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도 이회창 죽이기 나섰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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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답방·경의선 복원 등 ‘신북풍’ 경계…“강경 이미지 벗자” 주문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9월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 경기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수해 현장에 가는 것이 더 급하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정가에서는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 관계에 대한 이후보의 편치 않은 속내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한나라당 전략가들은 최근의 북한 동향을 ‘신북풍’이라고 규정하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죽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병풍에 이어 북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동신문>, 5월부터 이회창 공격 계속


사실 이런 분석이 나올 정도로 <로동신문>을 통한 북한의 ‘이회창 때리기’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이후보가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이후보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대서 특필하는 등 이런 흐름은 지난 5월부터 본격화했다.


<로동신문>은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이후보 비난 기사를 모두 8건 실었다. 형식도 다양했다. <경향신문> <한겨레>의 만평을 소재로 한나라당과 이후보를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는가 하면, 대학생들이 이후보의 대선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결의했다는 ‘작은’ 뉴스까지 기사화했다. 내용도 ‘반통일 분자는 정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등 원색적이었다.


9월2일 <로동신문>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남북 관계가 어떤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겠는가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노골적으로 이후보 집권을 반대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반면 <로동신문>은 같은 기간에 민주당이나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경의선 철도 연결과 대북 쌀 지원 등도 ‘김정일의 이회창 죽이기’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8월5일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은 “9월18일 착공하는 경의선 철도 연결 공사는 공사 예정 기간이 3개월이어서 대선과 맞물려 있다. 일정이 빡빡한데 굳이 연말에 완공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따졌다. 현정권이 이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북한과 짜고 이른바 ‘북한 시즌’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서쪽에서는 경의선을 통해 ‘통일 열차’가, 동쪽에서는 육로를 통해 자동차가 오가는 상황은 결코 이후보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 문제에 정통한 한나라당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정부가 북한에 쌀 40만t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서도 정치적인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쌀 5만t을 찧으려면 한 달이 걸린다. 재고 물량을 감안해도 40만t이면 6개월 정도 걸린다. 그러면 쌀 지원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현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2월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죽이기’의 대미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김위원장이 답방하려면 2개월 정도 준비 기간이 필요한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라고 답변했지만 한나라당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2차장 출신으로서 남북 관계 정세에 밝은 이병기 특보는 “확실한 정보가 없어 아직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회창 때리기’에 열심인 것일까. 한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이 대북 문제에 관한 한 이후보가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올 1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배경에 이후보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보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 직전 방미했을 때 강경파로 꼽힌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을 만났다.


일부에서는 “이후보 낙선 노린 것은 아니다” 주장


한나라당의 서울 지역 한 중진 의원은 “이후보가 정권을 잡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은 현정권과 북한의 공통된 생각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은 김위원장의 답방과 관련해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과 임동원 특보 등이 대북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북한 전문가는 다른 각도에서 분석했다. “이후보에 대한 북한의 비난은 이후보가 집권하는 경우까지 고려해 협상 고지를 미리 점령하는 차원이라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가 하루아침에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위원장도 어리석은 도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남북 관계 급진전은 단기적으로는 식량난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 개혁을 위한 자금을 대미·대일 관계 개선을 통해 얻으려는 북한의 전략일 뿐, 이후보를 낙선시키려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재계의 한 북한 전문가도 “김위원장은 남한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김위원장이 답방한다면 대선에 얼마만한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형근 의원은 김위원장이 반드시 답방할 것이라며 이후보가 타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지만, 최근 당 핵심부에는 김위원장이 온다고 해도 대선 판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보고서가 올라갔다. 김위원장의 답방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여당 후보가 정치적인 상승 효과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당내에서 점차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이후보 주변 전략가들은 신북풍 정국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고 이후보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 참에 대북 강경 이미지를 벗자는 것이다. 윤여준 의원·구본태 전 통일원 정책실장·이병기 특보 등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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