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언론 전쟁' 전리품 챙길까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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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전무퇴' 의지로 전황 주도…
'조·중·동+한나라당' 연대 강도가 승부 가를 듯


정가에서는 이번 언론 전쟁을 치킨 게임에 빗대기도 한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 보고 달리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과연 누가 먼저 핸들을 틀 것인가? 겉으로는 아직 DJ 정권과 일부 신문이 임전무퇴의 각오로 마주 보고 달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양쪽 운전석 내부를 들여다보면 승부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현재로서는 일단 DJ 정권의 단호한 의지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싸움의 분수령은 7월 말로 예상되는 사주 구속 시점이 되리라는 것이 정가의 중론. 사주 구속을 놓고 마지막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일부의 관측에 대해 여권 인사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제 DJ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치킨 게임에서 이미 핸들을 뽑아 버렸다"라고 말했다. 남은 것은 마주 달려오는 상대방이 핸들을 꺾을 것인지 충돌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신문 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다는 메이저 신문들과 척을 지면 당장은 몰라도 다음 대선 때 유리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다는 투다. 일부 신문은 어떤 유화책을 써도 어차피 반DJ로 가리라는 것이 여권의 인식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평생 언론의 공세에 시달려온 DJ지만 자신의 최대 치적인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서까지 반대 일변도로 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라면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언론 개혁의 목표가 언론 시장 전체를 개혁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세무 조사와 비리 수사에 이어 정기간행물법 개정·국회 언론발전위원회 구성·신문고시와 공동판매제 실시 등 제도 개혁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유와 경영 분리·편집권 독립·일부 신문의 독과점 해소 등이 이루어지면 차기 대선에서 언론 환경이 여권에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DJ 정권이 이미 핸들을 뽑아 버렸다면 관건은 이에 맞서는 '조·중·동+한나라당'의 스크럼이 유지되느냐 하는 점이다. 지난 7월6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이회창 총재는 "모든 언론이 꼬리를 내리고, 심지어 어떤 언론은 등을 돌리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라고 예고했다. 조·중·동의 내부 동향을 여러 통로로 파악해 온 이총재의 발언이기에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우선 사주가 고발되지 않은 〈중앙일보〉의 경우. 한나라당은 이미 〈중앙일보〉가 양비론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분석한다.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는 언론 탄압을 비판하면서 일반 지면에서는 여야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처리하는 점에 주목한다.


김병관 일가, 〈동아일보〉 주식으로 추징금 대납?


〈동아일보〉는 아직 지면을 통해서는 일전불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병관 명예회장 등 사주에 대한 추징금이 4백69억원이라는 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아일보〉 전체 추징금 8백27억원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검찰에 고발당한 김명예회장 형제가 조세포탈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많게는 수백 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이들 김씨 일가가 개인 재산으로 추징금과 벌금을 모두 감당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점이다. 〈동아일보〉 소유 주식으로 대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동안 발 없이 떠돌던 '〈동아일보〉 소유 구조 개편 가능성'이 풍문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재정 상태도 양호하고 '투쟁 의지'도 강한 〈조선일보〉의 경우 사주 구속 사유가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탈세보다 죄질이 나쁜 개인 비리가 드러날 경우 전의(戰意)가 꺾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스크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나라당 사정도 낙관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최근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32%에서 23%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도 "지지도가 10∼15% 정도 떨어지는 것은 각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세와 비리를 옹호한다는 비판은 이총재의 '법대로'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마당에 기득권층을 비호한다는 비판도 부담이다.


그러나 '조·중·동+한나라당'의 스크럼이 버티기에 성공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은 우선 시장 요인. 이미 민심이 DJ 정권에 등을 돌렸고, 특히 조·중·동 독자들의 경우 반DJ 성향이 강하므로 시장의 압력 때문에라도 빅3이 논조를 유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론 사주·DJ 친인척 '비리' 터지면 상황 반전


돌출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싸움은 논리 싸움이기보다는 '팩트(사실) 싸움'이라는 것이 중론. 거액 탈세와 사주 비리 등 굵직한 팩트를 장악한 DJ 정권에 맞서기 위해 유력 신문들과 한나라당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 수사 정보·노벨상 로비 의혹·대북 이면 합의 의혹·아태재단 자금·DJ 친인척 비리 등이 주요 표적이다. 이 가운데 '확실한 팩트'가 하나라도 나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양쪽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타협론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서로 쏠 총은 다 쏘았다.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타협론의 요지는, 추징금을 내고 신문사가 반성은 하되 사주 구속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의장의 제안에 대해 민주당은 '초법적 발상'이라며 일축했지만, 여권의 한 축인 JP와 자민련도 공공연하게 타협론을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거리다.


아직 언론 전쟁이라는 치킨 게임의 마지막 장면을 점치기는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권력과 언론이 과거와 같은 비정상적 공생 관계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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