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국회 주시하는 정보기관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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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요원들, 의원 동향 파악 여전…경찰 10여 명 활동 활발, 안기부·군은 위축
지난 6·27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박찬종 전 의원은 중요한 전화는 절대로 의원회관의 자기 사무실에서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반드시 자기와 가까운 민자당 의원 방에 가서 통화를 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전화가 항상 도청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야 의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민자당 민정계의 한 의원은 “위에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화통에 대고 한다. 그러면 모두 보고될 것 아니냐”는 말도 한다. 그도 의원회관이 정보기관의 철저한 감시 아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실제로 13대 여소야대 국회 전까지만 해도 보안사·안기부·치안본부의 정보요원들은 국회 본청 안에 사무실까지 두고 공공연하게 의원들의 동태를 파악했다. 당시 이들 정보기관의 사무실에는 도청 시설이 돼 있다는 설도 나돌았다. 그러다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여소야대가 되자 국회내 정보기관 사무실은 모두 폐쇄됐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곧바로 군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정치 사찰도 금해 국회 내에서 정보기관 요원들의 모습은 한동안 볼 수 없었다. 93년 3월 안기부는 조정관의 기관·단체 출입제 폐지와, 공식 업무 협조 외의 조정관 출입 금지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국회에서는 다시 정보요원들이 활보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밀고 들어와 국회 식당에서 점심까지 먹어 가며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 내에서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음습한 유산인 정치 사찰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월간 <신동아>는 경찰이 6공 말기인 92년 12월부터 93년 4월까지 각계 인사들의 동태를 파악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자료를 입수해 소개하면서 ‘문민 정부도 사찰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 뒤 군과 안기부의 정보 수집 기능이 위축되면서 부쩍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곳이 바로 경찰이다. 요즘 들어서는 안기부 요원들이 경찰 요원들에게 정보를 묻고 다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경찰은 <신동아>에 소개된 94년 4월까지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내내 요원들을 국회에 파견해 정보를 수집해 왔다. 국회 내무위의 한 야당 의원은 “현재 국회에 상시로 출입하는 경찰 정보요원이 1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이들 경찰 정보요원들은 서로를 상무나 전무라고 부른다. 물론 팀장은 사장이다. 남이 듣는 데서 조직내 직위를 부르기 껄끄럽기 때문이다. 이들은 간혹 서로를 이기자니 김기자니 하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의 업무는 실제로 기자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이들은 아침에 국회나 정당에 출근해 저녁 때까지 꼬박 ‘취재’하고는 ‘회사’에 들어가 ‘기사’를 쓴다. 기사 내용은 적어도 조간이나 9시 방송 뉴스보다 앞서가는 것이어야 한다. 기자처럼 특종을 하면 고과가 올라가고 낙종을 하면 문책 당한다. 국회를 출입했던 한 경찰 정보요원은 “아마 기자들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정보 수집 환경은 나빠졌는데 위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한달에 2~3개는 특종을 해야 한다”며 나름대로 고충을 털어놓았다.

안기부, 국회내 활동 ‘공식’ 재개

여소야대 국회 때 사무실이 폐쇄된 안기부는, 안기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를 강화한 안기부법이 개정되면서 오히려 국회 내에서 공식으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신설된 국회 정보위원회에 사무관 1명을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회직으로 돼 있는 전문위원에도 안기부 출신을 앉힐 수 있게 됐다. 안기부 출신이 국회 정보위 전문위원이 되려면 형식적으로 안기부를 퇴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연고지’인 안기부와 깊은 관계를 지속할 것은 분명하다.

정보위원회 신설을 계기로 안기부도 서서히 국회 내에서의 정보 수집 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본인이 자기 입으로 ‘국회 출입’이라고 소개한 안기부 요원을 3명 만났다”고 말한다. 현재 공식으로 정보위에 파견된 안기부 요원 외에 3~4명이 국회를 상시 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안기부 요원은 국회 정무장관실과 민자당 원내기획실을 주요 활동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한창 탈당설이 나돌던 민자당 ○의원 비서진에 따르면, 안기부 요원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꼬치꼬치 의원의 동향을 점검했다고 한다. 안기부 요원들의 자세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활동은 공식 업무 외에는 조정관을 파견하지 않겠다던 93년 3월 안기부의 발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현재 군·경찰·안기부 등 국회를 출입하는 정보요원 가운데 가장 입지가 초라해진 것이 군 관계자들이다. 과거 군 관계자들은 군이 국회를 몇 차례 힘으로 해산한 바도 있고, 집권 여당의 대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정계에 선배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어 가장 위세가 등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남아 있는 군 관계자들은 국방부 연락관실 요원들뿐이다.

국회 본청 지하 1층 우체국 옆 B108호에 자리잡고 있는 국방부 연락관실에는 현역 대령인 단장과 사무관 2명, 여직원 1명이 근무한다. 이들은 모두 국방부 소속이다. 한때 국방부 연락관실은 본청 1층에 널찍한 방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14대 국회 들어와 지하 1층의 좁은 방으로 이사해, 김영삼 정부 출범 뒤 군의 위세가 많이 꺾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 연락단장은 장성 진급을 보장 받는 자리였지만 지금은 한직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민자당 전국구 이건영 의원과 배대웅 전 정보사령관이 단장 출신이며, 박태준 전 포철 회장도 한때 연락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야당 쪽에서는 국방부 연락관실이 과거 보안사가 하던 정보 수집 업무를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방부 연락관들이 주로 국방위원들의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의원들이 어떤 내용의 대정부 질문을 할 것인지, 국정감사 때 주로 어떤 부분을 물고늘어질 것인지 미리 탐지해 보고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락관들이 군 관계 업무와는 상관없는 국회내 정치 행사에 참석해 메모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과거 국회에 출입했던 보안사(지금은 기무사) 요원이 다시 국회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형편이다.

국방부 연락관실과 여당 의원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편의를 봐주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들이 정계 고위층 자식들이 군 내에서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방부 연락관실이 군이 소유한 서울 근교의 골프장을 의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소리도 나온다.

이런 여러 의혹에 대해 국방부 연락관 ㅈ씨는, 군의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그는 연락관실이 어떤 정치적 정보 수집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어디로 면회를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지역구 의원을 통해 문의를 할 경우 협조하고 있을 뿐 보직 배정 등에 영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특별히 의원들이 부탁해 오면 국방부장관실에 연락해 골프장 예약을 주선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라며 의원들과의 유착설을 부인했다.

국방부 연락관실은 국방위원들이 의정 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곳이기는 하다. 군 관련 질의를 하려고 해도 군 관계기관의 연락처는 전화번호부에도 나와 있지 않아 통보할 방법이 없다. 군과 의회 간의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중계소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군과 의회와의 관계가 정상화하려면 국방부 연락관실의 기능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국회 내의 대다수 인사들은 여전히 국방부 연락관실을 군 정보기관이 국회 안에 세워놓은 초소쯤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정보요원들, 괴문서 진원지로 의심 받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국회를 찾는 정보요원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국회와 정당 주변에서는 괴문서가 부쩍 많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괴문서와 정보요원들의 보고서 작성 방식이 흡사하다는 점 때문에 괴문서의 진원지로서 이들을 지목하기도 한다. 물론 정보요원들은 그들의 활동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민화’됐다고 강조하기는 한다. 자기들의 활동을 사찰이 아닌 일상적인 정보 수집 업무로 보아 달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정치권이 자기들에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치권이 아직도 정보기관에 대한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얘기가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고 해도, 국회를 드나드는 정보기관 ‘출입기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 보아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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