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 박지원, 안된다 내각제"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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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51.7%


아니나 다를까. 지난 1·29 개각에 대한 민심은 냉랭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권자 1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번 개각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고(51.7%), ‘적절한 내각’이라는 호의적 평가는 34.2%에 그쳤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청와대는 이번 개각에 대해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 실무 내각’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불개입’과 ‘경제 안정’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박지원 정책특보, 1·29 개각 주도한 듯






우선 최경원 법무부장관이 8개월 만에 물러난 것이 석연치 않다는 평이다. 시중에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을 모두 비호남 출신으로 두고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여권 수뇌부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교육 부총리를 다시 바꾼 것도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한몫 했다. DJ 정권 들어 교육부 수장이 바뀐 것이 벌써 일곱 번째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론의 화살이 집중된 것은 박지원 정책특보 기용이다. 박특보는 지난해 11월 민주당 쇄신파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자리를 떠난 인물이다. 그런 그를 3개월도 안되어 DJ가 다시 청와대로 불러들인 데 대해 응답자의 63.3%가 ‘문제가 있다’고 반응했다.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므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응답은 28.5%에 불과했다.





김대통령은 당초 박특보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풍 파동 당시 ‘박지원 찍어내기’에 앞장섰던 한 민주당 소장파 의원은 “개각을 앞두고 ‘박지원 전 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써야겠는데, 양해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와서 안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박특보를 비서실장에 앉히려다 여의치 않자 ‘위인설관(爲人設官)’을 한 셈이다. 정책특보는 장관급이다. 덕분에 그동안 차관급이던 임동원 통일특보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박특보의 위력과 그에 대한 김대통령의 애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박특보를 재기용한 이유에 대해 “김대통령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는 핵심 측근 중에 현재 곁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서”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부리기 편한 사람을 곁에 두겠다는 데 뭐가 그리 문제냐는 불만도 나온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박특보 기용을 문제 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인에 대한 DJ의 지나친 의존이 바로 비선 정치의 폐해를 낳는다는 우려다.


박특보는 이미 1·29 개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개각 이틀 전 박특보와 저녁 식사를 한 언론계 인사는 “박특보가 유난히 조순용 KBS 주간 얘기를 많이 해 이상하다 싶었는데, 개각 발표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라고 말했다. 박지원 공보수석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를 지낸 조씨는 이번에 정무수석으로 깜짝 발탁되었다.



세간의 여론을 의식한 듯 박특보는 요즘 몸을 잔뜩 낮추고 있다. ‘나의 당면 목표는 신문과 방송에 이름이 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무실도 당분간 경제수석실 옆 소회의실을 빌려 쓰기로 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그의 방에는 업무를 협의하려는 수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내각제 신당은 필요 없다” 61.1%



최근 정가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내각제 신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우세했다. 우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정치 체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라고 대답한 사람이 44.9%로 가장 많았고, 4년 중임 대통령제가 34.1%, 그리고 내각제는 14.1%에 불과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차장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유권자의 특성상 5년 단임제가 가장 많이 나왔지만, 나머지 응답을 합하면 체제 유지보다 체제 개편 쪽이 더 많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고학력의 수도권 남성, 즉 여론 주도층에서 4년 중임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앞으로 내각제보다 4년 중임제에 더 힘이 실릴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민주·자민·민국, 그리고 한나라당 일부 세력을 포함하는 내각제 신당이 필요하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1.1%로, ‘동의한다’는 응답(31.9%)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또 2002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내각제 신당이 출범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 없다’가 55.0%로, ‘가능성 있다’ 37.2%를 능가했다. 요컨대 내각제 신당은 출범하기도 어렵지만, 출범하더라도 별 지지를 얻지 못하리라는 의미다. 그나마 내각제 지지자보다 내각제 신당에 공감하거나 출현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은 ‘내각제에는 반대하지만 여권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내각제 신당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민주당 지지자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런 부정적인 여론에다 이인제 고문을 비롯한 민주당 대권 주자들의 강력한 반대가 가세해 내각제 신당 논의는 당분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기·천용택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서 추진하려던 내각제 신당 서명운동도 무산된 상태다.



그러나 내각제 신당에 반대한 인사들도 대부분 ‘반 이회창’ 세력 규합에는 공감하고 있어 정계 개편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다. 자민련과 민국당이, 민주당이 빠지면 둘이라도 먼저 통합하겠다며 서두르고 나선 것도 정계 개편의 불씨를 살리면서 민주당 내부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정가에는 ‘자민련과 민국당이 신당 준비위를 띄우면 중도개혁포럼을 비롯한 민주당 주류가 탈당해 합류한다. 그러면 민주당 유력 주자들도 따라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2002년 대권을 향한 정치권 풍향계는 국민 여론과는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 이숙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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