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에도 ‘노풍’ 복사판 뜨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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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경선 4파전 ‘예측 불허’…이회창 ‘대세론’ 대 ‘필패론’ 격돌 예고
한나라당에도 ‘최풍’ ‘이풍’이 불까?
민주당만큼은 아닐지라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4월13일∼5월9일)에도 눈길을 끌 만한 흥행 요소가 생겼다. 이회창 전 총재의 싱거운 독주가 예상되던 경선판은 4월3일 최병렬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고를 졸업하고 청와대 정무수석·노동부장관·서울시장을 지낸 최후보는 ‘한나라당의 노무현’이 될 만한 기본적인 파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내 개혁 세력의 선두 주자를 자임하는 이부영 의원은 ‘이회창 필패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때문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같은 ‘대세론 붕괴’가 일어날 수 있을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 출신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급부상한 반면 ‘이회창 대세론’은 ‘빌라 게이트’를 거치면서 힘이 많이 빠져 있는 상태이다.


이후보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 시절의 ‘스타 이회창’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수성에 애쓰고 있으나 밑바닥 민심은 벌써 요동하기 시작했다. 최병렬·이부영 후보측은 이미 밑바닥 기류가 돌아서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회창 후보측은 빌라 게이트 등으로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세론이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영남권 민심 변화 뚜렷…울산에 ‘최풍’ 주의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한나라당 지지 기반이었던 영남권의 민심이 크게 변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떤 식이든 한나라당 경선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점이다. “이 전 총재의 경쟁력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4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대구·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현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4월 중순까지 이회창 지지도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회창 필패론이 영남권에 급격히 확산될 것이라며, 그쯤 되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경선 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상황 변화는 이회창 후보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대세론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정병국 의원)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걱정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회창씨의 한 측근은 이렇게 고민을 토로했다. “영남이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그러나 붙잡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지지율을 급속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마당에 영남 출신인 최병렬 의원이 도전장을 던졌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최의원은 전략적인 판단과 정세 분석에 능한 사람이다. 그는 요즘 가는 곳마다 “이회창씨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주된 지지 기반이었던 영남권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급속히 쏠리고 있어 이회창씨로는 정권을 교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영남 출신이면서 보수 성향인 자신만이 ‘노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42쪽 <시사저널> 인터뷰 참조).


최의원측은 4월18일의 인천 경선보다는 내심 4월17일로 예정된 울산 경선을 주목하고 있다. 영남권인 데다가 이 지역 출신인 최병국 의원이 최의원의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인단은 1천1백 명이어서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영남권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여기서 이회창씨를 누른다면 ‘최풍(崔風)’이 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조직력이 없는 최후보가 바람에 기대를 걸고 있다면, 이부영 후보는 나름의 조직력과 개혁적인 이미지로 승부를 걸 생각이다. 이후보측은 최후보를 따돌리고 인천 경선에서 2위를 확보하는 것을 급선무로 보고 있다. 안영근·서상섭 등 지지 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천에서 양강 구도를 구축한다면 이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판단한다. 보수 세력의 대표권을 둘러싸고 이회창-최병렬 후보 간에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이 와중에 중도파까지 끌어안아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과학·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상희 후보는 정책을 통해 표를 얻겠다는 계획이다.


이회창 “바람 불어도 미풍에 그칠 것” 느긋


그러나 최병렬·이부영 후보의 거센 도전을 바라보는 이회창 후보측의 반응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일부 캠프원들 사이에서는 좌 병렬, 우 부영으로 가면 모양새가 좋지 않느냐며 짐짓 여유를 보일 정도이다. 최후보가 원조 보수를 표방하고 있어 이회창 후보가 중도 보수 쪽으로 발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나오고, 이부영 후보가 어느 정도 선전하는 것이 개혁적인 색깔을 강화할 수 있어 당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내부에서 최후보의 파괴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대다수는 본선 경쟁력을 들어 ‘결국 최풍은 불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이 이끄는 전략팀은 텔레비전 토론보다는 유권자와의 직접 접촉을 강화하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등 ‘대선 후보 이회창’을 전제로 한 전략을 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회창 후보측이 아직도 대세론에 젖어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상황과 민심의 변화를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봉책이나 단선적인 변화로는 헤쳐가기 어려운 흐름이 만들어진 만큼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비상 상황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이런 가운데 최병렬 후보는 ‘인천 경선 연기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출마 선언도 하기 전에 이미 국민 선거인단 모집이 완료되어 지지자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천 경선에 불참하는 것도 고려하겠다는 최후보측의 공세는 이회창 대세론을 겨냥한 가파른 도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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