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입' 정동영에 DJ 가신들 눈총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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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에 家臣들 불만… DJ는 “득이 크다” 보호
 
이제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일까. 동교동 가신들이 본격적으로 정동영 흔들기에 나섰다.

정동영 의원이 대변인에 임명된 것은 지난 5월1일. 두 달 전 일이다. 그 사이 국민회의 대변인실은 확실히 달라졌다. 우선 성명이나 논평을 내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대변인실 분위기는 될수록 말을 아끼자는 쪽이다. 독설에 가깝던 논평 내용도 점잖아졌다. 특히 정대변인의 논평은 무색 무취에 가깝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동교동 가신들은 이러한 변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총선 후 대변인이 나서서 적극적인 대여 공세를 펴도 모자라는 판에, 오히려 여당에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말싸움의 귀재’라고 불린 박지원 전 대변인 스타일에 익숙한 가신들은 새 대변인의 방어적인 논평을 마뜩치 않게 여겨 왔다.

하지만 새 대변인에 대한 불만이 밖으로 드러난 적은 드물었다. 전국 최다 득표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는 데다, 총재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이유에서다. 초선이자 대변인에 막 입문한 ‘신참’이라는 점도 참작되었다. 그러나 정대변인 취임 두 달이 지나면서 가신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논평이 달라질 조짐이 없고, 정대변인이 계속 자기 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자와 대조되는 스타일로 입방아 올라

정대변인에 대한 불만은 ‘논평이 너무 약하다’‘총재의 의중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지나치게 신중하다’‘게으르다’‘정치 감각이 떨어진다’ 등 다양하다.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논평에 관한 불만이고, 다른 하나는 총재를 모시는 일에 관한 불만이다.

이 불만은 모두 전임 박지원 대변인과 비교하는 데서 출발한다. 박대변인은 아침 6시 총재 자택 방문으로 시작해 저녁 8시 다음날 조간 신문을 총재에게 전해주는 일까지, 거의 24시간 총재를 보좌하는 ‘가신형 대변인’이었다. 그는 기자들과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시면서도 4년 임기 동안 아침 브리핑에 결석한 것이 단 3일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논평은 저질 시비에 대변인 무용론을 불러일으키리만큼 자극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이에 비한다면 정대변인은 꽤 자율적이다. 그의 일과도 아침 6시30분 총재 자택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대세를 좌우할 만큼 굵직한 사안이 아니면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총재로 하여금 소소한 것까지 신경쓰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논평도 철저히 당과 총재의 입장을 조리있게 설득하는 선에서 그친다. 결코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가신들은 정대변인에게 ‘가신형 대변인’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측근들이 정대변인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DJ도 아는 듯하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최근 총재가 대변인실 분위기를 물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DJ가 가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DJ가 사석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진 “박은 박이고 정은 정이다. 정에게 박의 스타일을 요구하면 정이 다친다”라는 말은, 정대변인의 논평 스타일을 그대로 보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DJ가 정대변인을 보호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대변인의 논평은 DJ 지지 계층에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반감도 많이 산다. 반면 정대변인의 논평은 중산층과 화이트 칼라에 침투력이 크다. DJ의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대변인이 자신의 의중을 제대로 못 읽어내는 데는 DJ도 아쉬움을 느끼는 듯하다. DJ는 최근 정대변인에게 자기와 자주 접촉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대변인은 ‘지낼수록 어려운 게 정치판’이라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아직 수습 기간인데 왜 자꾸 건드리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가끔 자극적인 화법에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는 그는,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조를 유지할 생각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소한 일로도 총재를 자주 접촉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에 대한 총재의 요구 사항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뛰어난 앵커라는 찬사를 받아온 그가 혹독한 정치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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