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요즘만 같다면…”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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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당 지도체제 바뀌고, ‘낮은 데로’ 가뿐히…“귀족 이미지 씻으려는 오버 액션” 비판도
한나라당의 권력 지도가 변하고 있다. 민주계 서청원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 득표를 하면서 ‘민정계 지도부’가 탈색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이회창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됨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이후보측이 이른바 ‘큰 밑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의원은 평소 이후보와 친근한 관계를 맺어 왔고, 이후보와 김영삼 전 대통령 간의 가교 노릇을 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5월11일, 대표 호선과 지명직 최고위원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상견례에는 강재섭·박희태·하순봉 최고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최고위원 경선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는 각오로 1위 득표를 목표로 뛰었던 강의원은 4위에 그쳤다. 이로 인해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해 차차기 대선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그는 작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서청원 대표’ YS와 사전 교감설


‘측근 정치’의 당사자로 경선 중반까지만 해도 1위 득표가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하의원은 6위를 기록해 막차를 탔다. 측근 정치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김기배 의원은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면서 낙선했다. 당초 당내에서는 강의원이 1위를 하고, 서의원은 4위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막판에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보의 한 측근은 서대표가 당일 연설을 너무 잘해 천 표 정도는 가져 온 것 같다며 이른바 ‘창심(昌心)’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대선 전략 차원에서 이후보측이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권과 대권이 분리된 권력 구조, ‘노풍’을 잠재우기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아울러야 하는 현실, 지도부가 민정계 일색이라는 세간의 비판 등을 ‘서청원 대표 체제’로 잠재우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배경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우선 5월10일 전당대회장 주변에서 서청원 의원 1위 득표를 전제로 한 다양한 전망들이 나돌았다는 점이다. 하순봉 의원은 투표 결과가 나오자 이 같은 내용을 알고 있었던 듯 기자회견에 참석하지도 않고 현장을 떠났다. 또 경선이 있기 전 정치권에는 ‘이후보 쪽이 서의원을 대표로 하겠다는 뜻을 상도동에 전달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YS 사이의 밀월이 정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을 때였다. 충청권 입당파인 강창희 의원, 평소 YS와 절친한 김진재 의원이 나란히 2,3위를 기록한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후보측은 이런 관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싫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YS는 5월11일 저녁 서의원 부부를 상도동으로 초청해 2시간 가까이 화기 애애하게 만찬을 함께했다. 김혁규 경남도지사와 강삼재 의원은 최근 상도동을 방문해 박종웅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서청원 대표 체제가 출범함으로써 이후보의 ‘대YS 전략’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일부 최고위원들도 당장은 반발하고 있지만 강도를 높여갈 것 같지는 않다. 이후보를 중심으로 어떻게든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원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 한 재선 의원은 “후보도 변하고 있는 만큼, 당이 빠르게 안정을 찾고 대선 체제를 갖출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당의 지도 체제가 바뀌는 것과 함께 이후보는 철저하게 ‘대선 후보’로서 행보하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측근들에게 “내가 한때 생각을 잘못해 대세론에 안주했었다. 이제부터 눈치 안 보고 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라고 결의를 밝혔다. 5월11일 오전, 여의도 대한방적빌딩 3층에서 열린 이회창 경선본부 해단식에서 행한 이후보의 말은 상징적이다.


“이회창 변신에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 자신”


“주변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난 뒤 대의원들에게 절을 하라는 건의가 있었다. 하지만 연설을 하는 도중에도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국민들에게 쇼 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연설 후반부에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절을 했다.”


5월12일, 종로구 옥인동 자택에서 집들이를 한 이후보는 직접 삼겹살을 나르며 기자들과 소줏잔을 기울였다. 애초 각 언론사의 반장급들만 초청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부인인 한여사가 다 초청하자고 해 기자가 40여 명이나 참석했다. 한여사 또한 이 날 직접 상을 차리고 고기를 굽는 등 부부가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옥인동 자택을 참모들이 기자들과 맥줏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빌라 게이트’를 전화 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 5월11일 용산의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한 것처럼, 이후보가 현장에 뛰어들어 ‘손에 흙을 묻히는’ 기회도 대폭 늘릴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이후보의 변신을 탐탁치 않게 받아들이는 여론도 만만찮다. 한마디로 ‘서민 후보 이미지를 심기 위한 오버 액션’이라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모든 것을 버렸다’면서 새로 태어나기를 다짐하고 있는 이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후보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변하느냐에 올 대선의 승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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