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뛰는 YS의 ‘세계화’ 두뇌
  • 金在日 기자 ()
  • 승인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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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외무부 본부대사, 협상력·영어실력 바탕으로 외교 다변화 활약
김정원 외무부 본부대사가 조용히, 그러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최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남태평양의 팔라우·피지·서사모아 세 나라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외교 다변화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이 올 가을 유엔 총회에서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 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번에 팔라우 공화국과 국교 수립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의 수교국은 1백78국이 됐다. 그는 이 세 나라로부터 협조를 ‘확약’ 받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15년 동안 미국 변호사 생활을 통해 닦은 협상력과 영어 구사력은 그의 이번 외교를 빛나게 했다.

그의 학력과 경력은 화려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통인 그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 교수와 변호사 생활을 했다.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의 선데이 매거진, <포린 어페어즈> 등 유수한 잡지에 한국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면서 칼럼니스트로서 경력도 쌓았다. 그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박정권으로부터 수 차례 관직을 맡아 달라고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캠프에 들어온 것이 87년. 그러나 미국에서의 명예와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외교안보 특보로 들어온 그에게 관운은 따르지 않았다. 길바닥에서 전경의 곤봉 세례를 받으면서 6·29 선언을 쟁취하는 대열에 참가했었고, 13대 총선 때는 전국구 후보 명단에 올랐다가 `‘당 사정상’ 마지막 순간에 `‘물’을 먹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 출범과 함께 안기부 제 2차장에 임명됐으나, 얼마 가지 못해 2중 국적 시비로 그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2년 가까운 공백 끝에 지난 2월 본부대사로 임명된 것은 그의 공식적인 복권을 의미한다.

그는 얼마 전까지 교수 4백50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미래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중 포럼 회장, 하버드 동창회 회장 직을 맡아 국제 회의 참여와 국내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로 소리나지 않게 뛰고 있다.

그가 정작 관심이 있는 분야는 정보통신이다. 25년 전 <한국일보> 신년호에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며 `‘외교와 경제 전쟁에서 절대 무기인 정보 역량을 확충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즈음 그는 변화한 통신 양식인 이동통신에 대해서도 큰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 외교·국방에 우선해 정보·통신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40년 전부터 김대통령과 관계를 맺어왔기에 평소 YS 가신 그룹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김대사는 국정 지표인 세계화와 관련해 “세계 여러 나라의 말·관습·문화를 수용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세계를 안고 뛰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세계화 추세와 더불어 흔히들 민주계 인물난을 말하는 이 때, 김대사는 민주계의 독보적인 고급 두뇌로 인정받는다. 그는 내심 능력을 평가 받을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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