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정반대 길 간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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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돈 안 쓰는 선거 모색…캠프에서는 “돈 보고 올 텐테…” 걱정


한국 최고의 재력가 중 한 사람인 정몽준 의원이 본격적으로 대권 가도에 나섰다. 정의원을 정치판에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은 월드컵 4강 신화와 막강한 재력이다. 재력가 정의원의 행보에 ‘돈’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정의원의 정치 참여를 놓고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부자 대통령 후보가 검은돈의 사슬을 끊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지론이 있는가 하면, 막강한 돈의 위력이 정치판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정의원의 재산은 약 1천7백20억원. 재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현대중공업 주식 8백36만주로 1천6백70억원에 이른다. 이외에도 정의원은 현대상선·현대정유 주식과 현대자동차 채권, 남서울골프클럽·하얏트호텔 헬스클럽·서울컨트리클럽 회원권, 평창동 토지 두 곳과 주택, 예금과 현금, 그림 3점 등 약 7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선거 자금 1천7백억원 마련했다?



정의원의 재산 목록 가운데 현대중공업 주식을 제외하고는 대선 자금으로 사용할 항목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주식도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정의원이 주식을 내다 팔면 주가가 폭락해 무엇보다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문제가 생긴다. 정의원이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재산은 많지만 선거에 쓸 돈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것이 정의원의 현실인 셈이다.



정작 정의원 주변에서는 대선 자금 마련에 대해 무관심하다. 돈이 부족해 정의원이 대권 행로를 수정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정의원측은 보고 있다. 한 측근은 “돈 걱정은 없다. 정의원은 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정주영씨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한 현대그룹 임원은 “정의원은 대권을 향해 10년이나 준비해 왔다. 자금에 대해서는 확실한 계산이 선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한 인사는 “이미 1천7백억원을 마련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라며 구체적인 액수를 거론하기도 했다.



10년 전 대선에 나섰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주로 자신과 가족 소유의 현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해 자금을 확보했다. 국민당을 창당한 2월과 본격적인 대선 경주에 뛰어든 6월 정씨는 자신과 일가가 소유한 주식 3천억원 가량을 현대 계열사 직원들에게 판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직전에는 현대그룹 직원들에게서 후원금을 조직적으로 모았고, 계열사의 비자금을 이용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그 때는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룹의 돈을 가져다 돈을 비효율적으로 써서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라고 말했다. 정의원 선거 캠프의 한 인사는 “정의원과 참모들은 10년 전의 실패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자금에 대한 전략은 무조건 10년 전 왕회장의 전략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의원은 “조금만 도와주시면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로 받아넘겼다. 이어 정의원은 “지난번 후원회에서 후원금을 받았는데 적은 돈이라도 많은 사람이 모아 주니 큰 힘이 되었다. 선거법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후원비로 선거 자금을 충당하겠다”라고 말했다.



재력가 정의원이 ‘돈 안 쓰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원측은 선거운동의 핵심으로 자원봉사자를 내세울 예정이다. 조직책이나 대표도 선정하지 않고 자원봉사본부의 간사와 책임자도 자발적인 참여에 맡겨, 선거 자금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이달희 보좌관은 “선거 자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청중 동원을 일절 하지 않겠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정의원은 출마 선언 이후 대규모 후원회와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세 모으기보다는 사회 전분야의 전문가 집단 영입을 통해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도 ‘돈 안 쓰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 흡입력이 있는 교수·최고경영자·문화예술인·과학자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이홍구·한승주 교수를 비롯해 이미 전문가 천여 명이 적극 동참키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돈 문제가 정의원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공산이 크다. ‘재벌인 정의원에게 서민들이 돈을 보탤 것인가’ ‘돈을 보고 주위에 몰려온 사람들을 어떻게 다독거릴 것인가’가 정의원의 숙제다. 이러한 우려는 정의원측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의원의 한 핵심 측근 인사는 “국민당 시절 돕겠다고 온 사람들은 모두 돈을 바라기만 했지 후원금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원이라도 보태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뒷돈을 요구하지 않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정의원의 팬클럽 ‘MJ 러브’ 회원 김 아무개씨(23·대학생)도 “정의원의 대권 출마를 환영하고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후원금을 낼 생각은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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