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조져라” 한나라당의 언론 전쟁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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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관련 신보도지침 파문…‘적대 매체’ 길들이기 의혹
'방송이 병풍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4주 연속해서 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앵커와 기자 모두 반복해 사용해 이회창 후보 흠집 내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표현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나라당은 8월27일, 이런 내용의 공문을 MBC KBS SBS YTN 등 네 방송사에 보냈다. 정당이 보도와 관련해 방송사에 공문을 보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언론계에서는 보도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한 이 공문을 ‘신(新) 보도지침’이라고 이름 붙였다. 군사 정권인 5공화국 시절에 정권이 보도 내용을 일일이 간섭하는 보도 지침을 각 언론사에 내려보냈던 것을 빗댄 표현이다.





민주당 “땡창 뉴스 부활 꿈꾸나” 비판


‘신 보도지침’이 알려지자 전국언론노동조합·기자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 관련 단체들은 들끓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의 의무를 포기하라는 협박이라며 한나라당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땡창뉴스 부활을 꿈꾸는가’라는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의 ‘민정당식 발상’을 비꼬았다. 바야흐로 한나라당과 방송사들 간에 전쟁이라도 한판 벌어질 듯한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이 공문을 방송사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8월26일 오전에 열린 공정방송특위(위원장 현경대 의원) 회의에서다. ‘병역 관련 방송 보도가 신뢰성이 의문시되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만을 보도하고 있다’며 8월14일 방송사들에 1차로 공정 보도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는데 아무런 회신도 없고 보도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 보도지침’ 공문은 당 모니터팀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1, 2차 공문을 방송 4사에 모두 보냈지만 실질적으로는 MBC를 겨냥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른 방송사들에는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보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문화 관광 분야를 담당하는 정경훈 수석전문위원은 그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설명했다.


MBC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나라가 혼란해질 것이라고 보도했고,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가장 열심히 옹호했으며, ‘노풍’과 ‘병풍’ 보도에서 두드러지게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MBC 관계자는 “청와대나 민주당 어디에서도 한나라당과 같은 행태를 본 적이 없다.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보도가 나간다고 부당하게 간섭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과 MBC의 갈등은 감정의 골이 깊다. 특히 2000년 총선 이후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한나라당은 언론중재위원회에 모두 10건을 중재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이 가운데 방송사로는 유일하게 MBC에 대해서만 2건을 신청했다는 것은 양측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한나라당이 감사원법을 개정해 MBC에 대한 국정감사를 추진하는 등 MBC를 압박하고 있는 데는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 대선기획단의 한 기획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민주당-방송으로 연결되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움직이는 ‘마피아’들이 병풍을 매개로 마지막 싸움을 걸어왔다.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런 시각은 언론을 자신들의 잣대에 맞추어 편가르기 식의 관점에서 재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격화하고 있는 대선 운동이나 텔레비전 토론을 앞두고 ‘적대 매체’로 분류한 MBC에 대해 기선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신 보도지침’을 내려보내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언론 관계 개선’ 팔 걷어붙여


한나라당은 그동안 대선을 겨냥해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올 초부터 보좌관과 기자 출신이 주축인 이후보의 보좌역들에게 언론을 담당하도록 했다. 현재 10명에 달하는 보좌역들은 양휘부(방송)·이종구(신문) 공보 특보의 지휘 아래 방송 담당(2명), 신문과 주간지·월간지 담당(7명), 인터뷰 담당(1명)으로 나누어 전방위로 언론을 상대하고 있다.


언론과의 관계 개선에는 이후보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이른바 ‘민생 투어’를 하며 지방을 순회했던 이후보는 동행 취재한 기자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며 사적인 얘기들을 나누었다. 이 때문인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후보가 변하기는 정말 변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보 참모들도 민생 투어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를 ‘기자들과 관계가 개선된 것’으로 꼽았을 정도였다.


물량 공세도 쏟아부었다. 서청원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출입 기자들을 1진에서 4진까지 나누어 밥을 샀다. 취재 기자는 물론 사진·카메라 기자들까지 챙겼다. 또 최고위원들에게 기자들을 챙기라는 지시가 내려가 최고위원들이 권역 별로 나누어 기자들과 골프 모임을 갖는 바람에 한때 한나라당 기자실에서는 골프 치느라 휴일이 없다는 기자들의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보의 한 측근 인사가 한 일간지의 출입 기자를 친한나라당 성향으로 바꾸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도 한동안 당 주변에 무성했다.


이런 노력 덕택인지 한나라당 주변에서 MBC와 일부 인터넷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이 중립 내지는 친한나라당이 되었다는 말을 듣기는 어렵지 않다. 이후보의 한 참모는 언론의 70% 정도는 평정되었다는 말로 이런 분위기를 전하며 “신문은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언론 전략은 앞으로도 당근과 채찍을 같이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송 매체인 MBC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것. 이후보에게 수시로 조언하고 있는 한 의원은 일부 의원들이 MBC에 보낸 공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언론사와 싸우는 데 우려를 나타내지만 MBC를 이대로 두고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는 강경 분위기가 당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언론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기자협회는 언론 자유 수호 차원에서 한나라당의 언론 간섭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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