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개발에 지리산은 ‘뇌사 상태’
  • 경남 함양·박병출 부산주재 기자 ()
  • 승인 199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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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들 개발 경쟁으로 ‘위기’…주민도 한몫 거들어
한국 지도에 지리산이라는 산 이름은 없다. 국립 공원 제1호 지리산은, 해발 1,915m인 천왕봉을 필두로 한 반야봉(1,732m) 영신봉(1,651.9m) 노고단(1,507m) 등 군봉과 일대 산역(山域)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없는 듯 있는 산이다. 지리산은 경남 하동·산청·함양군,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남도 사람들의 가슴에 뿌리 내린 마음의 산이다.

그 지리산이 사람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산림을 갈수록 황폐하게 할 자연공원법(<시사저널> 95년 4월20일자 제286호 참조)이 아니라도, 지리산은 이미 ‘뇌사 판정’을 받기에 족하다.

지리산 권역은 국립 공원 구역 438.9㎢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바깥 지역으로 나뉜다. 따라서 훼손의 정도나 형태도 안팎이 다르게 나타난다. 공원 구역 안은 주로 사람들의 발길이 훼손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94년 판매한 지리산 입장권은 2백41만여 장이다. 여기에 부모와 동반 입장한 일곱 살 이하 어린이, 매표소 밖 계곡에서 놀다 간 탐승객을 합치면 지난해 지리산을 찾은 사람은 4백만쯤으로 추산된다.

관광객들은 주말과 여름 휴가 기간에 집중적으로 찾아와, 심한 경우 하루 10만 가까운 인파가 지리산을 짓누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도 한몫을 했다. 환경·시민 단체들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개설한 지리산 관광 도로는, 수 명에서 수십 명씩 태운 차량을 연신 산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한여름 성삼재 일대에서는 ‘산상 교통체증’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지리산의 명물인 철쭉과 일렁이는 억새숲으로 장관을 이루던 세석평전은 이름 그대로 ‘평평한 밭’으로 변한 지 오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3월31일 뒤늦게 전국 18개 국립 공원에 대한 ‘자연생태계 보전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4년까지 1백58억원을 투입해 노고단·세석평전 등 훼손이 극에 달한 지리산 지역 16곳을 복원할 예정이다. 또 고산 수목원 보존지구(세석평전·노고단) 일반 수목원 보존지구(뱀사골·서나무골) 등을 지정해 자생 식물 군락지로 만들 계획이다.

천혜의 절경에 24홀 골프장 건설 추진

그렇지만 돈을 쏟아붓거나 보존지구를 지정하는 것으로 지리산이 되살아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입산통제 제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공원 구역 내에는 자연휴식년제 시행과 산불 방지를 위해 여러 등산로를 폐쇄했지만 그 중 한 곳인 천왕봉만 해도 ‘지리산 정복’을 위한 행렬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공원 구역 밖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공원 구역 안은 등산객에 의한 훼손이 비록 광범위하지만 타박상 정도로 가벼운 데 비해, 공원 밖 지역은 개발의 회오리 때문에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관광자원화’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각종 대형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자연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개발사업의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들이라는 점이다. 경남 산청군의 경우 추진 또는 구상중인 사업이 20개에 달한다. 90년부터 시행중인 ‘중산관광단지 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국립 공원 구역에서 1㎞ 남짓 벗어난 시천면 중산리 일원 29만7천㎡(9만평)에 1백88억원을 들여 96년까지 상가·숙박시설·야영장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 투자 재원 88억원을 제때 조달하지 못해 땅만 파헤쳐 놓은 채 공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더욱이 당초 계획했던 민자 유치 전망이 어두운 데다 경상남도 개발기금에서 끌어 쓴 50억원의 기채 이자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 사업은 벌써부터 실패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동군은 10여 건의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자연풍치림 조성, 하동댐 호반관광지 조성, 화개장터 복원 사업 등은 상대적으로 지리산 생태계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사업이다. 그러나 일부 개발사업은 예산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되는 등 문제를 안고 있다.

함양군도 농월정 계곡 개발, 강청지역 콘도 건립, 용추 계곡 개발, 용유담 종합휴양지 조성 등 10여 건의 개발사업을 추진중이고, 4월12일에는 서상면 금당리에 24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서상면은 지리산과 국립 공원 제10호인 덕유산 자락이 만나 천혜의 절경을 이룬 곳이다.

이 계획에는 두 가지 특기할 점이 있다. 첫째는, 극심한 자연 훼손이 뒤따르는 골프장 건설을 지방자치단체가 직접(민관 합작으로) 추진한다는 사실이다. 함양군은 지방자치단체 49%, 민자 51%라는 지분을 확정했다.

둘째는, 계획을 발표한 시점이다. 경상대 지역개발연구소가 ‘지리산 경남권 관광개발 구상’ 연구보고서를 내놓은 뒤 발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 연구는 산청·함양·하동 3개 군 의회가 공동으로 용역을 발주해 진행됐다. 당초에는 김기조 산청군의회 의장의 제안으로 3개 군이 공동 발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단일 사업에 복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분담할 수 없다는 예산집행 규정에 막혀 발주자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용역은 지리산 개발 여부에 대한 진단보다는 개발을 전제로 각 군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 계획의 당위성을 ‘공인’ 받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보고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지리산 개발이 경쟁 관계에 놓여 중복 투자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면서, 3개 군이 공동 보조를 취해 ‘테마 파크’ 형태를 갖추도록 제안했다. 함양군이 이같은 제안을 외면하고 서둘러 독자적인 골프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신안면 안봉리에 골프장을 구상중인 산청군에 앞서 개발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것은 경상남도의 반응이다. 경상남도 역시 경상대가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직후인 3월22일 ‘지리산권 산청·함양 일대 2백만평에 민자를 유치해 디즈니랜드 형태의 대단위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상남도의 구상도 경상대 연구보고서와 대동소이하다. 하동군을 제외했을 뿐, 지리산권의 기존 관광자원에 지역별 특성을 부여해 테마 파크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심지어는 디즈니랜드형이라는 것도 경상대 연구보고서에 가칭 ‘경남 디즈니랜드’로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경상남도는 4월에 용역을 발주해 새로운 기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중복 투자라는 지적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경상남도에 의해서도 무시되고 있다. 경상남도는 오히려 도가 주체가 되어 대규모 개발을 하는 것이 군 단위의 무분별한 개발 욕구를 해소하고 중복 투자를 막는 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구 용역이 개발 계획의 시행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명분 확보용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경쟁적인 지리산 개발 계획 발표는,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밥그릇 싸움’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합리적 개발은 자연보호” 강변

마창(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공동의장 강경구·양운진)과 지리산 자연보호 경남연맹 등 환경단체들은 잇단 개발 계획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마창환경운동연합은 도내 자연생태계 보존책을 먼저 세우라고 촉구하며 3월31일에 이어 4월1일에도 지리산 개발 백지화를 위한 가두 홍보 활동을 벌였다.

이에 대해 이상균 경상남도 관광과장은 “대전~진주 고속도로가 일부 개통되는 97년 이후에는 지리산 관광객이 현재의 두배로 늘어난다.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훼손은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라며 합리적 개발이 오히려 자연보호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리산의 생태계 파손은 자연 상태로 보존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한 결과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경쟁적 개발 바람에 휩싸인 지리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지방자치단체·현지 주민·환경단체라는 삼각틀 안에서 해답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행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 경영 이념을 도입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재정 확충과 경영 능력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 민선 단체장들은 지리산을 개발 표적으로 삼을 것이다. 아직까지 별다른 개발 계획을 내놓지 않은 지리산권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대부분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어, 6·27 선거 이후 개발 바람은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 여건과 주민들의 개발 욕구도 개발 바람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리산을 본격 개발해 충청권과 한려해상권을 잇는 관광 벨트를 구축한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 계획에 대해 현지 주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경상대가 지난 1월 지리산 권역 주민 3백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8%가 지리산의 관광개발 정도가 빈약하다고 응답했다. 또 대다수가 ‘환경 훼손을 줄이는 범위 내에서’(67.7%) 개발에 찬성했지만 일부는 ‘훼손을 감수하고라도 개발에 찬성한다’(17.8%) 고 응답했다.

문제는 자치단체들이 지리산 생태계에 대한 인식과 보존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개발 계획이 대부분 민자 유치 사업으로 추진되고, 상가·숙박시설·콘도미니엄·골프장 등을 건설한다는 사실에 특히 반감을 갖고 있다. 산을 ‘먹고 마시고 노는’ 장소로 변질시켜 지리산의 외양과 정신을 모두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들도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케이블카·호텔 등 위락시설 건립(23.7%)보다는 민속·자연생태계 박물관 건설(23.3%), 특산품 개발 추진(20.1%), 등산로·산림욕장 설치(17.0%), 스포츠 시설 확충(8.5%) 등 ‘건전한 개발’을 요구했다.

‘개발=적극적인 자연 보호책’이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주장과 ‘개발=파괴’라는 환경단체의 시각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관광개발 사업에 따른 자연 파괴 실태를 잘 아는 환경단체들의 행정 불신과, 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대안 없는 무조건 반대’라고 항변하는 개발론은 그 사이에 그어진 평행선이다.

<정감록> <도선비결> <남사고비결> 같은 도참서들이 난세를 피할 ‘보길지지’로 꼽은 지리산은, 이제 정작 자신이 맞은 난세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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