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조 순 단일화 가능한가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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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진영 ‘조 순 흡수’에 총력…통추 통해 측면 공격 펼치기도
요즘 여당 소식은 국민회의 관계자들의 1차 관심 대상이 아니다. 신한국당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우려할 만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김대중 총재 진영의 이목은 온통 조 순 후보와 이인제 후보 간의 접근 움직임에 쏠려 있다. 두 사람의 연대가 DJ의 집권을 가로막을 수 있는 가장 큰 잠재적 걸림돌이라고 본다는 얘기이다. 국민회의 수뇌부는 당직자들에게 눈과 귀를 총동원해 두 후보 진영과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후보간 연대, 나아가서는 정계 개편과 관련한 설들이 무수히 유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성이 있고,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시나리오가 바로 조·이 연대이다. 두 사람의 연대가 성사되면 선거 구도는 김대중과 조·이 단일 후보의 야·야 대결로 압축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DJP 단일화와 마찬가지로 조·이 단일화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지 결론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조·이 후보 단일화에 대해 적극적인 쪽은 당연히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이인제 후보이다.

이후보 진영은 지지율 10%대를 밑도는 조 순 후보가 결국 이후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대세론’을 전파하며 파상 공세를 펴고 있다. 이후보는 최근 조후보가 이후보 진영의 노골적인 합병 움직임에 불쾌감을 표시하자 ‘조후보와 연대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으나, 이후보 참모들은 여전히 조 순 포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순 포위 작업은 입체적이다. 이후보측은 내부 인맥을 모두 가동해 민주당 지구당위원장들에게 후보 단일화에 동참해 주기를 설득하고 있다. 그런 작업의 결과는 지난 9월29일 민주당 지구당위원장 28명이 민주대연합추진준비모임을 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보 진영은 민주당 지구당위원장들을 계속 공략해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후보 단일화 바람이 거세게 불도록 만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통추의 김원웅·원혜영 전 의원이 운영하는 술집 하로동선에는 저녁마다 하루도 빠짐 없이 이후보 참모들이 찾아와 술을 마신다. 그만큼 통추에 들이는 이후보의 정성은 지극하다. 통추측이 이후보에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전권을 통추에 위임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도 이후보가 응낙할 뜻을 비쳤다고 한다. 이후보측은 통추도 절반 이상은 자기 진영으로 넘어왔다고 장담한다.

이후보 진영의 손길은 조후보의 핵심 참모들에게까지 뻗치고 있다. 조후보의 한 측근은 자신이 이후보측으로부터 최근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후보 사람들이 조후보 측근들에게 접근해 아예 이삿짐을 싸라고 유혹하거나 후보 단일화 협상에 적극 응할 수 있도록 조총재를 설득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보측이 여러 겹으로 조총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보의 한 측근은 ‘만약 조후보가 계속 고집을 부리면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한다.
조 순 진영 “10월 말까지 기다려 보자”

이후보 진영은 ‘곧 탈당할’신한국당 민주계와 국민회의 밖에 흩어져 있는 야권의 민주화 세력을 양 날개로 하여 대선 정국을 날아 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후보측은 야당의 민주화 세력이라는 왼쪽 날개를 빨리 달아야만 오른쪽 날개인 민주계의 탈당도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이 연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조후보측은 이후보의 공세에 말리면 자칫 DJP 연대에 끌려다니다 지지율이 형편 없이 하락한 JP 꼴이 될 수도 있다며 후보 단일화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후보는 지난 10월2일 관훈토론회에서 ‘지금 상황에선 후보간 연대를 생각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초반 지지율이 6%였으나 42%를 득표해 당선했으므로 지지율이 낮다는 데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말도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후보 단일화 협상에 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조후보의 한 측근은 조·이 연대와 관련해 10월 말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그 때까지도 전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여당의 다수가 후보 교체를 결심하게 되면 조후보도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0월 말 여당의 혼돈 상태가 어느 쪽으로든 정리된 뒤 후보간 합종연횡을 모색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이다. 조후보측은 그 때까지 연대보다는 정책 개발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후보측 희망과 달리 통추 역시 아직은 이후보 지지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통추의 한 핵심 인사는 “통추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이후보를 민주대연합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3당 합당 때 김대통령을 따라가지 않고 야권에 남아 있던 인사들은 이후보가 민주화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요즘 통추 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견 교환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대안 중의 하나가 ‘이번 대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조·이 연대가 갖는 폭발성은 강하지만 아직 세력간 의견 편차가 너무 커 급진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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