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에게 의존한 거 맞습니다, 맞고요…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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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 인선, 투명성·시스템 결여…신계륜 영향력도 ‘막강’
"노당선자의 국정 철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기자) “아직 당선자를 만나지 못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송경희 대변인 내정자)
노무현 당선자가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내정한 직후 이루어진 대변인 내정자와 취재진 사이의 대화 한 토막이다. 이 문답은 즉각 파장을 몰고 왔다. 어떻게 당선자의 철학도 모르는 사람이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느냐는 의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당선자는 청와대 참모의 제1 조건으로 자신과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을 꼽았었다. 한 예로 노당선자는 자신이 작심하고 한 발언(당선 직후 계룡대를 방문해 미군 감축 때 우리 군의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 이낙연 대변인의 비보도 요청으로 혼선을 빚자, “이대변인이 나랑 6개월 이상 호흡을 맞췄는데도 아직 내 생각을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노당선자가 대변인의 역할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대변인 0순위로 거론되던 김현미 당선자 부대변인이 다음날 ‘결근 투쟁’을 벌이자 당선자 주변에서는 청와대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터져 나왔다. “이광재 기획팀장이 인사를 다 말아먹고 있다” “아니다, 송대변인은 신계륜 인사 특보가 밀었다더라” “이해성 수석 뒤에는 또 다른 노당선자 측근이 있다”는 등 서로 엇갈리는 견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당선자 측근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인물들이 홍보수석과 대변인으로 발탁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홍보팀 인선은 누가 주도했을까. 이해성 홍보수석은 10년 넘게 노당선자의 후원회장을 맡아온 이기명 고문이 추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고문은 “1월 말에 이해성씨를 추천했다. 이내정자를 MBC 경제부장 시절부터 지켜봤는데, 머리가 비상하고 소신이 뚜렷한 점이 높이 살 만했다”라고 추천 사유를 설명했다. 연세대 김 아무개 교수와 막판까지 경합하던 이내정자가 낙점된 데에는 당선자의 뜻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내정자는 <시사매거진 2580> 부장 시절, 2000년 총선에서 지역 감정에 희생된 정치인으로 노당선자를 집중 조명한 적이 있다. 당시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던 노당선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조명해준 이 프로그램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내정자는 또 ‘정치인의 얼룩진 후원회’라는 제목으로 이인제 후원회의 문제점을 꼬집은 적도 있는데, 이 역시 노당선자 진영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이고문은 추천에 앞서 베이징 노사모에까지 이내정자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을 거쳤다고 했다.


송경희 대변인은 누가 추천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광재 팀장과 송내정자의 남편이 절친하다” “신계륜 특보와 송내정자가 같은 모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송내정자는 “1월 말께 친구들 추천으로 이력서를 보냈고, 발표 얼마 전 신특보로부터 확정 통보를 받았다”라고 했다. 노당선자와도 일면식이 없지만, 신특보나 이팀장과도 모르는 사이라는 얘기다.





“신계륜이 송경희 내정자 낙점한 꼴”


하지만 인사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고위 인사들은 신특보가 송내정자를 낙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한 당선자 측근의 얘기다. “(대변인) 발표 전날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문재인 민정수석·이낙연 대변인·이광재 팀장이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그 자리에서 대변인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고, 누군가 MBC 이 아무개 전 앵커를 추천해 이팀장이 ‘아이디어!’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이해성 수석이 이미 결정된 터라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다 MBC 출신으로 쓰는 게 문제가 없겠느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사람만 좋다면 출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이미 당사자(송경희 내정자)에게 확정 통보가 된 상태였다.” 이 날 저녁에 참석한 인사들은 한마디로 물을 먹었다는 얘기다.


다른 한 측근은 “발표 당일까지 노당선자가 대변인을 최종 낙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신특보가 이미 본인에게 통보했다면서 난색을 표명했고, 그러던 차에 <한겨레>가 내정 사실을 초판에 보도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부랴부랴 홍보수석과 대변인 내정자를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노당선자가 발표 한 시간 전 취재진에게 “오늘 발표할 것이 없다”라고 한 말이 연막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런 정황 탓에 송내정자는 신특보가 강력하게 민 셈이 되었다.


홍보팀 인선은 뒷얘기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청와대 인사가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당선자는 인사에 관한 한 모범을 보이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장관을 인선할 때 5단계 절차를 거치겠다고 한 것이나, 당 출신과 인수위원, 심지어 정부 부처 파견 공무원들까지 다면 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것도 다 인사를 객관적으로 하겠다는 노당선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청와대 인선만은 공개적인 검증 절차가 생략된 채 소수의 추천과 검증에 의해 진행되는 양상이다. 386 측근 참모들의 경우 노당선자가 “내가 직접 검증했기 때문에 믿고 쓰겠다”라고 천명했지만,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은 그런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인사를 둘러싸고 ‘비선’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선 논란의 중심에는 이광재 팀장이 있다. 홍보팀 인선만 보아도 실제 추천자는 따로 있지만, 세간에는 다 이팀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희정·우광재 중 좌희정이 당으로 돌아간 뒤 우광재가 전권을 장악했다는 식의 소문이 파다한 것이다. 여기에는 과장된 측면도 있다. 인사를 하다 보면 소외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인데, 그들의 화살이 몽땅 이팀장을 향하고 있어서이다.


그러나 상황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당선자 책임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팀장에 대한 당선자의 지나친 의존이 오히려 이팀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인사와 관련해 이팀장이 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양한 추천 경로를 통해 인력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성 대변인을 뽑기 위해 이팀장이 작성한 데이터 베이스에는 기자, 아나운서, 학자, 언론단체 종사자, 홍보·광고 전문가 등 여성 전문가 100여 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 분야별 명단에는 당선자가 평소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도 포함된다. 문재인 민정수석이나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그런 경우다.





노무현 “이광재와 상의해서 추진하세요”


다른 하나는 적임자라고 판단될 경우 당선자와의 면담을 주선하기도 하고, 반대로 당선자가 만나보라고 하는 사람을 대신 만나 의중을 탐색하기도 한다. 이 역할은 신계륜 인사 특보도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두 가지 역할만으로도 이팀장에게는 주변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인사에 관한 당선자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팀장이고, 기초 자료 역시 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태 노당선자는 이팀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직에 내정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회의에서 논의가 지루해질 무렵이면 당선자가 ‘나중에 이팀장과 상의해서 추진하세요’라고 말한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이팀장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은 이팀장에 대해 우호적인 386 참모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당선자가 기존 참모들에 익숙해 있다 보니 시스템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노당선자는 최근 명망가들로 구성된 취임사준비위원회가 써온 취임사 초고가 마음에 들지 않자 회의에 배석한 윤태영 공보팀장에게 “윤팀장이 쓰지 그래”라고 해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노당선자의 연설 원고를 담당해온 윤팀장은 이번에도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에 내정되었다.


문제는 특정인에 대한 노당선자의 의존이 팀워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김현미 부대변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당선자는 한때 김부대변인을 대변인으로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자가 직접 대변인을 맡아줄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다는 후문이다. 김부대변인 내정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변인은 화면발을 잘 받아야 한다” “김부대변인은 선거 때 야당과 싸운 이미지가 강해 청와대 얼굴로는 적합하지 않다” 따위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이광재 팀장이 김부대변인을 제치고 경희대 아무개 교수를 밀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일각에서는 이팀장이 당선자 마음을 돌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팀장이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바깥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청와대 고위직 내정자가 사석에서 “광재 때문에 큰일이다”라고 한숨지었을까.


이런 주변의 시선 탓인지 이팀장은 한때 노당선자가 제시한 국정상황실장을 고사했다. 그러나 “이팀장이 빠지면 일이 더뎌진다” “공식 라인을 벗어나면 오히려 비선 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내부 반론에 힘입어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기로 했다.
노당선자는 2월10일 <중앙일보>가 ‘5배수 압축 장관 후보 명단’을 발표한 후 “인사에 비선은 없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때도 명단을 흘린 인물로 이팀장이 지목되었다. 노당선자가 인사를 철저하게 시스템 안에서 추진하지 않는 한 비선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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