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성형수술 바람
  • 崔 進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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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성형수술 받으며 이미지 개선 안간힘
만약 클린턴이 볼이 축 늘어지고 머리칼이 제멋대로인 추남이었다면 재선이 가능했을까. 96년 2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5차 세계 레이저 성형외과 학술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가, 컴퓨터로 합성한 클린턴 대통령의 못생긴 얼굴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오늘날 비디오 시대에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며 제기했던 가설이다. 이 발표자는 이제 성형 수술은 단순히 얼굴을‘뜯어고치는’기계적인 시술이 아니라 이미지를 높이는 기술적인 시술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정치인, 특히 대권을 꿈꾸는 대중 정치인에게 외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처럼 세대 교체론이 뜨거운 논란거리인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직은 한보 태풍 때문에 세대 교체 바람이 숨을 죽이고 있지만, 대권 전쟁이 본격화하면 세대 교체 공방이 뜨겁게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또 올 대선에서 대권 주자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회가 실현되면 얼굴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이미지 높이기 차원에서 얼굴을‘인위적으로’개선하려는 작업이 알게 모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명으로 병원 찾아와 몰래 수술하기도

양쪽 눈 밑의 둥그런 주름살과 툭 튀어나온 앞니. 흔히 김종필 총재의 캐리커처를 그릴 때 부각되는 부분이다. 특히 안경 너머로 보이는 JP의 축 처진 눈두덩은 훨씬 나이 들고 노회한 인상을 준다. 측근들은 오래 전부터 김총재에게 눈 밑 주름살, 정확하게는 눈 밑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해 왔다. 그러나 워낙 시간에 쫓기는 데다 김총재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 그러다가 자민련의 김 아무개 의원이 지난해 9월 한 성형 전문가에게 문의했고, 다시 올 4월 초에 전화를 걸어 김총재의 눈 밑에 있는 주름살을 말끔히 없애줄 수 있느냐고 수술을 부탁했다. 정치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탓인지 김총재의 눈 밑 지방 수술은 현재 보류 상태지만, 머지 않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명‘피곤한 눈(fatigue eye)’이라고 불리는 이 눈 밑의 두툼한 지방은 통상 나이 들고 피곤하며 음흉하고 권위주의적인 느낌을 준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더욱 불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원기 국민통합추진위 대표. 그는 지난해 8월 주위 사람의 시선이 적고 한가한 토요일 오후를 택해 눈 밑 지방 제거 수술을 받았다. 양복 차림으로 병원에 간 김대표는 40여 분간 수술을 끝내고 수행한 비서가 사온 선글라스를 쓰고 곧장 퇴원했다. 그에게 수술을 권하고 병원을 소개한 사람은 김홍신 의원. 김의원은 담당 의사에게 “4·11 총선 때 열다섯 살 아래인 윤철상씨와 맞붙어 세대 교체 공세에 시달렸는데, 특히 나이 들어 보이는 눈 밑 주름살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하더라”면서 수술을 부탁했다고 한다.
어쨌든 김대표는 수술을 받은 뒤 주변에서 ‘눈이 커지고 훨씬 더 젊어 보인다’는 인사를 받고 있다. 김대표를 수술한 부산 제일레이저피부과 유중하 원장은 “눈꺼풀을 뒤집기 어려워 수술에 애를 먹을 정도로 김대표의 눈 밑 지방은 심각한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눈 밑 지방 제거 수술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정치인은 많다. 김홍신 의원도 곧 그럴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고, 대구 출신 한 의원은 가명으로 신분을 숨긴 채 지방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나중에 담당 의사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를 알아보았다. 이름을 대면 금방 알 만한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3월 말 수술을 받기로 약속해 두었다가 한보 사태가 크게 확산되는 바람에 당분간 보류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정치인들 사이에 ‘성형 붐’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 성형 수술이 처음으로 화제를 모은 것은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정주영씨였다. 검은 모자를 쓰고 검버섯투성이 얼굴에 아랫입술이 튀어나온 70대 노인. 당시 정씨의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정가에서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제대로 임기를 못 채울 것이라는 둥 건강과 관련해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정씨는 대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최고 의료진을 동원해‘아킬레스건’이던 검버섯을 말끔히 제거했다. 정씨가 검버섯을 없앤 이후 한동안 서울 시내 성형외과는 검버섯을 없애려고 찾아온 60, 70대 노인 환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거 닥치면 성형외과도 문전성시

95년 6·27 지방 선거와 96년 4·11 총선 직전에도‘얼굴 고치기’붐이 일었다. 당시 레이저 피부과나 성형외과에는 얼굴 흉터와 주름살, 마마 자국이나 화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다못해 얼굴색을 좀 희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예비 정치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고 관련 의사들은 전한다.

사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씨가 오랫동안 정치적인 천수를 누린 데에는 그들의 잘 생긴 외모도 한몫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일흔 문턱을 넘어선 지금 3김씨는 외모 하나하나에 각별히 신경쓰지 않으면 안될 나이가 되었다. 백발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김대통령이 취임 뒤에 검게 염색한 것도 젊고 신선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너무 강한 이미지를 준다는 지적에 따라 2년여 만에 다시 반백으로 돌아갔지만.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도 지난해 가을 손등에 있는 검버섯을 말끔히 없앴다. 당시 한 언론사는 치료 중인 김총재의 손등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내보내 국민회의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레이저 치료를 받은 후 그의 손등은 깨끗해졌다.

백상창 박사(정치분석학·정신과 의사)는 “한국인은 서양인과 달리 전통적으로 얼굴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치인이 얼굴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대선 바람이 불고 대권 주자 텔레비전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얼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정치인들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바야흐로‘비디오형’정치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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