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내각제 재무장 "돌격 앞으로"
  • 崔 進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J·국민회의 속마음 의심스럽다” 고삐 바짝…김용환 수석부총재가 ‘총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고난도 공중전인가. 동교동 실세인 한화갑 총무가 10월19일 고려대 언론대학원 특강에서 ‘다음에 호남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지난 9월 초 자신이 밝혔던 ‘차기 비호남 대통령론’을 재확인하자, 자민련은 같은 날 반격이라도 하듯 대통령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로 만든 개헌안 초안을 언론에 흘렸다.

한화갑 총무의 ‘비호남 대통령론’에 발끈

국민회의와 자민련 양측은 동시에 서로 화를 냈다. 국민회의 사람들은 ‘아무리 순수 내각제라고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초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불만을 터뜨렸고, 자민련측은 ‘한총무의 발언은 대통령제를 기정 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비난했다.

정가에서는 아무리 DJP 합의라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든 자민련의 초안은 조금 심했다는 평가와, 한총무가 두 번이나 비호남 주자 발언을 한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올 가을은 ‘총풍의 달’이라고 하리만큼 정국이 온통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으로 요란했다. 거기에 국정 감사까지 겹쳐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정국 주도권을 놓고 연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의 마음은 딴 곳에, 오직 한 군데에 있는 것 같다. 바로 내각제이다.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사활을 걸고 총풍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자민련은 내각제 얘기만 나오면 두 눈 부릅뜨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는 JP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종필 총리는 9월 들어 수시로 ‘내각제탄’을 쏘아올렸다. 어투도 점차 강해져서 ‘모든 노력을 쏟아 붓겠다’ ‘5·16을 하는 심정으로’같은 강한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총리는 10월7일 총리실 출입 기자 오찬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내각제 지상론을 편 데 이어 10월16일에는 부산 동의대 특강에서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를 인용하며 지역 감정을 해소할 명약은 내각제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 이 날은 국민회의 영입파 의원 22명이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 만찬에 초대된 날이어서 JP의 심기가 여느 때보다 편치 못했으리라는 것이 측근들의 얘기다.

김대통령의 처지가 가뜩이나 어려운데도 JP와 자민련이 자꾸 내각제론을 들고 나오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김대통령이 정말 내각제를 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한총무의 발언과 현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최장집·황태연 교수의 내각제 회의론을 예로 들며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민련은 한총무의 발언에 대해서는 차마 내놓고 비난하지 못했지만 두 교수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비난을 퍼부었다. 예컨대 10월20일 자민련 안보특위 세미나에서는 색깔 논쟁으로 애를 먹고 있는 최장집 교수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자민련의 불만은 또 있다. 최근 김대통령이 언론사 인터뷰에서 밝힌 정당명부제 도입이나 국회의원 정수 축소 문제 등과 관련해 자민련측과 사전에 의논하지 않았고 대화 창구도 없다는 것이다. 자민련의 한 의원은 “우리라고 가만 있을 수 있느냐”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자민련이 10월22일 자체 여론조사 결과 ‘국민회의에 대해 공동 보조(44.8%)보다 견제·보완(51.7%)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공개한 것도 독자 목소리를 내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김총리의 뜻을 받들어 당에서 내각제 총대를 멘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김용환 수석 부총재다. 최근 당 내각제추진위원장에 공식 임명된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른바 ‘신 중도론’을 펴면서 내각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내각제추진위원회 빨리 만들자”

자민련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내년 초부터는 내각제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양당으로 구성된 내각제추진위원회를 발족해야 한다면서, 전반적인 정치 흐름을 볼 때 내각제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중에 대통령의 힘을 완전히 배제하는 독일식 순수 내각제를 내놓을 경우 과연 국민회의가 순순히 응할지는 회의적이다. 설령 응하더라도 국회 의석 3분의 2 이상 찬성(2백명)과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 찬성이라는 험한 고비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김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대통령은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 당초의 합의는 지키되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내년에 논의하자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여권 핵심부에서는 어려운 때에 자민련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시도 때도 없이 내각제 군불만 지피고 있다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언제 또다시 튀어나와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를 갈라놓을지 모르는 내각제탄. 요란한 국정 감사 와중에도 JP와 자민련은 알게 모르게 내각제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