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노벨상 수상, 걸림돌은 김정일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0.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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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노벨평화상 수상 1위 ··· 김정일 위원이 최대 걸림돌
제1부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 제2부 50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 연출하고 때로는 공동 출연한 두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렸다. 여느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과 감동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관객 동원력 또한 엄청났다.

작품성과 흥행성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작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두 정상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987년 이후 열네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김대중 대통령 처지에서 보면 이번만큼 수상 분위기가 무르익은 적도 드물다.

우선 객관적인 업적이 확실히 갖추어졌다. 분단과 전쟁, 갈등과 증오에 휩싸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여겨져 온 한반도에 명실상부하게 평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올해 추천된 후보 가운데 쟁쟁한 경쟁자가 달리 없다는 점도 김대통령에게는 유리한 대목이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지난 7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주선한 중동 평화회담이 성공했다면 클린턴과 이스라엘 바라크 총리, 팔레스타인 아라파트 수반에게 노벨 평화상이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클린턴이 몹시 공을 들인 캠프 데이비드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그간의 평화 전도사 역할과 최근 전개하고 있는 무주택자 돕기 집짓기 운동 등이 추천 사유로 알려진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경쟁 상대로는 다소 약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아이러니컬하게도 DJ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가장 높여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보통 분쟁 지역의 갈등이 해소되었을 경우, 노벨위원회는 이 상이 장기적인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양쪽 주역에게 공동으로 상을 준다. 이런 취지에 따라 1978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두 나라간 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공동 수상한 것을 비롯해 10여 차례나 공동 수상자가 나왔다. 김대통령 측근들에 따르면 DJ도 같은 맥락에서 김위원장과 공동 수상하기를 바라고 있다.
클린턴과 3인 공동 수상 가능성도

그런데 김위원장이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는 데는 명분에서나 기술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김위원장이 노벨상 후보 명단에조차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벨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매년 2월1일 전에 접수된 후보에 한해 심사를 한다. 이후 추천된 인사는 다음해 심사 대상으로 넘기는 것이 관례다.

여기에 김위원장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나라 안팎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아직 미국이 정한 테러 국가 명단에 올라 있다. 물론 아라파트 수반 같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국제적으로 낙인 찍힌 테러국의 대표라는 사실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김위원장이 지금과 같은 평화 분위기를 이어갈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마디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정치 지도자’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노벨상 공동 수상이 내년에나 가능하리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물론 그 전제 조건으로는 경의선·경원선 복구,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 같은 제3, 제4의 히트 드라마가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올 가을 북·미 관계가 정상화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또 다른 파격이 연출될 경우, 클린턴까지 포함한 세 사람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노벨 평화상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중동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10일에 열린다. 그리고 수상자는 보통 10월 중순에 결정된다. 노벨상 14수생인 DJ에게 올 가을은 과연 잔인할까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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