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혁규를 용서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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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총리 인준 ‘무조건 반대’는 하지 않을 듯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김혁규 국무총리’ 카드는 한나라당에게는 계륵(鷄肋)과 같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배신자 전력’ 때문에 내키지는 않지만, 거부하자니 그럴 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우리를 시험대에 들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런 고민의 표현이다.

한나라당은 우선 ‘김혁규 불가론’을 확산시키고, 그래도 노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지명하면 철저히 검증하기로 했다. 그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론을 거쳐 대책을 강구한다는 원론만 있는 상태다. 그러나 김덕룡 원내대표의 등장을 전후해 한나라당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혁규 총리’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흐름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분위기를 종합해 볼 때 한나라당이 1998년 ‘김종필 총리’를 거부할 때처럼 국회 자체를 보이콧할 가능성은 없다.

이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박근혜 대표다. 5월19일 오후 5시, 의원총회가 끝날 때쯤 연단에 오른 박근혜 대표는 할말이 많아 보였다.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 짤막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한 박대표는 갑자기 주제와 관련 없는 ‘상생의 정치론’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상생의 정치란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우리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여당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감정 싸움으로 격화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국민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싸움은 정치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우리가 여당만 보고 싸우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배우이고 국민은 관객이다. 우리가 저쪽을 잡겠다고 할 때 국민이 안된다고 하면 겉으로는 이겨도 결국은 지는 것이다. 탄핵 같은 경우를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우리가 옳은 주장을 폈는데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우리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면 나중에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국민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
박대표의 이 날 언급은 ‘김혁규 총리’에 대한 한나라당의 향후 방향을 읽게 한다. 한마디로 무조건적이고 감정적인 반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3선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문수 의원은 “나도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배신자·탈당자는 다 결격인가. 감정을 빼고 차분히 따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선 개혁파로 불리는 원희룡 의원은 “물지도 않을 것이면서 짖기만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리 등의 문제가 있다면 확실하게 공개하고, 아니라면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여준 의원은 감정 싸움으로 흐르면 부산·경남 지역 정서를 자극할 수도 있다면서 결정적인 흠이 드러나지 않는 한 ‘김혁규 총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변수는 있다. 6월5일 재·보궐 선거 결과다. 부산시장이나 경남도지사 가운데 한 곳, 특히 부산에서 한나라당이 패할 경우 박근혜 대표의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덩달아 ‘김혁규 총리’ 인준 문제도 난기류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김혁규씨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경우에도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6·5 재·보궐 선거와 ‘김혁규 총리’ 문제는 박근혜 체제의 안정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이다. 홍준표 의원은 “박대표가 상생의 정치 운운하는데 6·5 재·보선에서 패할 경우 지각 변동이 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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