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 4인방’은 창이 겁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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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이기택·신상우·조 순, 이회창 공격 줄고 행보 제각각


'반창(反昌) 세력의 연대를 저지하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껄끄러운 관계이던 사람들과 앙금을 털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후보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 동생의 빈소를 찾아 조문(9월25일)한 데 이어, 민주당 이종찬 상임고문의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10월8일). 정가에서는 이를 두 갈래로 해석한다. 하나는 반창 세력의 집결을 막으려는 시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 보복을 하리라는 세간의 평을 의식해 포용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보의 ‘햇볕’은 정치권에서 ‘반창 4인방’으로 통하는 김윤환 신상우 이기택 조 순 씨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4월 총선 직후부터 이후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도 여전히 ‘반창’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보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지 그 강도는 전에 비해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 세력 재편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았다.


김윤환, 이회창이 사과 안하면 정몽준 도울 듯


한때 이회창씨가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요즘 말이 좀 달라졌다. 그는 “2000년 총선에서 나를 낙천시킨 이후보를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후보가 이에 대해 공개 사과한다면 다른 정치적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과한다면’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이후보를 도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그를 복당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선기획단이 그런 보고를 올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내가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이후보의 대세가 굳어진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 인사로부터 직접 그런 제안을 들은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회창-노무현-정몽준 3자 구도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그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의 후보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설사 된다고 해도 대선 막바지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노후보 지지도가 15% 아래로 내려간다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후보 직을 사퇴하라는 압박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았다.


한때 박근혜 의원을 지원했던 김대표는 내심 정몽준 의원에게 기대를 걸고 측근인 윤원중 전 민국당 사무총장을 정몽준 신당에 ‘파견’하기도 했으나 그가 “(정몽준 신당은) 민국당과 곧 통합할 것이다”라고 너무 일찍 본심을 드러내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정의원 주변에서는 ‘옛날 정치인’의 대명사로 통하는 김대표와 접촉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11월 초까지 이후보의 태도를 지켜본 뒤 입장을 정할 예정인 그는 만약 그때까지 이후보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정몽준 의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킹메이커’라는 그의 명성은 이미 빛이 바랬다.


이기택, PK 지역 민주계 모임 주도


지난 2월, 이기택씨 장남 결혼식에 이후보가 참석한 뒤로 두 사람 사이에 화해설이 돌았으나 지금은 다시 차가운 기운이 흐르고 있다. 그의 측근으로 한나라당에 몸 담고 있는 장경우 전 의원은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잘 안된다고 들었다. 요즘에는 나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8·8 재·보선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마치 이씨가 해운대 공천을 받기를 원했던 것처럼 언론에 흘린 것에 그가 감정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보측이 내게 어떤 제안을 한 적도 없고, 설사 만나자는 제안이 온다고 해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관심은 오히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의 후보 단일화이다. “후보가 단일화되어야 한다. 이후보는 강한 후보인데 분열되어 있으니 싸움은 하나마나다. 주장과 정책이 다르면 조정하고 논의해서 접근시키는 것이 정치이지, 생각이 다르다고 나는 내 길을 갈 테니 너는 네 길을 가라는 것이 무슨 정치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후보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그는 정몽준 의원에 대해서도 과연 그가 끝까지 완주할 것인지 의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를 은퇴했다면 몰라도 몸 담고 있는 이상 대선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 역시 11월 중순 안에는 대선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일단은 현역 의원 이합집산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최근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과 함께 ‘부산·경남 지역 민주계 전직 의원들 모임’을 주도해 정치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8월 말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두 사람을 비롯해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장관, 문정수 전 부산시장, 한이헌·김봉조 전 의원 등 7명이 모였다.




조 순 “정치 기사는 읽지 않는다”


“요즘에는 정치 기사를 안 읽고 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민국당 대표로 선거를 지휘했으나 참패한 뒤 사실상 정계를 떠난 조 순 전 민국당 대표는 “앞으로 정치 활동은 안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9월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국민통합을 위한 신당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자 정가에는 그가 정몽준 신당의 대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있을 때부터 제자인 정의원을 알고 지낸 인연이 있어서 축하해 주러 갔을 뿐,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의원으로부터 신당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당원이 된다거나 유세를 하는 식의 정치 활동은 안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며 참여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가족도 그의 정치 활동을 극력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정치권에 들어갔던 것에 후회는 없고 좋은 공부를 했지만 이제 나는 정치권을 완전히 졸업한 사람이다”라며 웃었다. 정치를 하기 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갔다는 그는 3김 정치를 지탱해 온 정치 구조와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해 온 정치인들은 이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명지대 석좌 교수로서 매주 목요일 오후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3시간씩 강의하는 데 새롭게 재미를 붙이고 있다.


신상우 “이대로 가면 창이 당선한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모교인 부산상고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노후보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를 돕고 싶고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현재 그가 취하고 있는 행보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후보가 정권을 잡으려면 국민을 통합하는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데 당이 그런 모습을 못 갖추게 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돼서는 안될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 간판으로는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고, 내부가 굳게 단결해도 이후보를 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두 가지 다 안되고 있고, 노후보가 너무 개혁 세력 쪽으로만 발을 옮기고 있다는 걱정과 불만이었다.


그는 노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경우를 ‘요행’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기처럼 노후보를 돕고자 하는 사람도 수용하지 못하는 노후보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노후보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하는 사람도 없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돕고 싶지만 도울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노후보와 정몽준 의원이 합쳐야 이후보에 맞설 만하다고 보았으나 그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수단과 위치를 확보하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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