 농어촌 구조 조정(57조원) 등 워낙 덩지가 큰 예산 항목이 많아 예산 구조가 갈수록 경직되고 있다고 따진 것이 대표적 예로 꼽혔다.

또 부처별 조세 감면액의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과, 예산 총칙 10조와 관련해 국방 예산 편성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한 것도 돋보이는 질의였다.

이위원은 공무원 조직이 덩지는 큰 데 비해 생산성이 낮다며 정리해고제를 공무원 조직부터 도입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김영진 전남 강진·완도/농수산위/3선


정부 각 부처에 문민 정부 들어서 잘한 것과 못한 것 각각 세 가지를 들어 답변하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 정부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김위원은, 소속 상임위(농림해양수산위)와 지역구 입장을 잘 대변한 예결위원으로 꼽힐 만하다. 예결위 초반 농가 부채 규모를 놓고 총리·부총리·농림부장관과 설전을 벌인 그는 농업과 농민을 위한 정책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농업 운동 20년이라는 이력이 말해주듯이 농업 분야의 확실한 전문성으로 국무위원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8차 회의에서 재경원 차관이 추곡 수매가를 94·95년에 이어 내년에도 동결하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일개 차관이 양곡관리법 제3조와 제5조를 짓밟았다(수매량과 가격 결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성토했다. 또 쌀을 정치 상품화하지 말라며 대통령을 겨냥해 공격의 수위를 크게 높였다. 김위원은 누차 추곡가 동결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동료 야당 위원들과 연합 전선을 펼쳐 결국 한부총리로부터 동결 방침을 재고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김위원은 경부고속철도와 가덕 신항 건설이 지역간 불균형의 극치라고 몰아세우며 지난 4년간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지나치게 영남 지역에 집중되었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들었다.

호남 지역을 배려해 지역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회의의 당론이기도 한데, 김봉호 위원과 함께 당론 관철에 앞장섰다. 김위원은 농업 분야 외에도 적조 피해,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해 소속 상임위의 입장을 대변했다.

김위원은 넘치는 의욕으로 예산 심의에 왕성한 활동을 펼친 인물로 꼽히는 데 손색이 없지만, 중언부언이 많아 방청인에게 지루한 인상을 준 것이 옥의 티였다.
국민회의

김원길 서울 강북 갑/재경위/재선


국무위원들은 답변에 앞서 관행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넣지만 김위원은 관료들에게 진짜 존경하는 의원으로 꼽힌다. 합리적이라는 평판이다. 그는 이번 예결위에서 세입 예산(세금) 부문에서 만큼은 독보적 존재로 기록될 만하다. 이것은 역으로 세출 예산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못냈다는 반증이 되지만, 다른 어떤 위원도 이렇게 정밀하게 세수 추계를 시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결함을 덮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위원에 따르면, 97년은 경기 침체의 정점이어서 경기에 민감한 세목에서 세수 차질이 예상된다. 따라서 세출 예산 규모를 최소한 6천5백억원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목 별로 조목조목 증감 요인과 세수 전망치 근거를 제시했다.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은 5천억원 정도인데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이 1조1천5백억원이나 되므로 부족분(6천5백억원)만큼을 세출 예산 규모에서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무리한 징세로 조세 저항 등 사회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국세청 실무자들도 세수 부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 추계는 현실화할 공산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부총리는 ‘조세 전문가들보다 더 훌륭한 통찰력’이라고 김위원을 치켜세웠지만, 세입 예산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종전 입장에서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 밖에 추경 재원의 상당량이 세계 잉여금인 것은 예산 회계법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라는 지적과, 연말이 다가와서야 재특 세입의 결함을 추경으로 보전하는 것은 이를 재원으로 하는 많은 사업들에 차질을 가져온다고 공박한 것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 올 7월 소득세법 개정으로 인한 근로소득세 감소분 2천33억원을 추경에 반영하지 않은 이유를 따진 것 등은 적당히 넘어가려는 정부의 태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자민련

허남훈 경기 평택 을/농수산위/초선


이번 예결위 활동에서 금메달감은 경쟁력 10% 올리기 운동을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는 허위원의 주장이었다. 공무원 출신인 허위원은 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공무원 인력증원비로 계상된 일반 회계 3천 6백62억원, 특별 회계 4백33억원을 삭감하고 행정관처 운영비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면 1조2천4백26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정부를 몰아세웠다. 경쟁력 10% 올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부는 솔선수범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해온 터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라는 지적을 들었다.

허위원은 다른 위원에 비해 조정액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 특징이다. 가령 경부고속철도 경주 노선 임시 대체 노선인 대구∼부산간 전철화 사업비(1천16억원)의 경우 고속철 계획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전액 잘라내야 하며, 경수로 지원 예산도 정부가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대북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기본 경비를 뺀 31억원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내년에 3조원의 세수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 지출 축소와 인력 재배치, 기구 감축 등을 통해 1조4천억원, 과다 계상된 투자비와 지역 편중 예산 등 정책 사업비에서 1조7천억원, 홍보성 비용과 관변 단체 지원비 5백억원 등 3조원을 깎아야 정상적인 재정 운용이 된다고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정책과 예산과의 일관성을 집중 제기한 것이다.

그는 또한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총액계상 사업에도 손길을 뻗쳤다. 허위원은 경찰청·청와대 등이 사용하는 특수 활동비가 96년에 비해 17.5%, 예비비가 44%가 증액된 것은 대선용 선심성 예산이라고 추궁하기도 했다(95년의 경우 예비비 가운데 3분의 1을 안기부가 가져갔다).
민주당

제정구 경기 시흥/재경위/재선


예산 낭비 사례를 조목조목 열거해 공공 부문 축소와 생산성 향상에 역점을 둔 점이 돋보였다. 제위원은 우선 고속도로·공항·고속철도·댐 등 굵직한 건설 사업이 예산 현액 대비 집행률이 70%도 안되는 등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집중 질타했다. 집행 실적이 저조하면 자연히 공기가 늘어나고 총사업비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예산 낭비로 치닫기 때문이다. 날림 공사가 될 우려도 적지 않다. 그는 수도권 신공항 건설사업( 38.3%)과 경부고속철도 사업(48.3%)이 특히 심각하다며 건설교통부장관을 몰아세웠다. 또 정부가 6조원(95년)이라는 엄청난 돈을 보조금으로 쓰면서 해당 사업의 투자 우선순위를 가리거나 중간 점검 또는 사후 평가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예산이 허비되고 있다고 공박했다. 그는 한부총리에게 국고 보조금 사업을 점검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 사업 추진의 효율성과 집행의 타당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사실상 보조금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답변을 끌어냈다.

제위원은 정부출연기관 및 공단에도 칼날을 들이댔다. 예산을 낭비하는 불필요한 조직으로 지목된 한국장학회 등 교육부 3개 산하기관과 한국자원재생공사에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불필요하게 산하 기관을 늘려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전형적 사례라고 볼 만하다. 정부가 기금을 통한 사업 실적이 부진한데도 돈을 늘리기에 급급한 행태를 지적해 기금의 방만함도 질타했다. 또 각 부처가 세계화와 관련해 돈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 지출로 얻은 효과가 무엇이냐고 따진 것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한부총리는 얼마나 썼는지 통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굴복성 발언을 했다. 이런 지경이니 제위원이 요구한 성과 여부는 아예 측정조차 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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