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 내각제 놓고 ‘전면전’ 임박
  • 徐明淑 기자 ()
  • 승인 199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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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앞두고 탐색전 이미 시작…정치적 이해에 인간적 갈등 겹쳐 치열할 듯
우호적인 공존, 미묘한 갈등과 긴장, 측근을 동원한 대리전. 지난 2년 4개월 동안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보여온 다양한 관계학이다.

지난달 말 그 미묘한 균형이 깨졌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매우 민감한 문제를, 대단히 직접적인 화법으로 거론했다. 양쪽 모두 누구를 향한, 무슨 의도를 가진 이야기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을 한 차례 주고받았다.

지난 4월26일 김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이사장은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라고 못박았다. 나아가 김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세대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지방자치 선거 뒤의 정계 개편과 개헌 가능성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개헌 불가, 대통령제 고수를 강력히 재천명한 것이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김대중 이사장은 중앙승가대 초청 강연에서 내각제 관련 질문을 받고 ‘대통령중심제만이 통일에 적합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정계 은퇴와 대통령 취임 이후 양쪽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접 화법을 포기하고 직접 화법으로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이번 지방 선거가 함축하는 정치적 의미와 민감성, 오랫동안 양쪽 진영에 쌓여온 감정적 앙금, 양김의 정서를 전적으로 대변해 주지 못하는 대리인 체제의 한계 따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 한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민주화 동지의 밀월’로 비쳐지리만큼 평화로운 공존 관계를 유지했다. 김이사장은 개혁을 전제로 한 ‘문민 정부에 대한 협조’를 언론과 주변 인사들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김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김이사장의 결단과 대승적 처신에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네 차례 회동 불발시킨 속뜻

하지만 그런 상황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고, 두 진영 사이에 불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청와대 만남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집권 초반 김대통령은 두 차례 김대중 이사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통령은 김이사장이 영국 유학을 떠나기 전과 돌아온 직후에 당시 박관용 비서실장과 김덕룡 정무장관을 밀사로 보냈다. 동교동측은 뚜렷한 명분을 마련해 주지 않은 채 밥이나 먹자는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자연히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이사장이 정치적 야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회동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 섞인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청와대 쪽이 회동을 무산시켰다. 김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기 전과 에이펙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전 은밀히 사람을 보내 다녀온 뒤 만나자고 청했다. 이번에는 김이사장이 흔쾌히 응했는데, 정작 초청한 김대통령측이 다녀온 뒤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는 바람에 회동은 또 불발됐다.

이어서 지난해 말 DJ는 아·태 민주지도자회의에 앞서 일찌감치 김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초대장을 보냈다. 김이사장은 초대장을 직접 작성할 정도로 최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지도자회의에 심혈을 기울인 김이사장은 ‘자리를 빛낼 현직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했지만, 김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축하 메시지로 대신했다. 김이사장은 공개 석상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것도 대단한 성의’라고 말했지만, 정작 측근들 앞에서는 매우 서운해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여러 차례 시도됐던 두 사람의 회동이나 대면이 끝내 불발로 그친 것도 서로의 성공에 ‘보증’ 서기를 꺼리는 경쟁자 의식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또 현재의 정치 구도상 언젠가는 갈등 국면에 처하게 될 정황을 ‘정치 9단’답게 날카롭게 예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두 진영 간의 경쟁과 대립 의식은 심리적 측면과 정치적 맥락만이 아니라 정책 측면에까지 이어졌다. 북한 핵과 통일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일본 문화 개방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인 것이다. 지난 2월 DJ는 서울 청담교회 초청 강연에서 외국 문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한 선조들의 예를 들어 ‘일본 문화에 대한 점진적 개방’을 주장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김대통령은 ‘일본 문화 개방 불가론’을 분명히했다. 이 때 김이사장의 측근들은 ‘YS는 DJ의 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일일이 뒤집는다’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청와대 비서진과 김대통령의 측근들은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기도 전에 앞질러 개인 견해를 무책임하게 내놓는’ 김이사장의 과욕을 못마땅해 했다. 그래서 최근 두 사람이 직접 화법으로 맞선 배경을, 정권 출범 이후 두 진영에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적 앙금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DJ는 내각제를 선택했는가

그러나 양김 정면전의 근본 배경은 차가운 정치 현실과 냉정한 정치적 이해 관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감정 자체가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전을 앞둔 양김의 충돌은 연초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올해 초 이례적으로 공개된 민자당 정세전망 보고서는 ‘8월로 예상되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김이사장의 정계 복귀가 드러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지난 2월 청와대 비서실이 작성한 <김대통령 2년 자료집>은 ‘김대통령은 이제는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3김 시대가 의미 있게 마감되고, 21세기를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차세대 중심의 정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공식 문건과 스스로의 언급을 통해 드러난 김대통령의 정치 목표는 분명했다. 그것은 자신의 임기를 마지막으로 3김 시대를 마감하고, 차세대 인물을 주자로 내세워 다음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권 재창출 방식은 현행 헌법에 보장된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에 따른다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야말로 지역 구도에 묶여서 늘 지지표의 한계점에 부딪히는 DJ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본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김대통령 주변의 상황 인식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3김 시대 청산과 대통령책임제 고수’는 김종필 대표가 탈당한 뒤로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직면했다. 김대중 이사장이 ‘원로의 선거 지원’을 명분으로 자신의 족쇄를 가볍게 풀고 날랜 행보로 선거에 간여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이사장은 선언만 안했을 뿐이지 이미 정치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반YS 지역연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그 종착역이 어디인가는 훤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확실히 제동을 걸어줄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김윤환 정무장관이 한 시사 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권력 구조 개편’ ‘민자당 신주체론’ 발언을 꺼내자 지방 선거 이후 내각제를 명분으로 내건 이합집산과 합종연횡할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여권에서는, 김이사장이 이종찬 의원을 경기도 지사 후보로 민 것을, 수도권에서 어떻게든 이기기 위한 선거 포석인 동시에 ‘민자당 내의 내각제 선호 세력을 향한 의미심장한 손짓’으로 해석할 정도였다.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DJ의 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정치권의 흐름에 강력히 쐐기를 박을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김이사장은 왜 선거 국면에 그토록 깊숙이 개입했으며, 이 시기에 민감한 내각제 관련 발언을 했을까. DJ의 정치 구상은 지역연합에 의거한 내각제 추진으로 확실하게 정리된 것일까. 우선 DJ는 당내 경선 후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희생과 양보’를 스스로 감내했다. 서울 지역의 조 순 후보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DJ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다시피 했다. 전남 지사를 희망했던 동교동 측근 한화갑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다. 그는 끝까지 미련을 가졌던 경기도의 ‘이종찬 카드’마저 이기택 대표의 저항에 부딪혔다.

측근들은 DJ가 이렇듯 실익도 없이 국민에게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후보 조정에 뛰어든 이유를, 이총재가 총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DJ는 그의 후광을 활용하려는 주변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YS, 지방선거 직후 선제 공격 가능성

그러나 정가의 해석은 다르다. 정가에서는 김이사장의 후보 조정과 선거 지원 움직임을, 민주당 출신 자치단체장에 대한 확실한 장악력을 행사하기 위한 투자로 보고 있다. 나아가 정가 관측통들은 DJ의 승가대 발언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국민이 지지한다면 내각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수준에 그쳤던 과거에 비하면, 매우 진일보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이사장이 내각제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 두어 달이 관건이다. 이 때 YS가 민정계 이탈을 못 막으면, 내각제 흐름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분석마저 나온다. 물론 이런 분석은 DJ가 권력 쟁취의 통로로 내각제를 이미 선택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개시될 김대통령의 선제 공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개혁을 다시 강력하게 밀어붙이거나, 김이사장의 외곽을 부수는 방법을 동원하리라는 것이다. 선거법은 물론 과거 비리와 연루된 단체장 당선자들의 사법 처리가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때로는 모호하게, 때로는 불투명하게 장막 뒤에 가려졌던 두 사람의 관계학은 이미 그 실체를 드러냈다. ‘정적이자 경쟁 관계’로 재설정된 양김 관계는 지방 선거 이후 예상보다 빨리 전면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면전을 매개하는 고리는 물살이 빨라질 정계 개편과 개헌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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