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리더 시리즈 ⑦ /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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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틀 깨버리는 소신의 ‘청개구리’
요즘 한나라당에서 유난히 주목되는 이가 고진화 의원(41)이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파병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으로 한나라당 의원 4명이 ‘파병 재검토’에 서명했다.

성격이 화끈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고의원은 “다른 의원들의 눈총에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도 소신껏 할말을 하겠다”라며 웃었다. 그의 첫인상은 부잣집 아들처럼 후덕하다. 하지만 그는 누구 못지 않게 치열하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진 ‘투사’다.

1985년 5월23일,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서울 을지로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했다.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처 이후 형성된 각 대학간 연대 투쟁의 첫 결실이자 학생운동이 대중성을 띠기 시작한 계기가 된 일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막후에서 기획한 사람이 바로 고의원이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한 고의원은 일찍부터 사회 의식이 트였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윤재철씨가 중학교 때 담임교사였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씨로부터 국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시인인 김진경씨는 1980년 당시 고교 2학년이던 고의원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려준 스승이었다.

노무현·유인태 등과 ‘꼬마 민주당’ 창당

5공화국의 폭압은 대학 시절 그를 배움보다는 투쟁의 길로 이끌었다. 1985년 9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이던 고의원은 정치권과 학생들이 연대해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이자고 제안하기 위해 당시 제1 야당이던 신민당 이민우 총재를 만나러 갔다가 구속되었다. 1988년 2월까지 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비슷한 시기에 구속되었던 윤재철·김진경 두 스승을 감옥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출소 이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등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17대 국회에 등원하기까지 그의 정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고의원은 1995년 노무현·제정구·유인태·원혜영 등과 함께 이른바 ‘꼬마 민주당’을 만들어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강서 을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지역 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을 절감하며 낙선했다.

‘외교관들의 사관학교’라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정치대학원(SAIS)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 갑에 출마했다. 그러나 두 번째 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고의원은 “대학 선배였던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균환 사무총장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것은 평소 3김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야당도 시대에 따라 변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낙선 이후 그는 발이 부르트도록 지역을 누볐다.

“중진과 소장파 가교 역할 맡겠다”

고의원은 한나라당에서 보기 드물게 이념적으로 유연하다. “한·미 동맹을 지지하면 무조건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고 미국에 항상 우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 관념이다”라며 미국이나 남북 문제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너무 이념적인 틀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한·미 동맹이 ‘대등하면서도 우호적인 협력 관계’라고 이해한다.

주한미군 철수 등 현재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평화 구도를 만들어갈 좋은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고의원은 “국제적인 역학 관계상 우리가 판을 짜지는 못할지언정 상황을 주도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고의원은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 소장파가 주도하는 ‘수요 조찬 공부모임’ 대신 홍준표·이재오 의원 등 한나라당 3선 의원들이 중심이 된 ‘국가발전 전략연구회’에 가입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두 모임이 일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주제에 따라 연대할 영역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 집권하려면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정책·문화·심리적으로 젊은 세대와 호흡할 수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하고, 취약지인 호남과 충청을 파고들어야 하며, 사회적 약자와 시민단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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