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마당] 이기택·박철언
  • ()
  • 승인 1997.11.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택, 여당 문앞에 서서“문턱 넘을까, 말까”

민주당 이기택 전 총재가 다시 여당에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 기로에 섰다. 90년 3당 합당 때에는 고민 끝에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 결별하고 야권에 남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는 DJ가 정계를 은퇴한 후 한때 통합 야당의 대표를 지냈으나 DJ가 복귀한 뒤에는 고난의 길을 걸었다. 15대 총선 때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고배를 마셨고, 지난번 보궐 선거 때는 출생지인 포항에서 박태준 의원에게 패했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영입한 조 순 총재가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와 후보 단일화 및 합당에 합의함으로써 그에게 다시 여당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 조총재가 그에게 이회창 후보의 공동선대위 의장을 맡아달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그는 일단 이번에도 야당에 남기를 고집하고 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의 한 측근은 ‘한번 가지 않은 길을 몇년 뒤에 다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내 다수파인 그의 계보원들이 정치력 있는 그가 나서 지분을 챙겨주기를 바라고 있다.
DJP에 앞장섰던 박철언‘찬밥’ 대접에 훌쩍 일본행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DJP 단일화에 들떠 있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박태준 의원이 자민련 총재로 내정된 데 대한 자민련 내부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DJP 단일화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박철언 부총재마저 불쾌한 심사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는 공동선대위 참여도 유보한 채 지난 7일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자민련 내의 박철언 계보 위원장들이 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는 DJP 단일화를 비난하는 험악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DJP 단일화를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것이 누군데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TJ가 모든 공을 가로채려 하느냐’‘DJT에게 농락당한 꼴이 아니냐’‘이럴 바에는 신한국당에 입당하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박부총재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지만 그의 심기가 편했을 리 만무하다.

DJP 단일화에 앞장섰던 그가 단일화를 깨려고 나설 리는 없겠지만 당분간 그의 가슴앓이는 계속될 것 같다.

산신령이 대쪽 선택하자 국민회의 “이렇게 좋을 수가”

이회창·조 순 연대가 확정된 후 국민회의에는 ‘하늘의 뜻이 DJ에게 있다’는 이른바 ‘DJ 천운론’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고비고비마다 DJ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DJ 천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세 가지이다. 우선 꼽히는 것이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과 자민련 정석모 부총재의 와병. 국민회의는 최고문이 쓰러지지 않았으면 영남 출신인 이수성 고문이 신한국당 후보가 되었을 테고, 그랬으면 지금 DJ가 상당히 고전했으리라고 본다.

정부총재의 경우는 DJP 단일화와 관계가 깊다. 단일화를 강력하게 반대했던 그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JP가 DJ를 지지하는 일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국민회의측 판단이다. 정부총재는 현재 신병 치료차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국민회의측이 드러내놓고 즐거워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조 순 총재가 이인제 후보 대신 이회창 후보를 선택하자 마음놓고 손뼉을 치는 것이다. 지지율 3,4위 후보가 합심해 지지율 2위인 후보를 끌어내리게 생겼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별 당비 낸 신한국당 의원들“우린 뭘 먹고 살란 말이냐”

외화내빈이라던가. 신한국당은 새로 입주한 여의도 당사가 화려해서 야당으로부터‘호텔 당사’라는 비난까지 받았는데, 자금 사정은 영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신한국당은 며칠 전 당사 10층 대강당에서 소속 의원·중앙위원·사무처 간부 등 6백여 명이 참석해 ‘이회창 정치 혁신 실천을 위한 특별 당비 납부운동 출범식’이라는 독특한 모임을 갖고 당비를 모았다. 그 결과 즉석에서 모금한 3억여 원을 포함해 모두 7억여 원이 하루 동안에 걷혔다. 신한국당은 여세를 몰아 당비 납부 운동을 전국 지구당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그러나 돈도 기분 좋을 때 내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정국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비를 모금하다 보니 부작용도 따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1·12월 두 달 세비를 몽땅 헌납한 초·재선 의원들 가운데는‘우리는 뭘 먹고 살란 말이냐’고 불만을 털어놓은 의원이 적지 않다. 돈 없는 여당. 여기다 이한동 대표가 신한국당이 더 이상 여당이 아니라며 당사 경비 병력을 철수시켰으니 관권마저 포기한 셈이다. 이래저래 요즘 여야가 뒤바뀐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