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실 실세는 누구인가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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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권·박지원·이강래·장성민 ‘4강 구도’…합종연횡해 ‘힘겨루기’ 가능성
청와대 비서실의 권력 구도가 보이지 않게 바뀌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100일째인 지난 6월4일을 전후해 나타난 이같은 변화를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김대통령과 자주 독대하는 비서실 인사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역대 정권에서 입증된 것처럼, 비서실 내에서 힘은 대통령과 언제든지 독대할 수 있는 인사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대통령 독대 둘러싸고 ‘권력 경쟁’

현재 대통령과의 독대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인사는 김중권 비서실장 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또는 오후 5시에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 현안에 대한 수석비서관들의 의견을 취합해 김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김대통령이 이같은 보고 체제를 선택한 것은, 빠듯한 일정 때문에 수석비서관들의 보고를 직접 챙기기 어렵기도 하지만, 김실장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조처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의 독대를 둘러싼 비서실의 권력 경쟁은 김실장과 박지원 공보수석 간에 벌어져 왔다. 박수석도 수시로 김대통령과 독대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양자 대결 구도가 지방 선거를 기점으로 4자 대결 구도로 바뀌고 있다.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이강래 전 안기부 기조실장과 장성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최근 정무수석과 상황실장에 임명되어 독대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강래 수석에 대한 김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이수석이 안기부 기조실장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김대통령과 부부 동반해 여러 차례 저녁 식사를 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수석은 앞으로 비서실 권력 구도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계 개편을 추진할 경우 이수석이 실무 작업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성민 실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가 3급인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있을 때도 수시로 김대통령과 독대가 가능했지만, 직무나 직위로 볼 때 김실장이나 박수석의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6월9일 2급으로 특진해 1급이 맡던 상황실장이 된 이후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다. 이에 따라 그는 직급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김실장·박수석·이수석과 경쟁할 기반을 확보한 셈이다.

이같은 4자 경쟁 관계는 한꺼풀 벗겨 보면 김실장·이수석·장실장 연합군과 박수석의 구도로 볼 수 있다. 김실장과 이수석은 지난 대선 직후 함께 김대중 정부 출범 작업을 하면서 의기 투합했으며 두 사람 모두 박수석과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장실장 역시 마찬가지. 만약 이들이 연대해 힘겨루기를 할 경우 박수석은 매우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국정 운영 보좌에 전심 전력해야

실제로 김실장과 이수석 연합군이 이미 출범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6월9일 정무수석실이 기획 담당인 정무1비서관실과 행사 담당인 정무2비서관실로 개편될 때 서형래 전 <문화일보> 정치부장이 정무1 비서관에 임명된 것은, 김실장과 이수석이 박수석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언론 관계가 좋은 서비서관을 활용해 박수석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김실장과 이수석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장실장도 김·이 연합군과 연대할 공산이 크다. 그는 정부 부처 상황실로부터 매일 올라오는 각종 고급 정보를 무기로 삼아 관계가 그리 편치 않은 박수석과 더욱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수영 전 실장 시절에는 상황실에 모이는 정보가 기초적인 현황 자료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전 실장과 달리 장실장이 김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상황실은 더 고급 정보를 접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실은 청와대 비서실 산하 기구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현재 2급 비서관 1명과 행정관 5명을 포함해 정치·경제·사회·노동·안보 등 각 분야 담당자 30여 명이 포진해 있다. 지금까지 상황실이 비서실장과 각 수석실에 제공한 정보는 언론에 보도된 정보와 경찰에서 올린 기초 정보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장실장이 상황실장을 맡은 이후 직원들 간에 생기가 돌 정도로 고급 정보가 모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구도가 김실장·이수석·박수석이 서로 손을 잡고 장실장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상황실이 검찰·안기부·경찰 등으로부터 정무수석실과 민정비서실보다 더 많이 고급 정보를 넘겨받을 경우, 장실장이 이같은 정보를 활용해 김대통령으로부터 더 큰 신임을 얻는 데 주력한다면 박수석뿐만 아니라 김실장과 이수석까지 장실장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의 권력 투쟁은 이처럼 자못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하려는 경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난 3개월 동안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온 일부 수석들 간의 암투는 경제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김실장·이수석·박수석·장실장 등 4인간 경쟁의 초점이 국난 극복과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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