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능 단체들 “바쁘다, 바빠”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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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초청 행사 앞다퉈 개최…정당들도 ‘줄세우기’ 경쟁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각종 이익 단체 회원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정당들이 안간힘을 쓴다. 직능 단체들도 여의도를 드나들며 줄서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12월4일과 5일, 사단법인 한국직능단체총연합회(한국직총·문상주 총회장)는 ‘1천만 직능인대회’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차례나 치렀다.
애초 직능인대회는 12월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를 초청해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가 예정된 지방 유세 일정을 바꿀 수 없다며 개최 날짜를 바꾸어 달라고 간청해 왔다. 한국직총은 고민 끝에 이후보를 위한 행사를 따로 열기로 했다.


이회창 후보가 참석한 12월4일 대회는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 연회장에서 점심 식사를 겸해 치렀다. 한국세무사회·여성경영자총협회 등 정장과 양장 차림 40∼60대 회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회창 후보는 “직능인들은 국가 발전의 중추이다. 직능인들의 요구를 앞장서서 도와주겠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튿날 열린 세종문화회관 행사에서 노무현 후보도 “여러분들을 국정의 동반자로 대우하겠다. 요구 정책을 당론으로 확정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겠다”라며 지지를 부탁했다. 전날 63빌딩 연회장과 달리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는 양복차림보다는 외투와 점퍼를 입은 30∼50대가 많았다.





문상주 총회장이 이끄는 한국직총 소속 한국학원총연합회는 회원 동원령을 내려 각 행사 참석 인원 수를 적절히 안배했다. 그러나 급조된 이회창 후보 참석 행사에는 예상했던 8백명보다 많은 1천3백명이 몰려들었고, 노무현 후보를 초청한 본 행사에는 기대했던 4천명에 못미치는 천여 명만 참석했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문상주 총회장이 이회창 후보를 위해 하루 먼저 행사를 열어 김을 뺀 것 자체가 ‘줄서기’ 아니냐는 불만 섞인 푸념을 털어놓았다. 한국직총은 “민감한 대선 정국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키느라 나름으로 노력을 다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정부와 정책 협조라는 명목으로 자주 접촉하기 마련인 직능 단체들은 정서적으로는 정부 여당에 가깝다. 그러나 올해는 단체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대선 정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직능 단체 연합체로는 한국직총·대한직총(대한법인직능단체총연합)·전국직총(전국직능단체총연합) 3개가 꼽힌다.


한국직총은 1998년 창립되었다. 전남 목포고 출신으로서 한때 민주당 당직을 맡았던 문상주 총회장은 ‘이회창 대세론’이 휩쓸던 지난 가을, 중립을 내세워 민주당을 탈당했다. 당시 직능 단체 주변에서는 정계 진출 뜻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문회장이 ‘고공 줄타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상주 총회장의 단체 운영에 불만을 가진 직능 단체 간부들이 한국직총을 이탈한 뒤 올해 3월 창립한 대한직총(총회장 권오석)은 겉으로는 대선 정국에서 철저한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민주당에 가깝다는 중론이다. 대한직총은 오는 12월12일 여의도에서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를 초청해 한국직총에 버금가는 행사를 열어 같은 사단법인체로서 세를 과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1월 창립해 임의 단체에 머무르고 있는 전국직총은 남상해 한국음식업중앙회장이 주도해 만들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국음식점 ‘하림각’ 사장인 남회장은 한나라당 전국구 순번 35번으로서 한나라당 선대위 직능특위 특정직능위원장을 맡고 있다.




“간부들, 정치권 진출 발판으로 이용” 비판도


남상해씨는 단체장 3명 가운데에서도 특히 정치 색깔이 두드러진다. 남회장은 2000년 총선 때 종로구 주민에게 사우나 목욕권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남회장은 이듬해인 2001년 5월에는 43만 회원을 자랑하는 한국음식업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권력’에 대한 한을 풀었다. 남씨는 현재 도덕정치국민운동연합 총재도 맡고 있는데, 이 단체는 상임 명예총재에 최각규·정호용·이종구 씨를, 상임 고문에 이충환·김명윤·이수성·이한동 씨를 추대하고 중견 여야 정치인을 지도위원으로 위촉해 놓았다.


직능 단체 회원 모두가 간부들의 뜻대로 움직일 리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선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거 정국에서 몸값을 높이거나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이익 단체 간부에 대한 세간의 눈길도 곱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직능 단체 회장들 못지 않게 중간 간부나 영향력 있는 회원들도 바쁘다. 정당마다 이들을 당원으로 끌어들여 선거운동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제 공격은 한나라당이 했다. 한나라당 직능특위 위원장을 맡은 부산의 재력가 김진재 의원은 지난 11월 초부터 32개 조직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일찌감치 분야별 직능특위 부위원장들을 임명하는 등 조직 정비를 마쳐 직능 단체 3백여만 표를 확보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반면 조성준 의원이 직능본부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은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 12월 초순에야 부랴부랴 분야별 특위 부위원장들을 선임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직능 단체들이 본래 여당 체질이기 때문에 막판에는 민주당에 표가 쏠릴 것이라고 낙관한다. 직능 단체의 줄서기와 정당의 줄세우기는 여전하지만 그나마 예전처럼 돈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번 선거의 달라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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