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강성 정치 안타냐, 헛스윙이냐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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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패 좌우…개혁 역풍 등 부담도 상당

사진설명 김대중 대통령.ⓒ시사저널 백승기

DJ정권이 강력한 정부, 강력한 여당을 외치며 강성 드라이브를 펼친 지 두 달. 과연 DJ의 강성 정치는 성공하고 있는 것인가? 일단 겉으로는 '약발'이 먹히고 있다.

지난해 12월27일 금융노조 파업을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진압하면서 의료 대란 이후 현정권을 괴롭혀 오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영(令)'을 세웠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비자금과 대우그룹 분식 회계 사건에 대한 전면 수사는 재벌 기업을 향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언론사에 대한 전면적인 세무 조사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를 교육 부총리에 발탁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보수 언론의 사상 논쟁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연·기금을 주식 시장에 투입하고 현대 계열사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등 경제에서도 강한 부양책을 썼다.

정치에서는 짧은 시간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권은 연초 자민련에 의원 3명을 임대하면서 DJP 공조를 확실하게 복원한 반면 야당은 안기부 자금 수사와 언론사 세무 조사 이후 크게 위축되었다. 민주당·자민련·민국당 정책 연합에다가 3김 연대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지난해 말 상한가를 치던 이회창 대세론은 어느새 '이회창 포위론'으로 바뀌었다. 야당 의원 사정설에 이어 경기도와 강원도 출신 한나라당 의원 4∼5명이 곧 이탈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면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지난해 말 30%대로 떨어졌던 DJ 지지도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강력한 정부론'이 먹혀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외부의 평가는 영 아니다. 유승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자체 여론조사에서 DJ 지지도가 약간 올라간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동안 DJ 정권의 무기력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지지자들이 일시적으로 결집한 수준이지 중도층의 지지가 얹힌 것은 아니라고 본다. YS 정권 말기를 내부에서 경험했던 윤여준 한나라당 의원은 "경험적으로 볼 때 역대 정권들은 레임 덕을 느끼고 약해지면 사나워진다"라면서 DJ의 강성 정치는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때늦은 선택" 비관론도 만만치 않아


한나라당의 평가가 야박한 것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DJ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시민단체나 중립적인 전문가의 평가도 혹독하기는 마찬가지다. 목진휴 교수(국민대·행정학)는 "강력한 정부의 원동력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오는데 현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이미 너무 깊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DJ가 강력한 정부의 근간으로 내세우고 있는 '원칙과 법'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참여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에 참여했던 김영래 교수(아주대·정치학)는 "말로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의원 꿔주기 같은 비상식적 방법을 동원하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 여론을 전했다.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역시 "의원 꿔주기를 하면서 당 지도부는 몰랐다고 부인하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라며 신뢰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또 "강력한 정부라면 사정기관의 권위가 필수인데 이미 검찰 등 사정기관에 대한 불신이 굳어져 '영'을 세우려 해도 안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한빛은행 불법 대출 의혹에 연루되었다가 검찰에서 면죄부를 받았으나 재판부로부터는 강한 의심을 받은 박지원 전 장관의 경우는 법치 상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함성득 교수(고려대·행정학)는 아예 '강력한 정부론' 발상 자체를 비판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DJ 정권은 소수 연립 정권이라는 점, 5년 단임에다가 임기 중반에 총선이 치러져 통제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 경제 상황이 불투명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조기 레임 덕 가능성을 예고해 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레임 덕을 부정하지 말고 타협과 설득 중심의 포용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교수는 "강성 정치라는 '앰플 주사'가 단기적인 회춘 효과를 낳을 수는 있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여권의 입장은 확고하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결과로 심판받겠다는 것이다. DJ 정권의 정책 브레인인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의약분업을 예로 들며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성사시켰고 벌써 약 소비량이 40% 이상 줄었다"라고 개혁의 결과가 비판을 잠재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힘의 중심, 兩權에서 重權으로 바뀌었을 뿐"


사진설명 "제 갈 길 가자" : 지난 1월 초 영수회담이 결렬된 이후 DJ는 야당을 의식하지 않는 정면 돌파 노선을 걷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강성 정치'의 결과에 대한 전망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비관론은 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강성 정치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순형 의원은 김중권 대표가 출범한 이후 집행력은 강화되었지만 당내 민주주의나 민심을 반영하는 측면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당 체질 강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양권(兩權)'에서 '중권(重權)'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다는 냉소적인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김대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일반 의원들에게서 활력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2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김대표와 이상수 총무가 나서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상임위 출석률이 저조하다며 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의총 직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 5분 발언 때 민주당 의원들은 속속 자리를 비웠고, 저녁 시간에는 20여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성 정치의 결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실기론(失期論)'도 한몫 하고 있다. 우선 여권 내의 차기 경쟁이 이미 시작되었고, 올 하반기에 이르면 DJ도 마냥 통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근 김중권 대표의 지방 순시를 대권 행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본격적인 대권 캠프인 한반도재단을 출범시켰고, 이인제 최고위원도 오는 4월 대규모 후원회 발족을 계기로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사회학)는 다른 측면에서 실기를 지적했다. YS 때도 그랬지만 DJ 정권의 경우에도 전반기에는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강력한 기반이 되었지만 후반기에는 좌우로부터 협공을 당할 수밖에 없어 강한 정권이 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우로부터는 개혁을 원하지 않는 보수파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이고, 좌에서는 개혁 지체에 대한 개혁 지지층의 반발이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DJ 정권 초기에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던 시민단체들도 국가보안법 개정 지체 등 개혁 부진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이든 전문가든 DJ 강성 정치의 성패는 경제가 좌우할 것이라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다. 여권에서는 '강한 정권→정치 안정→경제 회복'으로 이어지는 구도를 상정하고 있다. 조기숙 교수(이화여대·국제정치학)는 여권이 야당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고 강성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강성 정치에 대한 평가는 경제를 살리느냐 여부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핵심은 DJ의 강성 정치가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냐 아니면 그 반대가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4대 구조 조정이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았고 국제적인 평가도 좋아지고 있어 올 하반기부터는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은행에서 현대 계열사 등의 회사채를 인수했고 공적 자금 50조원이 투입될 것이어서, DJ의 말을 기대해 볼 만도 하다. 상반기에 있을 김정일 위원장 답방과 하반기부터 시작될 월드컵 특수도 경제에 호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강성 정치 수명, 길어야 올해까지


그러나 경제 회복의 관건은 4대 구조 조정의 성공 여부다. 구조 조정을 진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집단 이기주의 분출이고, 임기 후반기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 그 양상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DJ가 강성 정치의 칼을 빼어든 중요한 이유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함성득 교수는 "집단 이기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 과반수가 아니라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통해 압도적인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야당의 협조를 포기한 듯한 DJ의 강성 전략으로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DJ 강성 정치의 수명은 길게 보아야 올해까지다. 싫든 좋든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내년부터는 원심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 때까지 반이회창 연합 형성 등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안정적 틀을 만들고 경제를 회복시키면 DJ 정권으로서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구조 조정에 대한 반발,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복잡해진 한반도 정세, 차기 경쟁에 따른 여권 내부 분열 등 악재도 만만치 않다. 강성 정치의 칼을 빼어든 DJ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DJ는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YS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스윙이 크면 위험 부담도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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