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DJ에게 화해 제스처
  • 崔 進 기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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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교주, 활로 찾으려 ‘DJ와 화해’ 모색… 여권, ‘불가근 불가원’ 유지할 듯
정치권에 ‘북풍’이 휘몰아치던 지난 3월10일 오후 3시, 서울 중곡동 리틀엔젤스회관에서는 독특한 종교 행사 하나가 열렸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 부부와 신도 및 외빈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세계화 시대를 향한 지도자 대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대회는 양복 차림의 문교주가 훈독(설교)을 통해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가정이 도덕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는 이른바 ‘참가정 운동’을 주장한 것을 빼고는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가 없었다. 통일교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백색 의상이나 요란한 의식도 없었다.

오히려 정치 색채가 짙었다. 국회 파행 때문에 이 행사에 3명밖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당초 여야 의원 15명이 참석하기로 했던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최근 들어 문교주가 부쩍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선명. 그가 좀처럼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아온 금기를 깨고 국내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2월26일)부터였다. 문교주는 이 날 오전 10시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서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을 30여분 면담한 데 이어 오전 11시께는 한나라당 조 순 총재를 만났고, 3월6일에는 자민련 박태준 총재와 국민신당 이인제 고문을 잇달아 면담했다. 문교주의 정당 방문에는 곽정환 <세계일보> 부회장과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회장 등 통일교 간부 5명이 계속 동행했다.

통일교 관계자들은 3공 이래 지금까지 문교주가 직접 여야 당사를, 그것도 자청해서 방문한 것은 처음이자 파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통일교가 정치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교주가 직접 나선 것은 최초라는 것이다. 당연히 문교주의 정당 방문 배경과 그 대화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교주님 생각과 <세계일보> 논조는 무관”

문교주가 여야 정당 대표에게 했던 말의 요지, 즉 방문 배경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의 경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제안이다. 문교주는 IMF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1백85개국에 퍼져 있는 통일교 조직망을 총동원해 ‘구국 헌금령’을 전개한 결과 3월 초 현재 1억달러를 모았고, <워싱턴 타임스> 같은 통일교 매체를 통해 미국 은행들이 한국을 돕도록 홍보 활동을 펴고 있다는 해외 활약상을 소개했다고 한다.

두 번째, 남북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통일교의 대북 채널이 얼마나 탄탄한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문교주와 김일성이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고, 통일교 관계자들이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통일교와 북한은 오래 전부터 밀월 관계를 유지해 왔다. 통일교의 북한 개발 책임자 격인 박상권 금강산개발 사장은 여야 대표들에게 통일교측이 평양에 대형 호텔을 2개 가지고 있고, 4월 중에는 7백석 규모의 교회를 지을 예정이며, 남포에 백만평이 넘는 자동차 공장 부지를 확보했다는 내용을 보고하고 정부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세 번째는, 통일교를 민간 외교에 활용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1백85개 나라에 퍼져 있는 통일교 선교사 2만5천명을 민간 외교관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문교주를 수행한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회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관 주도였던 외교 정책에 역량 있는 민간 종교 단체도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정도 얘기라면 굳이 문교주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 신도들이 ‘살아 있는 하나님’처럼 떠받드는 문교주가 손수 정계 거물들을 만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새로 출범한 김대중 정권과 관계 개선을 모색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문교주가 여야를 두루 방문하기는 했지만 진짜 상대하고 싶었던 쪽은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교 간부들은 이번 대선에서 자기네가 운영하는 <세계일보> 논조가 김대중 후보에게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다.“문총재님의 생각과 <세계일보>의 논조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러나 어떤 오해가 있다면 하루빨리 풀어야지요.” 통일교의 한 간부 얘기다. 3월10일 세계화 시대를 향한 지도자 대회 2부 행사에서 <워싱턴 타임스>의 주동문 사장이 김대중 정권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워싱턴 타임스>가 부지런히 뛰고 있다는 활동상을 장황하게 보고한 것도 현정권에 대한 화해 제스처로 볼 수 있다.

사실 통일교는 매우 정치적이다. 신도들 스스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면 내세 지향적인 다른 종교들과 달리 현실 정치와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주장할 정도이다. 과거 총선과 대선 때마다 ‘통일교 배후 지원설’이 나돌았고, 92년 대선 때는 국민당 정주영 지원설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DJ 정부, 통일교 제안에 선뜻 응하기 어려워

하지만 통일교측은 그런 정치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통일교가 역대 정권들로부터 부당하게 핍박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문교주의 한 측근은 “통일을 위해 우리만큼 노력한 곳이 없는데도 제대로 평가받기는커녕 소외당하고 배척만 당해 왔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와 김대통령은 서로 통하는 대목이 있다”라고 말했다. DJ 정권에 대한 화해 제스처가 물씬 배어 있었다.

사실 통일교 처지에서 김대중 정부와 화해하지 않고는 가뜩이나 내부 형편이 어려운 판국에 교세 확장은 고사하고 자체 활로를 뚫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 진출 문제만 하더라도 평양에 교회를 짓고 남포에 공장을 세우려면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런 통일교에 대해 여권 핵심부는 적대시할 필요도 없고, 또 적대시해 보아야 실익도 없다고 판단한다. IMF 한파로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국에 자기 돈 들여 정부를 돕고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통일교의 조직망과 재력과 대북 채널이 얼마나 방대하고 탄탄한지는 새 정권도 익히 알고 있다. 국민회의의 한 실세 의원이 신도도 아니면서 국회 파행 중에 세계화 시대를 향한 지도자 대회에 참석했던 것은 통일교를 무작정 멀리할 수 없다는 여권 인식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문제는 통일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통일교는 그동안 ‘축복식’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국제 합동 결혼식을 거행하면서 적지 않게 물의를 일으켜 왔다. 예컨대 지난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4천만쌍 합동 결혼식을 가졌는데 이때도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다. 오는 6월13일에는 무려 1억2천만쌍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축복식’이 거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무리한 교세 확장주의가 낳은 부작용이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특히 정통 교단들은 통일교를 이단이라고 단정하고 아예 상종을 거부하고 있다. 고(故) 탁명환씨 같은 종교연구가는 통일교가 54년 발흥한 이후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통일교는 일본 창가학회가 공명당을 만들었듯이 정당을 만들거나 정치인을 지원해 자기 세력을 부각하려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국민 정서 또한 아직은 통일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아니어서 김대중 정부로서는 통일교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이다.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이 문교주 일행에게 “모든 것은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면 문제가 없다”라고 다분히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다른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종파를 초월해 국익을 위해 돕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면서도, 그것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문선명. 신도들은 그를 ‘문총재님’이라고 깍듯이 부른다. 문교주는 요즘 서울 한남동 공관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통일교 신도 20여 명과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 다음 날 오전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문교주 측근들은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문교주와 통일교의 충정을 제발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통일교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통일교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시각은 앞으로 5년간 통일교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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