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12·18 혁명 향해 죽어도 끝까지 간다”
  • 崔 進·吳民秀 기자 ()
  • 승인 1997.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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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병역 공세 등 3대 전략 구사해 대역전 노려
이인제는 제2의 박정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박찬종 신세가 되고 말 것인가. 작달막한 체구에 권총 한 자루를 차고 한강을 건너 대한민국을 삽시간에 장악한 박정희. 그리고 국민적 인기만 믿다가 하루아침에 급전 직하한 박찬종. 지금 이인제 후보는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의 거사가 성공하면 젊은 혁명가로 우뚝 서겠지만, 실패하면 쿠데타군으로 몰리게 된다.

그가 말끝마다 혁명을 말하는 것도 그런 비장한 각오 때문이다. 11월26일 오후 6시 여의도 국민신당 당사 지하 1층. 청년 조직인 21세기 청년연합회 발대식. “우리는 지금 혁명을 꿈꾸고 있고 어느덧 그 대열에 서 있습니다. 12월18일 혁명의 대폭발을 이루어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읍시다!” 이인제 후보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외치자 ‘강력한 추진력’이라고 쓴 어깨띠를 두른 20,30대 회원들이 일제히 ‘이인제!’를 연호했다. 이후보는 권총을 차는 심정으로 12월18일 대선 때까지 머리띠를 두르려고 했으나 측근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대신 점퍼 차림에 ‘경제를 살립시다!’라고 쓴 어깨띠를 두르기로 했다.

20% 이상 득표하면 일단 성공

이인제의 12월 혁명은 성공할까. 그것은 그에 대한 지지도가 득표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한낱 거품으로 끝나고 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정가의 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그가 20% 이상 득표하면 일단 성공이지만, 그 이하이면 실패, 15% 이하로 내려가면 참패라고 본다. 분석가들은 이후보가 20% 이상만 득표한다면, 설령 3위에 그치더라도 다음 정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본다.

이인제 지지도가 거품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인제와 박찬종의 유사성 세 가지를 들어 이인제 증후군이 허상이라고 말한다. △ 국민 지지도가 높다 △ 조직과 자금이 열세이다 △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다는 점이 과거 박찬종과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92년 대선 당시 박고문은 세대 교체 바람을 업고 초반에 선전했지만 개표 결과 득표율은 6.4%에 그쳤다. 평생‘인기만 먹고 살아온’박고문은 연초만 해도 지지율이 이회창·김대중보다 앞서 1위를 달렸으나 갈수록 하락세를 보여 7월 경선 때는 최하위를 기록했고, 끝내 경선을 포기했다. 얼마 전에는 여의도 남중빌딩에 있는 개인 사무실마저 문을 닫고 사실상 잠적했다. 따라서 이인제 후보의 인기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허망할 정도로 거품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인제 지지도가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고문과 유사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인제는 박찬종에 비해 비교적 광범위한 계층과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고, 국민신당이라는 전국적인 정당 조직을 갖추고 있다. 또 92년에는 텔레비전 토론회가 아예 없었지만 이번에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텔레비전에 강한 이후보에게 유리하다. 상황도 92년 대선 때와는 크게 다르다.

당시 정주영 후보는 김영삼·김대중이라는 두 강적이 치열하게 맞서는 와중에서 득표율 16.4%라는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각각 영남과 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고 싸웠던 양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그 정도 득표한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박고문이 얻은 6.4%와 합하면 22.8%에 달한다. 반면 이인제 후보에게 이번 대선은 92년 양김 전쟁 때보다 상황이 좋았으면 좋았지 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후보는 정주영·박찬종 후보가 92년 대선에서 얻었던 득표율 22.8%보다 더 얻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이인제 진영이 ‘끝까지 가겠다’고 장담하는 이면에는 그런 논리가 깔려 있다. 즉 20%대만 득표한다면, 도중에 주저앉거나 다른 후보와 연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다. 국민신당 내부에서는 ‘이인제는 중도 하차하거나 다른 후보와 손잡는 순간 죽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 있다. 실제로 이후보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설사 3위에 그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분석이 정가의 중론이다.

문제는 이후보가 대선 때까지 보름 남짓 남은 기간에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있다. 이후보 진영이 대역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 합동 토론회. 이인제 진영은 ‘춥고 배고픈’이인제 후보가 ‘등 따습고 배부른’ 이회창·김대중 후보를 일거에 앞지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텔레비전 합동 토론회에서 단연 우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로 이후보가 세 차례 합동 토론회에서 절대적인 비교 우위를 차지할 경우 판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인제 선전하면 DJ 어부지리

아울러 이인제 진영이 구사하고 있는 대선 전략의 3대 포인트는 YS와의 차별화와 경제 문제와 병역 공세. 이인제 진영은 잘 나가던 이후보 지지율이 11월 들어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은 순전히 ‘YS의 이인제 신당 지원설’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대통령이 이인제 후보에게 조직과 뒷돈을 은근히 대주고 있으며, 현철씨 사조직 멤버들이 대거 국민신당에서 뛰고 있다는 정치 공세 때문에 이인제의 독자성과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TK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다른 지역에까지 미쳐 요즘 애를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인제 진영은 남은 기간에 YS 지원설의 혐의를 벗기 위해 불가피하게 YS와의 차별화를 시도할 참이다. 청와대의 경제 영수 회담에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불참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경제 전략은 최근 들어 극도로 악화한 경제 사정을 감안한 전략이다. 이후보가 ‘경제 살리기’어깨띠를 두르고 시장이나 공사 현장, 증권사 객장 등 경제 현장을 부쩍 자주 찾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제 전략이 이인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전략이라면, 병역 문제의 쟁점화는 이회창 후보를 흠집내려는 전략에 해당한다.

이인제 후보는 11월28일 자기가 집권하면 적어도 차관급 이상의 아들은 불구가 아닌 이상 군대에 가도록 하는 특별의무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바로 다음날 국민신당 한이헌 정책위의장은 고위 공직자 아들의 병역을 의무화하는 ‘병역 비리 근절 및 병무 개선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최대한 부각하려는 전략적 공약임은 물론이다. 요즘 이인제 후보가 어디를 가나 빼놓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이 바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다. 이러한 3대 전략이 텔레비전과 현장 정치를 통해 얼마나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한편 이인제의 운명은 곧 이회창·김대중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는 또 다른 중요 관전 포인트가 있다. 요컨대 이인제 후보가 선전하면 김대중에게 유리하고 반대로 추락하면 이회창에게 유리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요즘 정가에는 이번 대선은 누가 되든 백만표 안팎 차이로 결정되는데, 이인제 후보가 20%대를 득표하면 DJ가 당선되고, 15% 정도에 그치면 이회창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이는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나온 분석이다.

여의도 국민신당 당사 1층 현관에는 ‘언론사 마지막 여론 조사(11월25일자 석간) DJ 36% 이회창 32% 이인제 27%. 이인제 후보 지지도가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필승 파이팅!’이라고 적힌 유인물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이 벽보대로 이후보가 25% 넘는 득표율을 기록할 경우 이번 대선은 이회창·김대중·이인제 3강 구도가 정착되고, 이때 표의 응집력이 강한 DJ가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 여론 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하늘 두 쪽 나도 이회창과 연대 안해”

반대로 이후보 지지도가 계속 떨어질 경우 이회창 후보에게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나 그에게 유리하다. 반(反) DJ 성향의 표가 ‘될 사람에게 몰아주자’는 심리가 작동하면 이들 표가 이회창 쪽으로 쏠린다는 추론이다. 하지만 이때도 10% 이상 현격한 차이가 나야지 지금처럼 5% 안팎 정도라면 쏠림 현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 가운데는 여권 성향이면서도 이회창 후보를 싫어하는 비(非) 이회창 표가 많아 이인제 후보가 추락할 경우 그를 지지하는 표가 반드시 이회창 쪽으로 몰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이인제 후보가 막판에 사퇴할 가능성은 혹시 없을까. 사퇴할 경우 다른 후보와 연대할 가능성은 없을까. 현시점에서 볼 때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앞서 말했듯이 설사 대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면 더욱 좋고, 최소한 20% 이상 득표할 경우 다음 정권에서 얼마든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얘깃거리는, 이인제 후보가 사퇴하고 싶어도 부인 김은숙 여사의 반대 때문에 사퇴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인 김씨는 남편이 한때 독자 출마를 망설일 때 가장 적극적으로 출마를 권유했고, 지금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김대중 두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싫어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회창 후보이다. “그건 물어보나마나이다. 한마디로 이인제와 이회창은 물과 기름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두 사람이 연대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라.” 국민신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이인제 진영에 있는 사람 치고 이회창·김대중 가운데 양자 택일을 하라고 하면 열이면 열이 주저하지 않고 김대중을 택한다. 그 정도로 이회창 진영에 대한 이인제 진영의 감정은 나쁘다.

그렇다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두 후보가 이회창이라는 공동의 적을 가운데 놓고 협공하며 전술적인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보나 명분을 보나 손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에 하나 두 사람이 연대할 경우 DJ에 대한 견제 심리가 확산되어 오히려 DJ에게 불리하리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인제 후보는 DJ를 향해서도 연일 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제 이인제 후보는 죽으나 사나 끝까지 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참모들은 이인제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며, 과녁(민심)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 참모는 힘주어 말했다. “혁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좌우를 살핀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앞만 보고 진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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