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수생 DJ의 대권 필승 전략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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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DJ 이미지 개선·8룡 분란에 자신감…큰인물론으로 승기 잡기 나서
사실 DJ만큼 어두운 이미지를 많이 가진 정치인도 드물다. ‘과격하다. 보복할 것이다. 사상이 의심스럽다. 말 바꾸기를 잘한다. 나이가 너무 많다.’ DJ가 4수생이 된 결정적인 이유 역시 지역 구도와 함께 이런 이미지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텔레비전 토론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DJ는 흡사 물을 만난 고기와 같다. 그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왜곡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호기를 맞은 것이다. DJ의 대선 기획을 주도하는 이종찬 부총재는, DJ는 이미 약점이 다 노출된 만큼 더 이상 손해볼 요소가 없는 반면, 여당 주자들은 검증을 거치는 동안 점수를 잃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두번의 텔레비전 토론을 거친 뒤 국민회의에는 격려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DJ 진영은 6월13일로 예정된 KBS 토론회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재임 기간에 아들을 감옥에까지 보낸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조차도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국가 기관 장악력을 발휘했음에 비추어 보면, 김대통령은 더 심각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집권 초기 90%를 넘었던 YS 지지율은 부정부패와 경제 정책 실패로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고, 마침내 재임 4년 만에 하야론에 휘말리고 있다. 정황이 정황인 만큼 36년간 지속되어온 집권 여당의 독주를 막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 보자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클린턴·블레어의 필승 전략 빌려

여권의 대권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는 것도 DJ에게 유리한 형세다. 처음 9룡이니 10룡이니 하며 대권 주자들이 속속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새로운 인물을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와 세대교체론에 치여 DJ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 형세였다. 하지만 용들의 전쟁이 여당 대표 직을 둘러싼 이회창 대 반이회창 진영의 흙탕물 싸움으로 흐르면서 세대 교체 명분은 상대적으로 퇴색하는 분위기다.
이런 여권의 혼란이 분열로까지 이어진다면 DJ로서는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DJ 진영은 여권이 단결하더라도 DJP만 성사하면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DJ의 고정표(8백만표)에다 JP의 충청표(1백60만표) 가운데 절반만 와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여권이 분열해 몇 사람이 뛰쳐나온다면 승리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DJ측 주장이다. DJ측이 내심 상정하고 있는 신 4자 또는 5자 필승론은 바로 이런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저런 요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DJ가 집권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지난 6월2일 발표된 <조선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경향을 수치로 드러내 준다. 응답자들은 97년 대선에서 대통령 적임자로 DJ를 가장 많이 꼽았다. 두세 달 전까지 DJ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나 박찬종 고문에게 뒤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DJ는 또한 경제·안보·통일·리더십 항목에서 2위인 이대표를 크게 앞질렀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이제는 여당 주자들 사이에서까지 DJ의 잠재력을 낮추어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회창 대표의 한 측근은 반이회창 진영의 공세를 비판하면서 “여권이 서로 치고받다가는 DJ가 어부지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DJ의 책상에는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선거를 분석한 보고서가 자주 올라온다. 미국 인권연구소가 작성한 자료도 있고, 30~40대 정치·사회학 박사 10여 명으로 구성된 국내 두뇌 집단이 분석한 자료도 있다. 국내 학자팀을 이끄는 장성민 공보비서는 최근 1년 간의 지구촌 선거 흐름을 ‘정권 교체의 도미노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또는 장기 집권한 정당은 모두 교체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이 곧 한국 정치사에도 이입될 수 있다는 것이 DJ측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DJ 진영은 미국의 클린턴, 영국의 블레어 등으로부터 필승 전략을 빌려오고 있다.

첫째는, 97년 대선을 정당 대결보다 인물 대결로 몰고간다는 것이다. 어차피 정당 대결로 가면 집권 여당이 유리하니 DJ의 큰인물론을 부각해 여당의 군소 주자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 확장형 지도자의 상징인 광개토대왕론이다. 이는 클린턴이 ‘강한 미국’을 내걸고 재선에 성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두 번째는, 이데올로기 대결을 벗어나 복지·경제 정책 등 구체적인 공약으로 승부를 가른다는 전략이다. 92년 대선에서 주장했던 진보 정책이 실패하자 클린턴은 97년 대선에서 정책 기조를 온건 중도 노선으로 선회했고, 영국의 블레어 역시 보수당의 대처리즘을 과감히 수용해 노동당의 급진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없애 버렸다. 누구보다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던 DJ가 과감하게 중도 보수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DJ는 한총련 해체를 주저없이 외치고 있고, 과거 무조건 ‘내 사랑 중소기업’이던 그가 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경총 간부를 만나며 대기업과 교감을 넓히고 있다. 지난 5월29일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하는 등 어느 때보다 군과 자주 접촉하는가 하면,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아예 언급을 회피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등이 DJ의 새로운 경향성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들이다.

금권·관권 선거 막기에 주력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높아지고 DJ에 대한 비판적 이미지는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한 DJ측은, 이제 공정한 게임 룰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본다. 국민회의가 YS 탈당과 거국 중립 내각 구성, 정치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선 자금 공세를 늦추지 않는 것은 대기업의 돈이 여당에 몰리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고, 박일룡 안기부 1차장과 오인환 공보처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관권 선거를 최대한 막겠다는 계산에서다. 정치자금법 등 법적 장치는 이번 임시국회와 정기국회를 통해 확실히 보강한다는 전략이다.

대권에 마지막 도전장을 낸 DJ에게 요즘 정세는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DJ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반DJ 진영의 결속력 또한 강해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DJ가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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