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 넘어선 중국의 ‘압력 외교’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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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총통 취임식 참석 의원들에게 ‘불참’ 압력
주한 중국대사관이 타이완 천수이볜 총통의 취임식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노골적으로 참석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여야 대표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물론 해당 의원실에 전화까지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우습게 본 것이다.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었다”라고 말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중화인민공화국 주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이빈’ 명의로 여야 대표들에게 A4용지 두 장짜리 서한을 보낸 것은 5월10일이다. ‘저희 대사관은 이미 관련 의원님들께 (천수이볜 총통 취임식에) 참가하는 것을 취소할 것을 권고·요청한 바 있습니다. ‘총통’ 취임식은 매우 민감한 정치적 행사이기 때문에 귀당 일부 의원들께서 이와 같은 행사에 참가하신다면 외부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행사 참가를 취소하도록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이 편지의 핵심 내용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서한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의원실에 한두 차례씩 전화를 걸어 천총통 취임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직접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당신 개인의 생각인가, 아니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측은 외교통상부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는데, 이 서한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천총통 취임식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며 강력하게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천총통은 중국에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다. 천총통 취임식을 계기로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는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천총통 취임식에는 열린우리당에서 정세균·이종걸·조배숙 의원과 전병헌·이광철 당선자가, 한나라당에서는 이강두·박원홍·김광원·최병국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5월19일 출국해 취임식에 참석한 뒤 5월22일 귀국했다. 그러나 중국의 압력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한 당선자가 중국측의 ‘설명’을 듣고 막판에 타이완행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취임식 간 분들, 중국 갈 때 불이익”
주한 중국대사관 이서봉 공보관은 “타이완에 간 국회의원들은 정치적인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다.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간 분들은 나중에 중국을 방문하는 데 도움이 안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에게 보낸 서한 내용이 너무 강도가 높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민감한 사안이니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친구로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 불쾌한 일이 생기면 안 좋은 것 아니냐. 적대적인 관계였다면 아예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인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은 “타이완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이다. 외교는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이다”라고 천총통 취임식에 참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나라당 김광원 의원은 “중국에서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나라당 처지에서는 타이완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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